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이론이 전통적으로 인간의 육체화의 세세한 내용 그리고 그것과 사회적 행위, 사회적 관계, 자아의 관련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경멸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이전에는 당연히 ‘고정된’ 것 또는 ‘생물학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인간의 측면을 사회학적으로 어떻게 탐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해왔다. 몸의 사회학에서 일어난 이러한 관심은 사회문화적 의미와 표상, 사회적 상호작용, 그리고 육체적 경험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을 포함하여 감정사회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할 가능성이 있다. 몸 자체와 마찬가지로 감정상태는 자연과 문화를 완벽하게 하나로 혼합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서 끝이 난다고 주장하기 어렵다. 라이언과 바바렛(Lyon and Barbalet, 1994: 48)이 주장하듯이, “우리가 몸과 사회세계를 분명하게 연계시킬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감정(느낌/감상/정서)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감정을 ‘육체화된 사회성’으로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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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경험에서 육체화와 사회문화적 과정 간에는 상보적 관계가 존재한다. 거기에는 일련의 육체화된 감각, 소리, 신체작용―눈물, 심박동 수의 증가, 복부 압박감, 마른 손바닥에 식은땀 나기, 신남, 미소 짓기, 웃기, 찌푸리기, 움찔하기, 소리치기 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그러한 것들을 감정상태로 경험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감각, 소리, 신체작용을 감정으로 또는 다른 현상으로 이해하고 경험하는 방식은 개인의 사회화와 개인적 생활경험에 달려 있을 것이다. 실제로 모든 인간이 미소 짓고 웃을 수 있는 해부학적 장비(입, 성대, 적절한 얼굴 근육)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사람들이 미소 짓고 웃는 맥락과 특정한 미소와 웃음에 대해 행위자와 (그곳에 있을 수도 있는) 타자가 내리는 해석은 분명 사회문화적 차원에 의해 틀 지어진다. 눈물 흘리기 역시 눈물을 만들어내는 몸의 신체적 능력에 기초하지만, 눈물은 사회문화적 조건에 반응하여 만들어진다(또는 억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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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다른 사람들은 남자가 우는 것과 여자가 화를 내는 것에 대한 사회적 비난에 대해 논평하고, 그것을 지배적인 남성성과 여성성 관념에서 나타나는 감정표현과 관련한 주요한 차이로 지적했다. 44세 여성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남자들도 아마 울고 싶겠지만, 내 생각엔 그것을 꾹꾹 참을 거예요.” 그녀는 자신이 남편과 25년 동안 결혼생활을 해왔지만 그가 우는 것을 결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러한 사회화의 결과 남자들은 보다 ‘냉담한’ 태도를 가지고 삶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특히 자신의 남편이 그러한 접근방식의 증거라고 말했다. “그가 여자가 겪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타격을 받을 수도 있어요.”
--- p.111
감정이 없다는 것은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의 특징이자 그것의 지탱물인 동정심과 공감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몇몇 사회적 맥락에서는 감정통제력의 붕괴가 긍정적인 것으로, 즉 따뜻한 퍼스낼리티나 감수성이 강한 퍼스낼리티의 표시로, 또는 다른 사람과의 감정적 유대가 강한 사람의 표시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의 곤경에 눈물을 흘릴 때, 또는 가까운 가족 성원이나 친구를 잃고 슬픔을 드러내는 경우가 그렇다. 이러한 관점에서 감정적이라는 것은 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오히려 강한 확신과 활력의 지표이다(Lutz, 1986: 294). 감정적인 (마음이 따듯한) 퍼스낼리티와 대비되는 것은 ‘냉혈적’ 사이코패스, 즉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그리하여 다른 사람을 죽이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짐승 같은 인간’이다. ‘감정 없는’ 인간 또는 비인간 피조물이라는 개념은 공포의 기준의 하나로, 두려움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 p.174
보스카글리(Boscagli, 1992/1993)에 따르면, 이전에 남성이 자신의 감정― 이를테면 슬픔―을 기꺼이 표현하는 것이 ‘여성적’이라는 낙인이 찍혔다면, 탈근대시대에 그것은 남성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남성들은 이 시대를 남성 자아의 위기 시대라고 인식한다. 매스미디어는 이러한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새로운 남성”의 출현을 지난 20년간 페미니즘이 낳은 결과라고 자주 언급한다. 그것이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남성들은 젠더관계의 변화에 스스로가 보다 ‘여성적’이 되게 놔두는 식으로 대응해왔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들에게 감정적 고통을 야기하는 ‘남성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중이다. 남성들이 흔히 사용하는 담론이 바로 ‘감정적인’ 개인이 보편적 인간이라는 것이다.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가 새로운 남성의 교의이다(Boscagli, 1992/1993: 73). 보스카글리는 이 ‘새로운 남성’이 흘리는 눈물은 하나의 생존수단, 즉 남성이 그들의 우월함을 재확인하는 수단으로 전유된다고 주장한다.
--- p.252
선물의 상징적 지위는 선물이 우정과 가족관계의 감정경제에서 수행하는 역할 때문에 흥미로운 성찰 대상이다. 선물 주기는 그러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하나의 중요한 의례이며, 그러한 관계들과 함께 하는 우정, 사랑, 감사와 같은 전통적 감정에 의해 고무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세 가지 감정 모두는 행위자가 다른 사람과 일체감을 갖게 하며, 따라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자신과 타자 간의 경계가 부정되고, 외부인들과 대비되는 하나의 집합적 정체성이 규정된다”(Cheal, 1988: 18). 선물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간의 관계의 성격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긍정적 감정을 전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가브리엘과 랑(Gabriel and Lang, 1995: 58)이 지적하듯이, 선물이 관계에서 수행하는 역할 때문에 “선물은 매우 민감한 소비영역이다”. 선물의 가격이나 질에 대한 잘못된 판단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당혹감, 굴욕감, 분노를 포함하는 일련의 감정을 유발할 수 있다.
--- p.282
우리가 우리의 집과 주변 풍경에 대해 갖는 감정적 애착은 그러한 환경 속의 대상, 그것의 냄새, 감촉, 소리, 색깔과의 일상적인 육체화된 상호작용으로부터 발전한다. 집 안의 많은 개별 물품들을 이용하고 그것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칙센미하이와 록버그-할튼(Csikszentmihalyi and Rochberg- Halton, 1981: 184)이 소유물에 대한 영적 에너지의 투여라고 기술한 것―을 통해 ‘집’의 의미를 소통하는 하나의 게슈탈트gestalt[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지각할 때 떠오르는 형태나 형상 - 옮긴이]가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그러한 애착은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친숙해지고 습관화된 반복적인 감각적 경험에,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 느낌―좋은 느낌과 싫은 느낌 모두―에 근거한다.
--- p.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