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으로만 듣던 남자의 아내, 이서린을 처음 본 건 그녀가 다인실로 옮겨진 지난 가을이었다. 이서린에 대한 소문은 한태현만큼이나 흉흉했지만 김간호사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살인사건 용의자의 아내.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이서린은 공포의 존재처럼 여겨졌다. 그녀는 이서린을 공포의 존재로 밀어붙이는 다른 간호사들의 말을 들으며 힘줄이 돋아난 한태현의 팔을 생각했다. 다들, 진짜 공포가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 p.10
지성은 공예소 마당에서 장작을 패던 한태현을 기억한다. 두꺼운 팔뚝이 보이게 소매를 걷어 올리고 도끼를 휘두르던 강인함. 주저없이 내리치던 손과 박살나던 나무들. 조사를 위해 한태현을 찾았을 때, 그에게서 나던 땀 냄새와 나무 냄새까지도. 한태현에 대한 모든 게 강렬하게 박혀 기억에 남았다. “이서린 씨 기억이 필요합니다.” 창밖의 날이 흐렸다. 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쌀쌀함이 바깥에 있었다. 새들이 지저귀며 날았어도 완연한 봄은 아니었다. --- p.37
“형에 대한 건 얘기 안 해줄 거야?” 희주는 정호의 대답을 기다리며 입을 다물었다. “형은…….” 멀리 희주의 오피스텔이 보였다. “좋은 사람이야.” 정호는 희주가 더 묻기 전에 라디오를 켜고 볼륨을 높였다. 회피하려는 모습이 당당했다. “평범한 사람.”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에 묻혀 희미하기는 했지만, 희주는 정호의 뒷말을 똑똑히 들었다. 좋은 사람과 평범한 사람.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