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제주도 모슬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책을 많이 접하게 도와준 담임선생님과 부임한 목사님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교사와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들어가 첫 백일장에서 시를 써서 가작으로 당선한 것을 시작으로, 한라문화제 문학백일장에 늘 참가했고 고등학교 1학년에는 시부 차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펜팔을 하던 친구가 ≪향원≫이라는 문학 동인지를 보내왔다. 문학 동인지를 받고 작가도 문학 동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으로 글을 쓰는 친구들과 ‘메아리’라는 문학 동인을 만들었고, 고등학교 2학년까지 동인지 7권을 발간했다.
교육대학을 졸업해 토평초등학교에 근무할 때만 해도, 시를 썼고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효돈초등학교에 근무할 당시 같은 학교에 시인 선생님이 근무하고 계셨는데, 그는 제주신문사 문화부 기자에게 동화 청탁 전화를 받고 자기는 쓴 글이 없다면서 작가에게 동화를 쓴 게 있느냐고 물었다. 작가는 접어놓았던 동화가 떠올라 신문사로 그 동화를 보냈고, 신문에 게재되었다. 그 후, 단편 동화와 중편 동화 <이여도를 찾는 아이들>을 써서 신문에 발표했다. 그러고 나서는 제주신문사의 요청으로 동화 10여 편을 발표했지만 등단은 꿈을 꾸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0년 김영기 선생님의 제안으로 ‘북제주교육청 아동문학회’를 결성해 ≪새벽≫이라는 연간지를 3회나 발간했고, 3년 후 비로소 ‘제주아동문학협회’가 정식으로 창설되어 제주문단에 아동문학이라는 초석을 놓았다. 1983년 11월 ‘교육자료’에 투고한 동화가 3회 추천 완료를 받았고, 그해 12월에 <달나라가 그리운 토끼들>로 제11회 아동문예 신인상을 받아 제주 거주 도민 1호 아동문학 작가로 등단하게 되었다. 이듬해 1월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장닭과 화가 아저씨>가 최종심에서 탈락해 아쉬움이 컸는데, 그 작품은 1985년 제14회 기독교아동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제주에서 발간하던 잡지에서 부록으로 동화책 발간을 제의받고 첫 동화집 ≪장닭과 화가 아저씨≫를 출판했다.
그리고 성황석두 루가서원 사장님의 제의로 이시돌 목장을 개척한 맥크린치 신부님의 전기를 출간했고, ‘아동문예사’에서 ≪돌하르방≫, ≪바람개비 할아버지≫ 등 창작 동화집을 발간했다. 그리고 ≪제주 전래 동화≫를 ‘대교출판’에서 발간하면서 제주 설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제주도를 무분별한 개발로부터 지켜 내어 이여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여도를 찾는 아이들>을 써 응모해 10회 계몽아동문학상에 당선되었고, 1995년 책이 나왔다. 서천 꽃밭 꽃 감관을 다룬 <이공본풀이>를 쓰는 등 제주 역사를 동화(소년소설) 속에 담아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도 했다. 그 밖에 제주 설화를 다룬 동화는 ≪검둥이를 찾아서≫, ≪누렁이를 삼켜 버린 안개산으로≫, ≪하늘나라 꽃밭지기≫ 등이 있다. 또 ≪다랑쉬오름의 슬픈 노래≫라는 책을 써 어린이들이 4·3 사건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으며, 이 작품으로 제주문학상을 받았다. 이 책은 제주외고 학생들(영어 번역 동아리 J·E·T)이 영어로 번역해 ≪The Sad Song of Darangshi Oreum≫이란 영어 동화책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슬기가 다시 만난 제주도≫, 말을 기르는 할아버지를 다룬 ≪마지막 말테우리≫도 썼다. 특히 세화리 해녀항쟁 사건과 해녀의 일생을 다룬 책 ≪이여도로 간 해녀≫는 제주가 좋아 제주로 이주한 영어 번역가 김경화 씨가 읽고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읽혀야 한다면서 영역해 보내 주어 ≪A Granny Diver Who Had Gone To I-yeo-do≫이란 영어 동화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며, 의사, 교육자, 수도자의 삶을 산 인물에 대한 책 ≪최정숙≫도 출판했다. 앞으로도 제주 역사를 알리는 작업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