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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황녀 1

두 얼굴의 황녀 1

류주연 | 동아 | 2020년 06월 04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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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6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496쪽 | 586g | 147*210*22mm
ISBN13 9791163023418
ISBN10 116302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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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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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황녀 전하. 너무 순하기만 하셔서…….”
“순한 건지, 바보인 건지 모르겠어요. 아드리안을 아직도 내치지 않았다니.”
“남자들 마음 하나 붙잡지 못하면 황녀가 다 무슨 소용이야.”
“이 정도면 전하께서도 당할 만해서 당한 거 아닌가.”
한심한 황녀. 눈앞에 만찬이 차려져 있는데도 그걸 떠먹지도 못하는 모자란 사람. 그들은 아폴로니아가 자리를 벗어난 후에도 한참을 쑥덕거렸다.
온갖 속삭임과 눈초리를 뒤로하고, 한 떨기 백합처럼 가냘픈 아폴로니아는 청초한 걸음걸이로 황제궁을 나서서 바깥뜰로 향했다.
그녀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며 누군가를 찾았다.
“전하! 전하! 이쪽이에요.”
그녀 뒤에서 귀여운 목소리가 속삭이듯 불렀다. 아폴로니아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기둥 뒤에 숨어 있던 누군가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손짓했다.
배은망덕한 시녀, 주인을 무는 개, 희대의 탕녀.
아드리안 리스였다.
“아드리안!”
아폴로니아는 시녀의 이름을 한 번 외쳐 부르더니 빠른 걸음으로 곧장 그녀에게 다가갔다.
대신들 중 하나가 보았다면 드디어 정신을 차린 황녀가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시녀에게 뺨이라도 한 대 치는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황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잘해 주었다.”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는 아폴로니아의 얼굴에는 눈부시게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조금 전 속눈썹 끝에 매달렸다가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은 증발이라도 된 듯 흔적도 없었다.
“그럼 성공이군요?”
“네게 깊이 빠진 모양이야. 고생이 많았다.”
약혼자의 배신을 입에 담는 황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워 보였다.
“전하께서 시키는 대로 한 게 다인데요. 누구를 보내도 성공했을 거예요.”
아드리안이 겸손하게 말하다 말고 한숨을 쉬었다.
“한편으로는 아쉬워요. 전하께서 마음만 먹으면 로뮈르 왕자를 직접 유혹해 발밑에라도 꿇리셨을걸요.”
“로뮈르 왕국이 뭐라고 그걸 아쉬워해.”
아폴로니아가 차갑게 웃었다. 불과 몇 분 전 눈물을 글썽이던 사람과 동일인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냉정함이었다.
“그보다 왕자가 네게 청혼하면…….”
“오늘 일이 바로 로뮈르 국왕의 귀에 들어가도록 손을 썼어요. 충동적으로 파혼까지 했지만 국왕은 죽어도 일개 하급 귀족을 왕자비로 받지 않을 거예요.”
아드리안은 이미 주인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명랑하게 보고했다.
“잘했다, 나의 보물. 이러니 너만 아무 데도 안 보내는 거지.”
아폴로니아는 충성스러운 시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5년 전 아드리안과 주종의 연을 맺은 날부터 단 한순간도 이 아이의 가치를 잊지 않았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로뮈르 왕국의 왕자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아폴로니아는 언제나 그렇듯 황제가 정해 주는 혼사에 순종했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뒤로 시녀를 시켜서 왕자 쪽에서 파혼하도록 유도했을 뿐. 아름다운 아드리안을 일부러 더 아름답게 꾸며 왕자의 시중을 들도록 했을 뿐. 혼담이 오가는 몇 달 동안 왕자를 치밀하게 조사해서 아드리안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취향에 맞추었을 뿐.
“다른 아이들의 연락은?”
“말도 마세요. 감사하다는 편지가 끊이지 않고 오고 있어요. 비앙카는 둘째 왕자를 출산한 와중에 전하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고요.”
“선물로 은을 좀 보내야겠구나.”
아폴로니아의 충직한 시녀는 아드리안뿐만이 아니었다. 아폴로니아의 뒷공작으로 훌륭한 약혼자들과 결혼해 왕비가 된 다른 시녀들은 이제 그녀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 되어 있었다.
“은을 보내면 그만큼의 황금이 돌아올걸요.”
아드리안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며 덧붙였다.
“다들 전하의 일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언제든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아폴로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참 오래도 기다렸지.”
“…….”
“뭐, 당연한 거 아니겠니. 아버지도 어머니와 선황을 죽이는 데 10년 공을 들였으니.”
아폴로니아가 피식 웃자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강렬하게 빛났다. 무시무시한 말과 대조되는 차분한 태도에 아드리안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주인은 항상 그랬다. 성녀 같은 미소를 띠고 비수를 벼리는 분.
그녀의 목표는 뚜렷했다.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었다.
“다시 빼앗아 오려면 그에 못지않게 준비해야 하지 않겠니?”
황위 찬탈. 아폴로니아의 계획은 그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찬탈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녀의 것이었으니까. 입으로는 역모를 말하면서도, 아폴로니아는 따뜻한 봄바람을 즐기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오늘의 깔끔한 성공을 되새겼다.
‘아버지, 저는 왕자와 결혼하지 않을래요.’
왕비가 아니라 황제가 될 거거든요.
‘아버지 곁에서 평생 살고 싶어요.’
정확히는, 아버지가 앉은 바로 그 자리에서 살고 싶어요.
기다려요 아버지, 딸이 가고 있어요.
빼앗긴 내 것을 되찾으러.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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