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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 아니어도 괜찮아

베토벤이 아니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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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5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558g | 148*210*30mm
ISBN13 9788935663392
ISBN10 8935663395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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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구한 시게티의 옛 음반에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 1862-1918의 「달빛」이 실려 있다. 즉물적 연주자와 탐미적 음악이 어울리겠나 생각했는데 마음에 쏙 든다. 시게티가 비추는 달빛은 담담하다.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 1908-74의 감미로운 바이올린 달빛, 조성진의 촉촉한 피아노 달빛보다 더 끌린다.--- p.19

같은 동네에 살던 지인에게 클래식에 입문해보라고 권한 적이 있다. 적당한 수준의 오디오를 추천하고 초보자가 듣기 편한 음반도 몇 종류 골라주었다. 어느 날 저녁 그가 CD 한 장을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아무래도 음반이 “고장난 것 같다”는 것이다. 그것은 스트라
빈스키Igor Fyodorovich Stravinsky, 1882-1972의 발레음악 「봄의 제전」이었다. 뒤투아Charles Dutoit, 1936- 가 몬트리올 심포니를 지휘한 것으로 명연주로 평가받는 음반이었다. 고를 때 쉽지 않은 음악인데 괜찮을까 걱정하긴 했으나 음반이 고장났다고까지 느낄 줄은 몰랐다. 미안한 마음이 앞섰지만 그가 당황해하는 얼굴은 허파가 터질 것 같은 폭소를 불러일으켰다.--- p.22

청년의 이름은 김창완. 두 동생 창훈·창익과 ‘무이’無異라는 이름의 그룹사운드 활동을 하는 리더싱어였다. 세 형제는 그해 제1회 대학가요제 예선에서 「문 좀 열어줘」로 1위를 했으나 창완이 대학을 졸업한 뒤라 본선 진출자격을 박탈당했고, 창훈이 만들어 서울대 그룹사운드 샌드 페블즈에게 준 「나 어떡해」가 대상을 받았다. 그러니 그는 ‘이 정도 실력이면 음반을 못 만들 것도 없지’ 하는 마음으로 음반사를 찾았던 것이다.--- p.55

왕자웨이王家?, 1958-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 이야기다. 몸매를 드러내는 치파오 차림의 여인이 화면 가득 슬로 모션으로 걷는다. 잘록한 허리에서 풍만한 엉덩이로 흘러내리는 곡선이 좌우로 천천히 흔들리는 모습은 숨이 막힌다. 옷을 입은 여인의 몸이 저렇게 섹시하다니. 이 장면에서 첼리스트 요요마馬友友, 1955-가 연주하는 「유메지의 테마」가 4분의 3박자 느릿한 왈츠풍으로 흐른다. 묵직한 첼로 선율은 원래 일본 영화에 쓰였지만 「화양연화」를 위해 지어진 것처럼 화면에 녹아든다.--- p.71

글렌 굴드는 다른 사람이 318을 만지는 걸 싫어했다. 누군가 건반을 내려치기 위해 손을 높이 드는 걸 보고는 기겁했다고 한다. 하지만 빌 에번스를 몹시 좋아한 글렌 굴드는 녹음에 사용하도록 피아노를 빌려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글렌 굴드와 빌 에번스의 연주자세가 비슷하게 ‘불량하다’는 점이다. 둘 다 얼굴을 건반에 너무 가까이 갖다 대 코로 연주하는 것 같다. 저런 자세로 용케 소리를 낸다 싶지만 얼굴이 깊이 내려갈수록 음악은 더 좋아진다.--- p.88

마르타와 샤를은 이 영상을 찍은 때로부터 2년 뒤 헤어진다.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남자에게 보낸 편지가 발각된 게 결정적이었다. 마르타는 도쿄의 뉴오타니 호텔에서 남편 얼굴에 결혼반지를 집어던지고 모든 연주 일정을 펑크낸 채 유럽행 새벽 비행기를 탔다.그러나 두 사람은 그 후로도 평생 음악적 동지로 지내왔다. 샤를은 해마다 마르타를 불러 같이 무대에 섰다. 사랑도 질릴 때가 있고 삶은 쉽게 누추해지지만, 음악은 그때마다 우리를 구원한다. 모차르트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 p.34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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