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富)와 빈(貧), 영(靈)과 속(俗), 지(知)와 무지(無知),
과거와 미래, 전통과 첨단이 혼재된 나라 인도!
이러한 혼재 속에서 읽히는 변화가 있었다. 어느 한구석에서는 카스트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또 어디선가 새로운 성공 스토리가 나오고 있었다. 인도의 젊은이들은 새롭게 열린 가능성을 보고 뛰고 있었으며, 이 모습은 마치 한국의 1970~80년대를 연상케 하는 듯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큰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인도가 어떻게 변화해 나갈 것인지, 또 한국은 어떤 기회를 모색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가까운 지인들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 특히 우리 젊은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인도에서의 경험을 잘 정리하면 무언가 유용한 읽을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들어가며」중에서
그렇다면 과연 인도의 균형추가 될 만큼 많은 중산층은 언제쯤 나올 것인가? 그 시기를 가늠하는 데에는 ‘소득과 교육’이 중요한 지표이다. 거기에 얼마나 많은 인구가 빈곤층으로 남아있는지, 이들이 중산층으로 성장하는 움직임은 있는지, 이 역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다. 또한 인도 정부는 어떤 청사진을 가졌는지도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필자는 인도의 높은 교육열에 주목하고자 한다.
---「떠오르는 중산층」중에서
인도의 민주주의를 견인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도인들의 토론 문화이다. 의회에서는 물론이고 (……) 공론(public debate)의 전통이 인도의 민주주의에 크게 기여한다고 평하였다. 대사관저 만찬 행사에서도 인도인 참석자들은 필자가 무엇이든 이슈만 제기하면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 인도의 사관학교에서도 부하들을 무조건 명령에 따르게 하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설득해야 한다면서 토론 기법까지 가르친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인도의 소중한 자산이다. 인도 사회는 공권력에 의한 억압이 상대적으로 적으며 높은 수준의 개인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상적인 것은 아마도 높은 자유를 구가하면서 효율성과 공정성이 확보된 정치체제일 것이다. 국제적인 평가도 중국은 인도보다 효율성과 공정성은 높아도 자유지수는 낮은 것으로 나온다. 이제 인도의 민주주의는 높은 수준의 자유에만 만족하지 않고 공정성과 효율성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민주주의, 축제를 넘어 효율로」중에서
인도의 북쪽 히말라야 산기슭에는 네팔, 부탄, 시킴이라는 세 개의 왕국이 있었다. 네팔은 2001년에 왕자가 아버지인 국왕과 가족을 몰살하고 자살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고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2008년에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석가모니가 탄생한 나라이지만 국민의 80%가 힌두교 신자이다. 인도와 네팔은 영국 지배 시절부터 특별한 관계였으며 독립 후에도 긴밀한 협력을 이어나갔으나, 네팔 내부에서는 인도의 영향력을 제어하기 위해 중국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항상 있었다. (……) 부탄 옆에 있는 시킴도 사실상 인도의 보호국이었다. 이 히말라야의 두 왕국은 왕족 간에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이기도 했다. (……) 그런데 인도의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미국 여성으로 남기얄왕의 두 번째 왕비였던 호프 쿠크(Hope Cooke)가 있었다. 미국의 대학교 1학년 학생이던 그녀는 (……) 부인과 사별하고 자녀들을 다즐링 기숙사 학교에 보내고 있던 39세의 남기얄왕을 만나 운명적 사랑에 빠져 1963년 결혼하게 된다. 동화 속의 이야기같이 왕비가 된 그녀는 시킴을 제대로 된 독립국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소명감을 갖게 되었고, 유럽과 미국 여러 곳을 방문하여 시킴을 알리는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유엔 가입을 통해 시킴을 완전한 독립국이 되게 만들겠다는 왕비의 발언은 인도의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었으며 결국 인도의 합병 조치를 불러일으켰다.
---「주변국 다독이기」중에서
필자가 인도에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는 “인도가 중국처럼 성장할 수 있을까요?”라는 것이었다. 14억 인구의 거대시장에 풍부한 자원과 탄탄한 고급 기술 인력, 달은 물론 화성에도 탐사선을 쏘아 올린 놀라운 과학기술을 보유했지만, 세계 경제에서의 위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라했고 지금의 경제성장이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인도는 2015년부터 중국보다 빠른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국가 GDP는 세계 5위, 구매력(PPP)으로 환산하면 세계 3위이다. 아직 개인 소득은 세계 140위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인도 국민은 물론 전 세계가 인도의 잠재력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적인 관측을 하고 있다.
인도는 한때 중국과 함께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었다. 1526년 무굴제국이 탄생한 이후로 약 2세기 동안 빠르게 성장하여 1700년대에 들어서는 세계 GDP의 20% 이상을 차지하였다. (……) 19세기 말 인도가 미국으로부터 가장 많이 수입한 품목은 영국인들이 진토닉에 넣어 마시는 얼음을 만들기 위한 알래스카산 빙하였다고 하니, 당시의 인도 경제가 처한 상황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가난의 역사」중에서
모디노믹스는 개혁, 개방, 부패 척결 등 인도의 변화를 아우르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모디노믹스의 핵심은 강력한 리더십, IT 기반 행정부, 인프라 건설이다. 그중에서도 거대 인구와 넓은 국토를 빠른 속도로 변화시키기 위해 IT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인도에는 아직도 7천만 명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절대 빈곤층이고, 절대 빈곤까지는 아니라도 인구의 1/3이 아직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전(前) 정권의 정책 실패를 잘 인식하고 있던 모디 정부는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근절하는 방안으로 저소득 국민에게 지급하는 보조금을 수혜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방식으로 변경하였다. 소규모 마을에도 은행 지점을 설립하고 빈곤층 주민들이 직접 은행 계좌를 개설하게 하여 보조금을 이 계좌로 바로 송금함으로써 중간 관리의 착복 가능성을 없앤 것인데, 그 과정에서 스마트폰과 모바일뱅킹이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초고속 인터넷망을 설치해 모든 주민이 인터넷을 통해 정부 포털을 이용하도록 했다. IT의 확산은 단순히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부 기관들의 행정을 투명하게 만들며 서민들의 의식을 바꿈으로써 사회적 변화도 가져올 것이다.
---「모디노믹스」중에서
한국인들에게는 아직도 인도는 잠재력은 크지만 무언가 막연하고 먼 곳이자 미지의 땅이라는 선입견이 강하게 남아있다. 기업인들도 거대한 인도 시장에 관심을 가졌다가도 막상 인도의 무더위와 배탈, 이질적인 문화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내 의지가 꺾이는 경우가 많다. 인도는 다양하고 복잡한 나라로 10km마다 새로운 풍경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 인도와의 협력관계는 우선 인도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빈곤과 무질서, 낙후된 시설로 평가할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인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인도인과 상담이나 거래를 해 본 기업인 중에는 실패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나쁜 선입관을 확산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에서 비즈니스 파트너는 신중한 검토를 거쳐 잘 선택해야 하며, 일단 신뢰를 쌓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인도인과 합작사업하는 한국 기업인 여러 명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 모디 총리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각종 대형 정책 즉 메이크 인 인디아, 스킬 인디아, 디지털 인디아, 클린 인디아, 스마트 도시 등은 모두 한국에 강점이 있거나 성공 경험이 있는 분야이다. 정보통신기술, 원자력, 방위산업 등의 분야에서는 한국과 인도가 윈-윈 협력할 수 있는 서로 다른 강점이 있어, 어느 한쪽만의 이익이 아니라 서로의 성장을 견인하는 상생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신남방정책 중심에는 인도가 있고, 인도는 신동방정책(Act East Policy)을 추진하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와의 관계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이제 인도를 거대한 시장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어떻게 인도와 함께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또한 모디 총리의 취임 이후로 국제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존재감을 높이고 있는 인도는 평화로운 한반도와 자유롭고 번영하는 인도 태평양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협력 파트너이기도 하다.
---「신화와 현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