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었다. 점심때가 지났었다. 배가 고파 주먹밥이나 먹을까 생각했다. 주먹밥이나 과자 빵, 초밥 같은 것을 사려고 매점에 들렀는데, 그 친구가 있었다. 바로 눈치 챘다. 어라? 스도? 하고 불렀더니, 그 친구가 목에 건 명찰을 흘낏 보며, 내가 스도 맞는데,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스도 맞는데, 그게 왜? 하는 듯한.
깊이 호흡을 했다.
입가를 닦고는, 아오토야, 하며 집게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켰다.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몸짓이었다.
6월 11일 월요일. 아오토 겐쇼는 꽃집에 있었다. 역 앞의 아담한 꽃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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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피우듯 호흡하며 아오토 쪽으로 얼굴을 향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며 천천히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아오토의 기운을 북돋워 주려다 보니 정말 건전한 기분이 됐어.”
고마워, 하며 고개를 원래대로 돌렸다. “나야말로.” 반사적으로 대꾸하고 아오토는 무릎 위의 점심 패키지와 김말이로 눈길을 떨구었다. 스도의 목소리가 귀에 와 닿았다.
“아오토.”
“응?”
“서로 기운 나게 해 주는 놀이 하지 않을래?”
아오토는 눈을 들어 스도를 가리키다가 다음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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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가지 않을래?”
스도의 얼굴을 보았다. 그냥 한번 말해 본 것뿐이야, 하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건 좀 그런데.”
“이 나이에도?”
“오히려 더 그렇지.”
“왜?”
“나이 쉰에 그런 유혹은 여러 모로 힘겨워.”
“그런 유혹이 뭔데?”
“집에서 마시기. 남자와 여자가. 게다가 단 둘이. 즉흥적인 학생 시절이라면 몰라도 분별이 생긴 어른이 할 짓은 아니야.”
“분별이 생겼으면 별로 문제될 거 없잖아.”
“사람들 이목이 있잖아. 그리고 내 눈도. 난 사귀지도 않는 여자와 단 둘이 집에서 술 마시고 있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아. 얌전히 소꿉놀이만 할 것 같은 나도, 호시탐탐 눈을 빛내는 나도, 갈 데까지 한번 가볼까 하고 여유만만인 나도, 상상만 해도 싫어.”
성가셔, 이제는 더욱, 이라는 말에는 웃음이 담겨 있었다. 스도 역시 입을 하하하 하고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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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알코올 중독이었던 때가 있었어.”
“언제쯤?”
“6년 전에. 아니, 5년 전인가. 이혼하고 얼마 안 있다가.”
아무튼 마시고 싶었다. 당시는 도내의 제본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일을 마치고 나면 편의점으로 직행해 술을 마시고 가장 가까운 역까지 걸어갔다. 역 매점에서 두 개째를 사서 벽에 기댄 채 다 마셨다. 전차에 타고 있는 동안은 최대한 참다가 집과 가장 가까운 역에 도착하면 가게까지 달려갔다. 술을 마시며 집까지 비틀비틀 걸어가, 맨션을 바라보며 또 하나를 마시고 집에 들어간 후에도 토할 때까지 마셨다.
“그만둔 계기는?”
“아침에도 마시게 됐거든. 아무래도 위험하다 싶어서.”
“회사 사람들은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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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독신이었고?”
“독신. 취미로 시작했기 때문에 여전히 취미 삼아 하는 것같은 구석이 있었는데, 그래도 일단 도구 정도는 다 갖추고 싶어 했어. 멋 내기를 좋아해서 옷 같은 걸 고르는 데도 까다로운, 섬세한 사람이었지. 카드 한도가 넘쳐 의논 상대가 돼줬다가 그걸 떠안은 게 흔히 말하는 종말의 시작이었어.”
스도에게는 저축한 돈이 좀 있었던 모양이었다. 회사원 시절의 저축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죽은 남편의 유산에도 상속분이 있었다. 소유한 집도 있었다. 보험금 수취인은 전처로 되어 있어서 스도의 손에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노후 자금 정도로는 그럭저럭’ 괜찮은 금액이었던 듯했다. 그것이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한다.
“2, 3년 만에. 처음에는 그 사람도 조심스러웠고, 나 역시 거절하기도 했었는데. 그 사람이 갖고 싶어 하는 비싼 물건을 보거나 만지작거리는 걸 지켜보다가 그만 무너지고 말았지. 그냥 다 사준 거야. 악기점에 가서 ‘이거 뭐지, 엄청 좋은데’ 하며, 그 사람이 사탕 같은 색깔의 기타를 들고 점잖게 띠로롱 하고 뜯어보다가 ‘어? 완전 다른데?’ 하고 슬쩍 내 눈치를 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갖고 싶어?’ 하고 묻고 말지. 기타를 꼭 품에 안은 채 ‘고마워’ 하고 말하는 모습이 와락 끌어안고 싶을 만큼 귀여웠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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