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런데, <절규>는 왜 없지?"
실내를 둘러보며 나는 그 그림을 찾아보았다.
"<절규>는, 많아."
<절규>는, 많아. 그 말은 어쩐지 비장하게 들린다. <절규>가 많다니. 마지막 방에 이르러서야, M이 <절규>는 많아, 라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하얗게 칠해진 채 관람객을 위한 나무 의자 하나 없는 그 방은 온통 <절규>의 방이었다. 기억 속의 그 표정, 처음엔 성별을 알 수 없는 한 사람의 일그러진 얼굴이 먼저 보인다. 죽음의 얼굴과 정면으로 마주친 듯 공포에 질린 눈, 영원히 닫힐 것 같지 않은 동그란 입술, 핏빛 하늘은 색채가 아니라 비명의 음파처럼 소용돌이 치고 배면의 두 남자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 유유히 걷고 있다. 자세히 보면 검푸른 물빛 사이로 작은 배와 교회당이 떠 있다. 큰 교실만 한 그 방엔 모두 <절규> 시리즈로 채워져 있다. 단색 판화, 혹은 채색 판화, 조금씩 색채의 톤이 다른 회화작품, 연필 스케치, 큰 <절규>, 작은 <절규>, 그리다 만 <절규>, 무채색의 <절규>, 붉은 <절규>, 검은 <절규>, 희미한, 손바닥만 한, 고막을 찢을 듯한, <절규>. ......한순간, 나 역시 그림 속의 그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귀를 막고 실다. 그 방은, 너무 날카로워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고음역의 절규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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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1.
7월 21일이라면, 그가 떠나기 하루 전의 날짜였다. 그날 그는 일찍 돌아왔었다. 저녁을 같이 먹었는데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책을 읽다 메모해 둔 구절일까. 몇 줄 되지 않았다.
.....루즈몽은 그랬다. 우리의 생에는 두 개의 윤리가 있다. 하나는 결혼의 윤리며, 다른 하나는 열정의 윤리다. 인생에 밤과 낮이 있듯 태양 아래의 윤리와 달빛 아래의 윤리가 있을 것이다. 어느 것이 더 무거운 것인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삶은 어느 순간까지 선택을 강요할 것인가.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선택을 강요하는 삶이여, 나는,
메모는 그렇게 쉼표에서 뚝 끊어져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루즈몽이라는 사람의 얘기일까.
<나의 피투성이 연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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