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貴 대환大患 약신若身, 귀, 대환, 모두 큰 골치 거린데, 제일 큰 골칫거리는 돈이지요. 이 돈이라는 골칫거리를 약신若身,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귀하게 생각해.
요새 우리의 문제는 자본주의죠. 이 자본주의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르죠. 농촌, 다 없어졌죠, 교육, 다 망했죠. 그리고 요새 공장까지도 다 망해가고 그러고도 계속 야단치는 게 돈돈, 그러고 있는 거죠.
이건 뭐 우리뿐만이 아니라 온 세계가 그러고 있지요. 제1차 세계대전, 자본주의 때문에 나오는 거지. 제2차 세계대전, 자본주의 때문에 나오는 거지. 온 세계가 이 자본주의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거지요. 돈이라고 하는 것처럼 골치 아픈 게 없는 건데, 약신若身, 자기 생명보다도 더 귀하게 생각해. 그래서 여기 감투와 돈, 이 두 가지를 들었어요.
감투를 자꾸 주장하는 것이 공산주의고, 돈을 자꾸 주장하는 것이 자본주의고. 이 세상의 문제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거죠. 지금 남북의 갈등도, 북쪽의 공산주의와 남쪽의 자본주의, 이 두 가지가 일으키고 있는 거죠. 결국 세상의 가장 큰 문제가 이 감투와 돈이에요.--- 「13장」
총욕일야寵辱一也, 감투를 쓰는 거나, 감투를 벗는 거나, 다 같은 거야. 사람들은 자꾸 그건 다르다, 감투를 쓰는 건 좋고, 감투를 벗는 건 나쁘다 그러지만, 그건 다 같은 거야. 왜 같은가? 그것은 내 마음의 욕심 때문에 그런 거야. 내 마음에 혹해서, 미혹이 되어서 그런 거지, 다 같은 거야. 그것이 인생의 근본문제가 아니기는 다 마찬가지야.
이 사람이 말하는 인간의 근본문제는 뭔가 그러면 언제나 자기의 개성을 발견하고, 자기의 사명을 다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근본문제지, 감투 쓴다, 돈이다, 이거는 인간의 근본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총욕은 다 같은 건데,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분별심을 가지고, 그것을 자꾸 다르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본부족언本不足言, 말할 가치도 없다.
이인이욕위하而人以辱爲下, 그런데 사람들은 감투를 벗으면 죽는다 그러고, 감투를 쓰면 산다고 그러는데, 자맹호오지심自萌好惡之心, 자기 속에 하나는 좋다, 하나는 나쁘다, 하는 분별심이 생겨서 그렇다. 맹, 싹틀 맹萌 자, 분별심이 생겨서 그렇다.--- 「13장」
오늘은 14장인데 특별히 노자의 인생관이에요. 21장은 우주관, 25장은 세계관, 노자 철학의 핵심이지요. ...... 오늘은 인생관이에요. 관觀이라는 건 소위 꿰뚫어 본다는 거죠. 주역에는 궁리窮理 진성盡性 지명知命 이렇게 되어있어요. 자꾸 궁리하다가 나중에 생각이 끝이 나면, 생生, 각覺, 각을 얻게 되는 거지요. 그것을 우리가 깨달았다 말해요. 궁리하고 궁리하고. 궁리한다는 말은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한다는 말이죠. ...... 철학이나 종교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어떤 형상形象으로 그걸 나타내는 거죠. 그게 어떤 상으로 나타났다 그럴 때 그걸 관상觀相이라 해요. 관상이라 할 때 ‘코끼리 상象’ 자로도 쓸 수 있어요. 코끼리로 나타낸다, 어떤 형상으로 나타낸다, 말하자면 어떤 상징으로 보통 나타나는 거죠. ...... 이 장을 ‘인생관’이라고 할 때 노자는 어떤 상징을 봤을까? 우리는 오늘 그것을 생각해가야 돼요.--- 「14장」
형상의 세계라면 붙잡을 수 있는데 원리의 세계니까, 원리의 세계는 손으로 붙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세계지. 우리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 그러면, 상대성원리가 어떤 것인지 볼 수도 없다, 들을 수도 없다, 만질 수도 없다, 그런 거죠.
이 도라는 것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그런 근본의 세계, 원리의 세계죠. 물(수水)로 말하면 기체가 되면 볼 수 없고, 고체가 되면 들을 수도 없고, 액체가 되면 붙잡을 수도 없고. 물도 그렇게 세 가지로 변하니까, 붙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거지.--- 「14장」
사람의 본질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자유인데, 그게 어떤 자유인가 그러면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자유지. 그래서 그런 상징을 무엇으로 봐야하나, 독수리라든지, 새(조鳥)로 봐야한다. 그래서 ‘새사람’이야, 새사람. 유영모 선생님은 언제나 사람의 본질은 무엇인가? 새라. 그래서 언제나 새사람, 새사람, 그러셨어요. 새사람이라는 건, 새로운 사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새같이 자유자재로 날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죠. 예술을 한다 그러면, 자꾸 하다보면 예술에 대해서 자유자재가 되거든. 영문학을 한다 그러면, 나중에 영문학에 대해서 자유자재가 되거든. 결론이 뭔가 하면 무엇이든 다 자유자재가 되는 거거든. 새처럼 날아다니는 것, 그것이 인생의 본질이에요.
대개 노자 14장은 무엇을 그렸는가 그럴 때 새를 그린 거 아닌가, 혹은 닭을 그린 거 아닌가, 비둘기를 그린 거 아닌가, 그렇게 말할 수 있죠. 그런데 그런 것은 아는 사람만 알지요. 아, 인생관이 이런 거구나 하고. 오늘은 인생관이라고 하는 중요한 얘기를 하는 거지요.--- 「14장」
될 수 있는 대로 육체적인 것에 매어 살지 말고, 정신적인 것으로, 하늘을 나는 솔개처럼 그렇게 살자는 거죠. 우리가 닭이란 말도 하고, 비둘기란 말도 하고, 솔개라는 말도 하고. 결국은 자유라는 거지. 진짜 자유를 우리가 어디서 느낄 수 있나. 정신에서 얻을 수 있지. 아무리 육체가 자유롭다고 해도, 이 육체적인 자유라는 건 제한된 자유라 이렇게 보는 거지. 그렇잖아요? 우리가 자유, 그걸 한번 진짜로 느껴보자, 이런 거죠.--- 「15장」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도 몇 백 년, 몇 천 년은 가야 제대로 되지, 그렇게 쉽게 되는 건 아니겠지요. 물론 한 두 사람은 쉽게 되겠지만 이게 전체가 돼야 하니까, 구원 받으려면 우리 인류 전체가 구원 받아야지 무슨 한 두 사람만 구원 받아가지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거든. 그러니까 아주 오래오래, 뭐 예수가 온 지 이천년 됐다 그러지만 이천 년 됐다고 이게 된 게 아니라 이거죠.--- 「15장」
내가 늘 말하지만 원효도 알아야 되고, 퇴계도 알아야 되고, 다 알아야 돼. 그런 거 전연 모르고 요새만 알아도 되나? 그렇지 않다. 이 뿌리를 안다는 데서 사람의 깊이가 생기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천박해지고 만다. 그건 뿌리 없는 나무가 되고 만다. 그냥 시들고 말지, 사는 게 아니다. 그래서 뿌리라는 게 상당히 중요하고, 뿌리로 가야 다시 살아나지, 뿌리로 안 가면 살아나지 않는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 가야 다시 살아나지, 거저 이 땅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건 아니다. 언제나 뿌리라고 하는 거, 하나님이라는 거, 이런 데까지 가야 우리가 다시 살아나지, 그렇지 않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그런 얘기죠.--- 「16장」
만물萬物 개비어아皆備於我, 모든 만물이 다 내 속에 있다. 내 속에 있다고 하는 건 내 속에는 하늘로부터 받은 소질과 하늘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하늘로부터 받은 소질을 키우고, 하늘로부터 사명을 바라면 절성기지絶聖棄智, 목사도 필요 없고, 신학자도 필요 없다. 아까 한 말이지요. 그래서 복기초리復其初利, 그 근본으로 돌아가야 된다. 사람의 근본을 알아서 사람의 소질을, 사람의 사명을 찾는 데로 돌아가야 한다.--- 「19장」
무지, 무욕, 무위, 하는 게 노자의 혹은 장자의 핵심사상이죠. 이건 뭐 반야심경에도, 무지, 무득, 거긴 그렇게 돼있어요. 무득이나 무욕이나 같은 말이죠. 무위라는 것도 자연이란 말이니까 무지 ? 무욕 ? 무위, 이것이 아주 노자사상의 핵심이라 이거죠.
더 쉽게 말하면 무지無知 그럴 때는 지知가 없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죠. 지가 없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지가 무슨 지냐 하면 통일지니까 분별지는 없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죠. 분별지가 없고 무슨 지인가? 통일지다. 전체를 보는 거다. 혹은 스피노자처럼 꿰뚫어보는 거다. 직관지다. 이렇게 되는 거죠. 직관지라 해도 되고, 통일지라 해도 되고, 전체를 보는 지다. 이럴 땐 무無 그러는 것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전체다, 통째로 보는 거다. 자연을, 우주를 꿰뚫어본다. 통째로 본다. 더 알 것이 없다. 통째로 보면 다 보는 거니까 더 알 것이 없다. 그렇게 해서 무지라는 거죠.
그다음 무욕이라. 우주가 다 내 건데, 우리가 소동파의 적벽부에 보면 거기에 나오는 게 명월과 청풍이거든. 명월도 내거고 청풍도 내건데 우리가 더 바랄 게 뭐 있나, 이런 사상, 소동파란 사람이 불교 신자니까 같은 사상이지요.
그러니까 무욕 하면, 아무 욕심이 없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고, 더 크게 말할 땐, 이 우주가 다 내 건데 더 가질 게 뭔가. 이것이 무소유의 사상이지요. 무소유라는 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뜻도 있지만 우주 전체가 내 거다, 이런 뜻도 있다는 말이지요.
또 무위 그러는 건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다, 그런 뜻도 되지만 우주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데 더 할 것이 뭔가, 이런 뜻도 되죠. 우주의 움직임이 결국 내 움직임이야. 그러니 더 할 것이 뭐 있겠는가. 하나님하고 나하고 같이 일하는데 더 할 것이 뭐 있는가. 엄마한테 업혀 다니는데 더 할 것이 뭐 있는가. 엄마가 가면 나도 가고, 엄마가 멎으면 나도 멎고, 더 할 것이 뭐 있는가, 이런 식이 되죠.
이것을 크게 보면 무지 그러면 직관이란 말이고, 무욕 그럴 때는 우주가 내 거다, 란 말이 되고, 무위 그럴 땐 우주와 같이 돌아간다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이것이 무위라.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해.
그래서 무지 ? 무욕 ? 무위가 이게 노자의 핵심사상이다, 이렇게 보는 거지요.--- 「20장」
선악을 초월했다고 해서 악을 해도 좋다, 그런 말은 아니다. 선악을 초월했다 해서 악을 하라는 게 아니야. 선악을 초월했다면 더 선하라는 거지. 더 선하라는 거지 악을 해도 된다, 이런 건 아니다. 하상무소외何嘗無所畏, 그러니까 악은 언제나 절대 거절해야 된다.--- 「20장」
이 노자, 이런 고전은 무슨 특별히 해석하는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에요. 글자 그대로 뜻이 있는 게 아니죠. 이걸 전체로 직관해서 핵심을 붙잡아 거기에 맞춰서 해석하는 거죠.
그래서 어쩔 땐 정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어요. ‘없을 무’ 그러면 ‘없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고, ‘있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죠. 또 ‘절대 있다’ 이럴 때가 ‘무’거든요. ‘절대무’라는 것은 ‘절대 있다’ 이거거든요. 그게 ‘존재’라는 말이죠.
언제나 핵심을 직관해서 그걸 가지고 전체를 설명해나가고, 해석해가면 그게 해석이지요. 뭐 글자를 어떻게 했다, 어떻게 했다, 이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노자를 해석한 책이 많이 나왔는데, 글자 해석하자고 애쓰는 사람들도 많죠. 많은데 그렇게 되면 이 고전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기독교 성경이나 화엄경이나 다 마찬가지죠. 전체적으로 해석해야지, 직관지가 되어야지, 분별지로 해서는 안 되죠.--- 「21장」
노자 그러면 노자가 이천 오백 년 전 책인데 우리는 지금 이걸 보고 있거든. 왜 우리가 이걸 보고 있나? 이건 과거의 지나간 책인데 우린 이 속에서 무엇을 찾고 있나? 사람이 사는 기본 원리를 찾고 있다. 그 기본 원리가 이 책에 있다. 이 책에 있으니까 이건 이천 오백 년 전 책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책이다. 내 책이라 이거죠. 이건 지나간 책이 아니야. 이건 지금 우리하고 같이 있는 책이야. 그러니까 이 과거는 우리에게 뭘로 남아있나? 원리라고 하는 걸로 남아있다.--- 「21장」
천지지간天地之間, 천지 사이에 지자연양자只自然兩字, 자연이라는 두 글자처럼 가이진천지지리可以盡天地之理, 천지의 이치를 다한 글자는 없다. 자연이라는 글자는 진리라는 말과 같다는 거죠. 자연이란 말을 무위자연이라 할 때 자연은 하나님 나라나 같은 거죠. 그러니까 이 ‘자연’이란 말이 요 두 자지만 굉장히 의미심장한 글자예요. 노자사상의 가장 핵심은 자연이지요. 여기선 지금 진리라고 해석했어요. 자연이란 뭔가? 진리다.
--- 「2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