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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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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5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152*225*20mm
ISBN13 9788958244080
ISBN10 8958244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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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속엔 늘 바람이 산다
바람 부는 날과 안 부는 날이 반반이다
다만, 바람 부는 날에도 바람 안 부는 시간, 바람 안 부는 지점이 있다
그 지점에서 그 시간을 바람 없이 지날 때, 뜻하지 않은 한때의 평화가 생광하는 자유에서 오고 있었다
그걸 마음으로 마중하면 통속에서 이탈한 하루가 길다
요즘, 내겐 바람 없는 삶이 바람 속에 산머루쯤으로 익어 가는 시절이다
이젠, 바람이 안 불 때를 기다리다 바람 부는 날에도 바람 속으로 들어가 바람에 부대끼며 바람의 글을 쓴다
쓰며 더 세게 흔들린다
--- 「바람 부는 날에도」 중에서

해후였다
첨엔 나만 반겼다
한참 쳐다보는데 그녀가 슬프다
돌아서자 나를 노려본다
나는 작심하고 눈 실룩이기 시작했다
그만 무표정하다
그림 속 모나리자에겐 눈썹이 없었다
눈은 웃고 있지 않고
안면 조직이 움직이지 않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그림은 미완성
입가에 번지다 멎어버린 미소의 영원한 실종
한때 그녀에게 홀렸다
결국 나를 웃게 하지 않았다
웃게 한 건
어머니의 웃음이었다
당신의 흙 묻은 얼굴에 살포시 퍼지던
그 미소
--- 「모나리자에게서 돌아서다」 중에서

둥글게 꺾여 늘어진 골목엔 흐르던 시간이 멈춰선 자리로 낯선 잡풀이 무성하군요
먼 데를 돌아오는 사이 집이 헐리고 밭이 된 세월만큼 철딱서니 없는 내 기억도 파이다 누렇게 삭은 몇몇 뼈대로 삐걱거립니다
그때의 바람은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을까요
어른으로 늙어 가고 있을 그때의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으며
흙 속에서 고물대며 알갱이로 일어나는 내 아잇적 서사의 서두입니다
이름으로 태어났던 자리에 서서 그때의 울음을 터트리고 싶지만 다독여 줄 손이 없는 지금, 차마 울지도 못합니다
그래도 이상한 것이 나이 탓일는지요, 혼자서 축축하군요
--- 「유년의 집터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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