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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5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340쪽 | 344g | 122*188*17mm
ISBN13 9788961849500
ISBN10 8961849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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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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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짙은 갈색, 그 다음엔 보라색, 그리고 주황색. 이렇게 나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는 면들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색을 띈 물감을 차례대로 아크릴판에 짜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그 물감들을 섞었다.
희한했다. 검은색은 나를 나타내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그 색의 물감은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물감은 점점 검은색으로 변해 갔다.
--- p.10

요즘은 정신과 건물이 다른 병원 건물들보다 근사하다는 점에 놀랐다. 기분을 조금 가볍게 해보려고 건물의 예술적 매력에 취한 듯이 생각해봤지만, 역시 건물의 근사함보다는 내가 이런 곳에 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그러나 놀라움보다는 두려움이 컸고 두려움보다는 나에 대한 실망감이 더 컸다. 내 모습을 받아들인다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 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 p.29

그나마 절이나 성당 따위는 좀 낫다. 왕릉과 같은, 인간을 위한 공간을 볼 때면 박애주의적 상상력은 심장을 찌를 정도로 날카로워진다. 고작 인간을 위해서 인간들이 그렇게 많이 죽어 갔구나. 거만하고 악한 인간. 그런 생각이 내 몸 안을 가득 채워, 모기가 피를 빨면 그도 내 빨간 피로 인해 같은 생각에 젖게 될까 싶을 정도로 커진다.
--- p.52

인간의 몸을 한 지금, 역겨운 존재인 내가 비슷한 누군가에게 연민의 마음을 품지 못하고 역겨움을 느끼는 순간 또한 역겨움의 연속이다. 나는 당최 인간을, 그전에 주변 이들을, 무엇보다 인간인 내 모습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 p.66

아무튼 감사 인사는 빠뜨리면 안 된다. 온전한 나는 전혀 조언을 받을 이유가 없지만, 누구나 때로는 필요 없는 잉여의 것을 갖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나는 물질적인 잉여에는 전혀 감흥이 없지만 감정적 잉여에는 꽤 끌리는 편이다. 거기엔 그 자체로 무언가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것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 p.146

인간들은, 특히 종교 지도자들은 요즘 시대를 보며 ‘진실이 사라진 시대’라고 부르지만 그건 사실도 진실도 아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기에 존재한다. 오히려 ‘사실이 사라진 시대’라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옮음에 정도를 부여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이런 류의 말장난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다.
--- p.168

주변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 이는 물론 내 존재의 의미를 지키는 데에 있어 굉장한 장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주변에 의해, 외부에 의해, 스스로를 속이는 내면의 소리에 의해, 진정한 진실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들에 의해 빚어진 혼란을, 다시 주변에 의해 잠잠히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 pp.247-248

진실을 마주하기엔 그이는 너무 연약해진 것이다. 혹시라도 당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면 지금이라도 당신의 두 발로 일어서기를 바란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선택들로, 우연의 이유들로 흘러가버린 시간들을 인정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는 것이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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