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닫기
사이즈 비교
소득공제
온계이해평전

온계이해평전

[ 양장 ]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정가
22,000
판매가
19,800 (10% 할인)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지역변경
  • 배송비 : 무료 ?
eBook이 출간되면 알려드립니다. eBook 출간 알림 신청
  •  국내배송만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5월 1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153*224*30mm
ISBN13 9791196843311
ISBN10 119684331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온계 이해(溫溪李瀣, 1496~1550) :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경명(景明), 호는 온계(溫溪). 선산 이정(李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진사 이계양(李繼陽)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식(李埴)이며, 어머니는 사정(司正) 박치(朴緇)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형이다.

어려서 작은아버지 이우(李?)에게 글을 배워 1525년(중종 20)에 진사가 되었고, 1528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533년에 사간, 정언 등을 거쳐 1541년 직제학에 올랐으며, 이어 경상도진휼경차관(慶尙道賑恤敬差官), 좌승지, 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544년에 첨지중추부사, 대사헌, 대사간, 예조참판을 지내고, 이해 또다시 대사헌에 제수되었다.

인종이 즉위한 뒤에도 계속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권신 이기(李?)를 우의정에 등용하려는 것을 반대하고 탄핵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이기의 원한을 사게 되었다.

1545년(명종 즉위년) 강원도 관찰사에 이어 1547년에 황해도 관찰사, 1549년에 청홍도 관찰사를 거쳐 1550년에는 한성부 우윤이 되었다. 그러나 명종이 즉위하면서 소윤이 득세하자 이기의 심복인 사간 이무강(李無彊)의 탄핵을 받아 무고 사건에 연좌된 구수담(具壽聃)의 일파로 몰리게 되었다. 이때 주위 사람들이 권세에 거짓으로 굴복하면 모면할 수 있다고 권하였으나 거절하였으며, 마침 김안로(金安老)가 인근에 살면서 그를 이끌고자 하였으나 끝내 거절하였다.

그러나 명종이 그의 결백함을 알고 특별히 갑산에 귀양보내는 것으로 그쳤지만, 귀양 가는 도중에 양주에서 병사하였다.

예서(隷書)에 뛰어났으며 선조 때 벼슬이 환급되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영주의 삼봉서원(三峰書院), 예안의 청계서원(淸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한 고문을 받고 유배길에 오르는 이해도 비록 옥에서는 나왔지만 계속된 혹독한 고문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이해는 조금도 위엄을 잃지 않고 정신을 가다듬고 할 일을 지시하고 있었다. 《경술일기》를 보자.

가노(家奴)인 의성 등 세 사람이 옥간(獄間)에 들어가 모셔 업고 나와서 교자(轎子. 어깨에 메는 가마)에 모셔서 함말질(咸末叱)의 집에 이르렀다.

아버님이 비록 변란과 옥고의 액을 겪었으나 정신은 옛 평상시와 다름이 없으셨으며, 모든 상하(上下)가 뵈옵고, 아는 사람들이 함께 위로하고 축하하면서 하는 말이, “처음 전지를 보았을 때는 다시는 가망이 없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 오늘날 천은(天恩)이 이렇게 미칠 줄은 몰랐다.”라고 하니 아버님이 대답하시기를, “대저 억눌렀다가 부추겨 올리는 것이 임금의 도량(度量)이니라.”라고 하였다.

아들들이 아뢰기를, “여러 번 혹형이 가해져 혹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셔서 그 한 가지 죄목에라도 억지로 인정[誣服]하실까 그것이 두려웠습니다.”라고 하였더니 아버님이 말씀하시기를, “처음 형장을 받을 때는 정신이 산란하여 태양이 빛이 없어 보이고 계속 맞은 그 자리가 몹시 아플 뿐 아니라 온몸이 떨리고 소름 쳐서 두 번 다시 참기 어려울 듯하였으나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끝까지 이렇게 나약하면 여러 번 당할 형벌을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하고 마음을 다져 두 번째 고문당할 때부터는 심지(心志)를 분발시키고 기력을 돋우어 혹독한 매가 비록 내려쳐도 별로 고초가 없었다.”라고 하셨으며,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처음 매를 맞을 때는 매의 숫자를 헤아리지 않았으나 두 번째부터 끝 번째까지는 하나하나 손꼽아 매의 숫자를 헤아리니 마음이 아침 해와 같이 밝아지더라.” 하셨다.

아버님이 형님[둘째 아들 녕]께 명하여 집에 돌아가 어머님을 뵈옵고 근심하시고 그리워하신 고통을 위로하고 마음을 펴 드리도록 하고 유배지에 머물 동안의 비용과 양식을 준비해서 가을과 겨울이 바뀌는 때에 갑산으로 와서 안부를 전하라고 하시고 나[?]로 하여금 모시고 가게 하였다. [아버님이 금부에 갇혀 있을 때 화를 예측할 수 없어 사람마다 위태하게 생각하였으나 이도사(李都事)는 말하기를 나는 영공(令公)의 덕상(德像)을 알기 때문에 반드시 흉하게 세상을 마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 p.54

선생이 퇴계 선생과는 금옥(金玉) 같은 형제로 지기(志氣)가 투합하고 도가 같았다. 일찍이 전원으로 함께 돌아가자는 약속을 하였는데, 한가로이 벼슬에서 물러나 지내며 침잠하여 갈고닦아서 쌓아 나가는 수양 공부를 충분히 이루었더라면, 그 고명(高明)하고 광대(光大)함이 장차 하남(河南)의 백숙(伯叔)과 더불어 천재(千載)에 아름다움을 나란히 했을 것이다. 그러나 벼슬길에 일찍 나갔고 사직(辭職)을 얻기는 어려웠으며, 귀양 가던 날에 생을 마친 것은 또한 그 불행이 정암과 같았다. 이제 선배들로부터 전해 오는 말을 들으니, “선생이 학행(學行)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라고 하고, 또 “퇴계의 정학(正學)을 계발했다.”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반드시 근거가 있는 말일 것이다.
--- p.128

온계는 굶주림의 현장을 쉬지 않고 둘러보며 대책을 강구하고 조치해야 하는 바쁜 일정을 보내야 했다. 보이는 것마다 탄식할 광경이니 눈물이 옷깃에서 마를 날이 있었을까. 그러나 부지런히 기민을 돌본 탓에 구휼한 고을마다 그를 칭송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당시 경북 의성에 살던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 1468-1563, 류성룡의 외조부)는 온계의 이렇게 구휼에 진력하는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이 부모가 봐주는 것 같다고 감동하는 광경을 전한다;

옥당의 학사 그대 보통과 다르거니
학 같은 자태이고 비단 같은 심장이네.
초야의 늙은이는 나라의 은혜(國恩) 자랑하고
마을의 노파들은 눈물 흘려 옷 적시네.
마음은 대궐 향해 충성심을 바치고
영남 땅 순행하며 마음 씀이 착했네.
죽게 된 만백성은 살아 더욱더 기뻐서
은혜로운 그 사랑 부모 같다 하였네.

온계도 진휼 임무 도중에 시를 통해 그런 마음을 밝힌다.

나랏일에 왜 나만 고생한다고 탄식했었던가.
매양 힘이 미치지 못함을 생각하고 애만 태웠다네.
험난함도 깔보며 벼랑 골을 따라가고
위태함도 무릅쓰며 바닷가를 따라간다.
죄다 목마른 물고기처럼 다투어 북적대니
고르게 혜택을 베풀어 각각 사랑해주어야지.
흉년 재앙이 사람 하나 잘 못 돼 생겼겠나.
허물은 푸르고 푸른 저 하늘에도 있다네.

진정으로 시절을 아파하고 나라를 걱정하기 위해서는 민중, 백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온계는 도시에서 성장하지 않고 향촌 예안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기에 가까운 거리에서 백성들의 삶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 p.179~

중종 말기부터 인종을 거쳐 명종 초기까지 이해는 유교의 왕도정치에 입각해서 임금이 해야 할 일, 가야 할 길에 대해서는 서슴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역설했다. 임금이란 자리에 오르면 높고 존귀한 만큼 올바른 임금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담은 [위군난부(爲君難賦)]가 그것이다.

오호라 천하보다 큰 것이 없고 임금보다 더 존귀한 것이 없다.
지극히 존귀함으로써 지극히 큰 데 있어서 진실로 온갖 일이 모이는 곳이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을 능히 풀어주는 사람이 임금이 되는 것이니
실로 임금 되기가 쉽지 않다.
하늘 자리에 있으면서 최고 높은 직위를 다스림이여.
하늘을 대신해서 어루만져주는구나.
억조창생이 모두 신복함이여.
고로 존귀함과 은총이 비할 데가 없구나.
총명한 재주가 뛰어나지 않으면 누가 능히 이 직분을 감당해내겠는가?
하물며 어루만지고 학대하는 것을 구분하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의당 백성들을 보호하고 베풀고 열심히 구휼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한 마음을 공격함이 그리 많고 만 가지 정사가 그리 번거롭다.
조금이라도 태만함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뭇 간특함이 때를 호시탐탐 엿본다.
잔치나 하고 게으르면 황음이 시작되는 단초가 되기에 족하고
기이하고 교묘한 놀이개는 사치의 근본이 될 수 있다.
달콤한 말과 비루한 얘기에 요행을 넘보는 문이 저절로 열리고
귀에 대고 소곤대는 말에 남을 참소하고 해치는 꾀가 살그머니 들어온다.
기회만 되면 비집고 들어와 임금의 마음을 간사하고 치우친 곳으로 이끈다.
왕도가 이렇게 해서 편당하게 되니 백성들의 근본을 어찌 세우겠는가?
일찍이 천명이 쉽지 않음을 모르니 어찌 백성들 보호하는 요점을 알리오.
슬프다 이런 군주가 대대로 이어지면서 천록 보전하는 자 더욱 적어지니
공자의 지극한 가르침 아니었으면 누가 감히 이런 말 제기해 펼쳐 보여주었겠나.
어렵게 수사를 동원해 부를 지으니 후세의 임금들이 깨우치기를!
--- p.196 ~

결국, 그 ‘우의(寓意)’는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처세’인가를 따지는 문제였다. 퇴계는 세상이 어수선하니 잠시 고향으로 물러나 성정을 함양하며 때를 기다리자는 쪽이고 온계는 정치적 환경은 변화무쌍한 것이니 그 속에서라도 본마음을 지키며 내 뜻을 알아줄 사람들과 함께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온계는 목멱산(木覓山), 즉 남산 북쪽 기슭 명례방에 살면서 소나무 숲 옆에 작은 서재[小書齋]를 지어 운암석실(雲巖石室)이라고 이름을 지었고, 취미(翠微. 먼 산에 아른아른 보이는 옅은 푸른 빛)라는 당호를 지어 스스로 취미헌(翠微軒)이라는 호를 가지기도 했다. 여기서 온계는 공무가 끝난 뒤에 곧바로 집으로 와서 사람을 많이 만나기보다는 책을 벗 삼아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퇴계는 당시의 정세를 보아 관계에 계속 있는 것보다는 고향으로 가서 인재를 키우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물어본 것인데, 온계는 관계에 나와서도 학문은 할 수 있다며 자신의 갈 길을 동생에게 천명한 것이다. 이때는 퇴계가 아직 대과에 들기 전인데도 퇴계는 자신이 보는 정치풍토가 우리 형제에게는 맞지 않으니 정치판을 떠나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보는 것이고, 여기에 대해 온계는 세상 속에서 정의가 살아있는 올바른 세상을 만들려면 그 세상 속에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확인해준 것이다.
--- p.237~

백암(柏巖) 김륵(金?)은 송재 이우(1469~1517)의 학문적 문아(文雅)와 온계 이해의 실천적 풍절(風節)이 서로 융합된 것을 발판으로 하여 이황의 성학이 완성되어 동방에 빛을 발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퇴계학이 누구도 이론(異論)을 제기할 수 없는 성리학적 세계관의 완전성을 갖춤과 동시에 실천성과 역사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저변에는 이황의 형인 이해의 학문을 포함하는 가학의 전통이 자리 잡고 있었던 셈이다. 이해의 학문이 퇴계학의 정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그것에 대한 조명이 궁극에 퇴계학의 성격을 규정하는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p.301~

일찍이 동계(桐溪) 정온(鄭蘊. 1569~1641)은 월천(月川) 조목(趙穆. 1524~1606)의 신도비를 쓰면서 “선생의 아름다운 바탕은 퇴계를 만나서 이룸이 있었고, 퇴계의 도학은 선생을 만나서 빛남이 있었다. 선생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퇴계의 탁마(琢磨)를 받았겠으며 퇴계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선생의 발명(發明)을 보전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선생의 언행과 사업이 소략하고 상세하지 못한 것이 많음에 대하여 후대에 선생을 살피는 이로 하여금 먼저 퇴계를 살펴서 얻도록 하고자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즉, “월천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퇴계를 알아야 한다.”라는 충고 섞인 권유이다.

정온의 이러한 권유를 퇴계와 온계 사이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지 않은가 한다. 퇴계의 아름다운 바탕이 온계를 만나 이룸이 있었는가. 온계의 생애가 퇴계를 만나 빛남이 있었는가. 퇴계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온계의 사랑과 지우를 받았겠으며, 온계의 억울한 죽음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퇴계가 물러나 도학을 성취할 수 있었겠는가. 온계를 알려거든 퇴계를 보라! 그리고 다시 온계의 자리로 돌아가라.
--- p.303~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온계 이해 평전』은 16세기 전반 사화의 시대를 살다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학자이며 관료이신 온계 이해 선생(1496~1550)의 생애를 후손인 이동식 선생이 가슴을 적시며 엮어간 아주 뜻깊은 책이다. (중략)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간신 소인배들에 의해 훌륭한 정인군자의 피해가 적지 않았지만 온계 선생처럼 우국애민과 위대한 업적에 반비례하는 억울하고 비참한 최후를 마친 예는 그다지 많지 않다. 개인적인 원한을 가진 소인배들이 일으킨 사화 때문이었다. 모름지기 국가나 개인의 역사를 올바르게 공부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어느 시대나 정직하고 진실하게 사는 사람들의 기본자세이며 합리적인 생을 영위하는 데 필수 불가결의 과제다. (중략) 조선전기 사림파의 영수였던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아버지[江湖 金叔滋]의 행적에 관한 기록들을 모아 간행한 『이존록(彛尊錄)』에 이런 구절이 있다.

“조상에게 아름다운 점이 없는데도 찬양하면 이는 세상을 속이는 것[誣]이고, 선행이 있는데도 이를 알지 못하는 것은 자손이 밝지 못한 것[不明]이며, 알면서도 전하지 않는 것은 어질지 못한 것[不仁]이다. 이 세 가지는 군자가 부끄럽게 여기는 행동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에 『온계 이해 평전』을 간행하게 된 것은 참으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중략) 이 책으로 온계 이해 선생은 돌아가신 지 470년 만에 우리 국민 속에 다시 살아나셨다. 역사 속에서 올곧게 살아가는 길을 찾으려는 분들의 애독을 권한다.
-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회원리뷰 (0건) 회원리뷰 이동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0건) 한줄평 이동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배송 구분 예스24 배송
  •  배송비 : 무료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반품/교환 안내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반품/교환 방법
  •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9,8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