인문학의 정수가 되는 문(文)·사(史)·철(哲)은 삶과 학문의 기초라 볼 수 있고, 그런 점에서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저술한 『파우스트』는 문사철을 아우르는 괴테 문학의 최고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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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물질적 만족을 얻고자 악마와 거래한 파우스트의 후예들이다. 파우스트가 꿈꾼 인공 낙원이 한낱 신기루로 판명된 것처럼 그의 후예들 역시 세계 상실, 가치의 총체적 몰락이라는 묵시록적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는 어느 학자의 말처럼 현대는 가치를 상실한 세계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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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는 비록 괴테가 낸 한 권의 저서에 불과하지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 시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친화력』, 「노벨레」 및 『서동시집』 등 기존 괴테의 시, 소설, 희곡이 배경으로 다루어짐으로써 궁극적으로 괴테에 대한 포괄적인 집필이 되고 있다. 그 자체로 괴테의 지식과 사상의 총체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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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2세 때 『초고 파우스트』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필을 계속하여 『파우스트』 제1부는 1801년에, 제2부는 82세에 별세하기 반년 전인 1831년에 완성되었는데 60년이란 긴 세월이 지난 후였다.
--- p.23
애욕의 세계에서 신적인 성스러움의 경지까지 타파하고자 하는 욕망이 파우스트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러한 파우스트를 인도하여 구원하는 고결한 여성상이 그레트헨이다.
--- p.45
메피스토펠레스는 실체를 가진, 때려 부숴야 할 악이라기보다 인간의 약한 점을 파고들어 유혹하는 악마이다. 악마는 인간의 자제력을 허물어뜨리고 자유롭게 하여 결국 극악한 지배에 끝없이 굴종시킨다.
--- p.80
인간의 노력은 곧 방황이며, 이는 진리에 접근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따라서 메피스토펠레스까지도 인조인간 호문쿨루스에게 [네가 방황하지 않으면 인식에 이르지 못해](7847)라며 충고하고 호문쿨루스도 진리에 접근하고자 방황의 길을 가고자 한다.
--- p.170
자아를 절대적 주체로 절대화한 파우스트는 중단 없는 행동의 의지를 가지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추구한다. 파우스트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넘어 보다 나은 것을 요구하고, 지극히 행복한 순간에도 새로운 실현을 갈망하는 인물이다]. 파우스트의 이러한 중단 없는 의지는 그의 끊임없는 생성을 의미한다.
--- p.226
헬레니즘에 대한 집념에 사로잡혀 있던 괴테는 [만일 우리가 정말 모형(模型)을 원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고대 그리스인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의 작품 속에는 인류의 아름다움이 변함없이 표현되어 있다. 그 이외의 것은 모두 역사적인 관점으로서만 보아야 할 것이다] 46고 말할 정도로 모든 미는 헬레니즘에서 오며, 문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 p.275
괴테의 『파우스트』에는 16세기의 파우스트 전설뿐만 아니라, 멀리 시몬 마구스를 필두로 각 시대의 주술사의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그중 고대 기독교회 전설에서 키프리아누스의 악마와의 계약이라든지, 그리스 미녀 헬레나와 파우스트의 결합 문제 등은 충분히 전설상으로도 고증되어 괴테의 『파우스트』의 주요 테마를 형성했다.
--- p.351
범신론에 귀의한 괴테에게 기독교의 그리스도는 도덕성의 지고한 원칙을 나타낸 인물이지 원칙 자체는 아니었다. 비록 [신적]이라는 형용사로 수식되지만 괴테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수는 도덕성의 육체적인 담지자일 뿐이다.
--- p.533
플라톤의 아름다운 영혼은 플로티노스Plotinos의 신플라톤주의를 거쳐 중세의 그리스도교 문학에 흘러들었으며, 다시 중세 말기 독일의 신비 사상과 16~17세기 스페인의 종교 문학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이성이나 오성이 아니라 영혼에 의해 배양된 경건주의는 괴테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pp.630-631
장미는 또한 천국의 상징으로 『파우스트』에서도 파우스트가 승천할 때 장미꽃이 등장한다. 이때 장미꽃은 악마의 정욕을 제압하는 종교적인 의미를 지녀 파우스트가 운명한 직후에 그 영혼을 데려가려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천사들이 합세하여 장미꽃을 뿌려 퇴치한다.
--- p.637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리노라]는 대작 『파우스트』의 마지막 구절이거니와, 하나의 여성 그레트헨의 사랑은 영원히 여성적인 본질인 어머니상이 되어 파우스트를 무한히 높은 곳까지 인도하는 것이다.
--- p.666
국가 사회주의자들은 괴테가 젊은 시절에 쓴 『독일 건축술에 대하여Von deutscher Baukunst』를 들어 괴테가 프랑스 혁명을 기피한 태도는 서방 정신의 거부라는 논법으로 괴테 문학을 날조했다. (……) 사회주의 성향의 인물들은 인권적 편견과 국수주의를 조롱하고 파시스트들의 이론적 원천인 게르만의 고대 사회를 어두운 야만적인 과거로 규정한 괴테를 이해하지 못한 셈이다.
--- p.938
괴테는 모든 면에서 독일인을 초월하여 독일인에게 귀속되는 일이 없었다. 베토벤이 독일인을 초월해서 작곡하고, 쇼펜하우어가 독일인을 초월해서 철학했던 것처럼, 괴테도 독일인을 초월해서 타소와 이피게니에를 씀으로써 세계 문학 시대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 p.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