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했던 것보다 쉬웠어.”
“수고했어. 이제부터는 좋은 의뢰인을 찾아서 조금씩만 일을 하면 돼.”
“주문은 많이 들어올까요?”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수요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낼 필요가 있어. 오늘밤처럼.”
“과연.”
“그 뒤에 냉장고를…… 그렇지, 한달에 5만 엔 정도로 의뢰인에게 빌려주는 것으로 하지. 계약 기간은 15년이고.”
“15년? 어째서죠?”
“15년이 지나면 발견되어도 시효가 지나니깐.”
“아아, 그렇군요.”
왼쪽 끝의 냉장고에는 이미 ‘잘생긴’ 신사가 딱딱하게 ‘く’의 모양으로 구부린 채 수납되어 있다. 신스케는 그 문을 살짝 닫고 두 번 다시는 열지 않을 생각으로 열쇠를 잠갔다.
이것으로 됐다. 내일부터는 좋은 의뢰인을 찾아다니자. 요즘 세상이라면 반드시 수요가 여기저기에 있을 것이 틀림없어. 비즈니스는 대성공이다. 매달 수입은 안정되게 들어올 것이고 게이코는 믿음직한 남편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 게이코가 ‘살짝 길을 빗나갔던 일’은 깨끗하게 잊어버릴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된 남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 25쪽
나카이의 부인은 결혼하기 전 꽤 오랫동안 이 회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원들은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녀는 일 년쯤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것 역시도 모두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나카이가 데리고 온 이는 아무리 눈을 비비고 봐도 일 년 전에 죽은 그 나카이의 부인이 아닌가. 사무실에서는 청빈한 태도에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그 몸짓 그대로, 이전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의상도 그때 그대로였다.
나카이는 ‘아내’와 팔짱을 끼고, 조금은 어깨를 들썩이며 테이블 사이를 가로질러 사장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해군장교도 고레인저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길을 열어주었다.
“집사람이 꼭 함께 오고 싶다고 해서…… 타임머신을 써서 데리고 왔습니다.”
일행인 여자도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했다. 그런데 그 말투조차도 모두가 기억하고 있던 그녀의 것이었다.
-「가장파티」, 70쪽
씨를 심고 나서 한 달 정도 지나니 오무의 나무 싹이 났다. 다섯 개의 손가락을 한 곳에 모아놓은 듯한, 두툼한 아스파라거스와 같은 싹이었다.
흙에 가까운 곳은 짙은 초록색이었지만 싹이 피어오르는 쪽은 투명한 연두색이었다.
지하실에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오무의 싹을 보면서 단 한 번이지만 M의 집에서 오무의 성장한 나무를 본 것을 떠올렸다.
“잘 보라고, 놀라지 말고.”
그렇게 말하고 M은 창고 안쪽 깊숙이 숨겨진 문을 열었다.
나는 헉하고 숨을 삼켰다.
문이 삐거덕거리며 열리자 그 안쪽에 하얀 물체가 떠올랐다. 음영이 뚜렷한 빛 속에서 하얀 여자의 나체가 우뚝 서있었다. 여자는 무거운 해바라기처럼 기우뚱하게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지만 문에서 쏟아지는 빛에 놀라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검은 머리가 어깨까지 늘어져 있었고, 긴 속눈썹 밑에 커다란 눈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활짝 열려 있었다.
지성이 없는, 백치와 같은 눈이기는 했지만 그 촉촉한 빛깔은 무엇에 비길 만한 것이 없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콧날은 똑바로 서 있었고, 불거져 나온 아랫입술이 조금 부풀어 올라 미소를 짓는 듯 살짝 열려 있었다.
“가슴이 작은 여자여서…….”
라며 M은 변명이라도 하는 듯 중얼거렸다. M이 어떤 여자를 어떤 방법으로 골랐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에 대해서 묻지 않는 것이 오무를 키우는 사람들 사이의 의리라고 M은 말했었다…….
어차피 그녀가 나비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존재라는 사실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똑같이, 정말 그 모습 그대로 재생되는 거야?”
“그렇다니까.”
토끼 새끼 같은 가슴은 그다지 볼륨은 없었지만 풍선 같은 탄력이 있어서 주위의 피부에 비해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색연필로 칠한 듯한 연한 복숭아 빛의 유두 주변의 피부, 그 중심에 둥글게 유두가 도드라져 있었다.
완만한 복부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부분은 수북하게 검은 잎이 솟아 있었고, 두 다리는 허벅지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발목으로 조금씩 푸른빛이 짙어져서 그대로 흙 속으로 묻혀 있었다.
“손가락 끝에 잎이 난다고.”
M은 그렇게 말하면서 은색 가위로 어깨 부근에 작게 돌출한 잎을 잘라냈다.
---「기묘한 나무」, pp.105-107
그러고 나서 일주일 동안 나는 전력을 다해 다지마 씨에게서 빌려온 책을 읽었다.
과연 독서광이 추천한 만큼 그 어느 것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단지 다지마 씨가 마지막으로 추천해주었던 ‘가장 무서운 책’만은 공포와는 거리가 먼 ‘사랑의 시집’이었다. 다지마 씨와 그의 사랑해 마지않던 아내와의 행복한 나날이 달콤한 사탕을 빨 듯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지마 씨는 아마도 다른 것과 착각했던 모양이다.
나중에 책을 돌려주러 갔을 때 나는 그 사실에 대해서 물었다. 그랬더니 다지마 씨는 부드럽게 가죽 표지를 더듬으면서 역시나 조금은 부끄러운 듯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이 표지는 아내의 가죽이라오.”
파이프가 딱 하는 소리를 냈다. 쥐 죽은 듯한 집안을 충실한 노 부인과……. 확실히 공포는 상상 속에 있는 듯하다.
--- 「공포의 연구」, pp.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