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머물지도 모를 당신에게…
이 책은 여행 안내서가 아니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여행이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들의 삶에서 필요할 무엇인가를 얻는 방법에 대한 사소한 안내는 될 것이다. 이 책은 경험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도시와 마을의 구석구석을 나긋나긋하게 소개하지는 않았다. 그건 독자들이 직접 찾아 스스로 경험해야 할 몫이라고 여겼다.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어쩌면 가로수길 한 모퉁이에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작고 아담한 편집 숍에서 느낄 만한 낯설지 않은 이야기를 제공하려 했다. 편집 숍 주인이 엄선해서 추천하는 도시와 경험이라는 옷과 스타일을 만나보기 바란다. 그리하여 가까운 미래에 이 도시들과 조우하여 각자의 경험으로 이야기를 더해 스스로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길 소망한다.
살고 있는 곳을 떠나 만나게 되는 의도된 낯선 경험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경험은 새로운 공간에서, 다른 시간의 힘과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유발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고정관념을 넘는 각성을 하게 된다. 경험이 발생한 순간의 공간과 상황은 당시의 순간을 넘어 우리의 기억속에 남아 다시 발현하는 자산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낯선 곳과 낯선 시간을 마주하며 성장한다.
‘어쩌다 비’라는 제목은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먼저 ‘어쩌다’에 대해 말하면, 모든 것은 계획한 대로 술술 풀리지 않는다는 삶에 대한 필자의 태도다. 그래서 이 모든 결과는 나의 노력이 아니라 우연처럼 찾아온 행운이 만들어 준 것임을 잊지 말자는 의미다. 개인적으로 한 단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미 체계를 좋아한다. 예를 들면 ‘바람’은 말 그대로 자연에서 부는 바람이자 희망, 바람기, 에너지, 포도를 키우는 자연의 역할 등으로 해석된다. 그렇듯이 이 책의 ‘비’는 가수 이름은 아니지만, 어쩌다 삶에서 만나는 비Rain 일 수도 있고, 어떤 시간과 장소에 존재하는 비BE 이기도 하다. 아닐 비, 즉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뜻도 있다. 그리고 알파벳에서 A의 뒤에 서 있지만 든든한 자음의 첫 글자이며, 언제나 대안을 상징하는 Plan B의 의미도 있다.
이 책은 13개 도시에서의 평범한 이야기가 주인공이다. 대단한 요리는 아니지만, 슴슴하고 담백한 맛을 가졌다. 짜고 매운 것은 필자의 취향이 아니라 제외했다. 1995년 떠난 배낭 여행의 첫 목적지인 유럽연합의 수도 브뤼셀에서 생겨난 이 책의 씨앗을 시작으로 독일의 수도 베를린, 이탈리아 미식의 도시 볼로냐, 겨울 왕국의 배경지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경험한 용기와 웃음과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다.
2015년부터 와인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향한 필자의 예상치 못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찾아간 세 도시,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바롤로, 중부 토스카나 해안가의 작은 마을 볼게리, 그리고 세계 최고의 와인 도시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을 만드는 특별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혁신, 꿈과 열정에 대한 발견을 담았다. 숨겨진 보석은 외롭지만 언젠가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프렌치 바스크의 역사를 간직한 바욘, 대서양 유일의 프랑스 3대 휴양지 비아리츠, 그리고 도시 브랜딩의 전설 스페인의 빌바오에서 부드러움의 힘과 소중한 것에 대한 절제, 그리고 선택이라는 함수에 대한 생각을 엮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 베르가모,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거치며 알게 된 상실과 위로, 그리고 처음이 가진 가치에 대해 소개했다.
어쩌다 보니 유럽에 있는 도시만 담게 되었다. 북미와 아시아의 도시들도 후보에 있었으나 유럽이 자꾸 나를 불렀고 난 그 대륙의 한 켠에서 보낸 시간을 기억하며 즐거웠다. 개인적으로 독자들이 한달에 한 도시를 뽑아 천천히 음미하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며 일상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열두 달이 기분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예비로 한 개의 도시를 더 추가했으니 취향대로 선택하길 권한다.
그 곳에 머물지도 모를 당신에게…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