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 메이는 그의 저서 『크립토 무정부주의 선언(Crypto Anarchist Manifesto)』에서 인터넷과 공개키-개인키 암호화의 발전으로 개인과 단체가 익명으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이 곧 가능해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즉, 추적이 불가능한 네트워크 및 암호화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조작 불가 상자(tamper-proof boxes)”를 통해, “상대방의 이름이나 법적 정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도 비즈니스를 하고, 전자계약을 협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메이는 개인이 국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신뢰 및 평판에 대한 개념과 더불어 “정부 규제의 성격, 세금을 부과하고 경제적 교류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 및 정보의 비밀 유지 능력”이 완전히 변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즉, 암호화된 안전한 프로토콜이 지적재산권이 만들어낸 “철조망”을 없앨 것이며, 정보 교류의 장을 열고, 스스로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심어주고, 정부와 기업의 성격을 변모시킨다는 것이었다. 메이는 이러한 현상의 확산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그의 후속 저서들에 의하면, “지니는 병을 빠져나왔고,” 기술에 기반한 무정부주의의 출현은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 p.007-008
블록체인만 있으면 사람들은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토대가 되는 프로토콜로 실행되는 법칙 또는 스마트 컨트랙트에 대한 자신만의 고유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들은 법 없이 질서를 창출하며 사적 규제를 실행한다. 이러한 사적 규제를 이 책에서는 ‘암호기술의 법(lex cryptographica)’ 이라고 칭하고자 한다. 이 법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각 관할의 법을 회피하고 초국가적으로 다양한 경제적 또는 사회적 활동을 조율할 수 있는 도구 및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 p.013-014
이론적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화폐를 광범위하게 채택하는 것은 통화정책에 대한 중앙은행의 영향력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대부분의 시장경제에서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규제하고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해당 국가의 본원통화(monetary base)를 늘리거나 줄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비트코인과 같이 중앙통제를 벗어난 디지털 화폐가 주류가 되면, 중앙은행은 총 통화 공급을 조절함으로써 한 나라의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그들 고유의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 화폐의 발행 조건은 사전에 정의되어 있으며 코드에 의해서만 지시되기 때문이다.
--- p.120
예를 들어, 스마트 컨트랙트로 당사자들은 약물, 총기류, 나치 용품과 같은 위법한 물품의 상업적 거래를 진행할 수 있다. 암호기술의 법에 의존함으로써 탈중앙화된 시장은 범죄망을 감시하는 중앙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장은 특정 지역에서는 금지되는 물품을 광범위하게 교환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스마트 컨트랙트는 불법 도박과 게임을 지원하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 중앙에서 관리하는 카지노에 의존하는 대신,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도박계약의 조건을 규정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블록체인 기반의 네트워크상에서 포커 게임을 하는 포커리움(Pokereum)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 보자. 제3자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현존하는 온라인 포커 게임과는 달리, 포커리움은 블록체인 기반의 P2P 네트워크상에서 운영되고, 카드를 섞는 것부터 각각의 패 이후 이더의 교환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일련의 스마트 컨트랙트에 의존한다. 시스템을 유지하는 중앙의 중개자가 없기 때문에 어떠한 당사자도 그 서비스를 폐쇄할 수 없다.
--- p.147
대중에게 증권을 팔기 위해 기업들은 종종 길고 복잡한 증권신고서, 의결권 위임, 연차보고서 및 재무제표와 같은 서류들을 준비해야 한다. 기업들이 광범위한 공시 없이도 자금을 모으는 것―예를 들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투자 기회를 여는 것 ―을 더 쉽게 하는 법들이 미국이나 다른 곳에서 통과되어 왔지만, 대부분의 공개 시장은 소비자 보호라는 이름 아래 작은 기업이나 스타트업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상태로 남아 있다. 블록체인의 탄생으로 금융상품과 시장은 현존하는 금융 규정을 피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현행법상 허용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당사자들이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것은 더 쉬워졌다. 새로운 블록체인 기반의 시스템 덕에 이제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자금을 모으고,‘토큰 세일(token sale)’ 또는 ‘가상화폐공개(initial coin offerings, ICOs)’라고 알려진 매매를 통해 대량의 가상화폐를 모으는 것도 가능해졌다.
--- p.168
회복력이 강하고 조작 불가한 성질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은 위조나 변조를 겪을 가능성이 있으며, 악의를 가진 사람에게 공격당하거나 조작될 수 있다. 블록체인이 주요 기록들을 관리하는 경우, 그 블록체인은 단일 장애 지점이 되어버려 장애 발생시 전체를 마비시키는 참사를 초래할 수 있다. 작업증명(proof of work)에 의한 합의 메커니즘에 기반한 블록체인의 경우, 당사자들은 기존에 기록된 정보나 거래를 변조하고 뒤집기 위해 51퍼센트 공격을 실행할 수 있다. 비트코인처럼 다수가 이용하는 블록체인에 51퍼센트 공격을 실행하려면 어마어마한 비용(최소 10억 달러)이 들지만, 정부가 블록체인에 중요한 정보를 저장하게 된다면 그러한 공격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 또한 증가할 것이다.
--- p.189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 알고리즘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은 공상과학소설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인공지능에 기반을 둔 거버넌스에 대한 실험은 이미 수년 전에 시작됐다. 2014년, 홍콩에 본사를 둔 벤처 캐피털 기업인 딥날리지벤처스(Deep Knowledge Ventures)는 이사회 구성원으로 컴퓨터 알고리즘을 임명하여 투자 결정에 도움을 받은 바 있다. 해당 알고리즘은 투자 관련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약한 인공지능에 의존했다. 또한 이사로서 투표권을 얻었고, 회사 운영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거대 인터넷 기업인 알리바바(Alibaba)의 창업자인 마윈은 이러한 시도가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윈에 따르면 향후 30년 내, 최고경영자 자리도 인공지능 기반 시스템으로 대체될 것이며 “로봇이 최고 CEO로 선정돼 『타임』 표지 모델을 장식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 p.244-245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하여 연결된 장치는 다른 시스템과 직접 거래할 수 있으며 에너지 소비, 컴퓨팅파워 또는 기타 희소성 있는 자원에 대한 결제가 가능하다. 블록체인은 디지털 화폐를 사용하여 소액 결제를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시스템을 통해 차세대 장치들은 서로 기능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서비스 기능 탑재까지 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받게 된다. 이를 기반으로 각 장치는 자신의 모터, 센서, 전원 처리, 저장 공간을 돈을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이는 클라우드 컴퓨팅의 비즈니스 모델에 기반한 것으로,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된 시장에서 판매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장치를 이용하여 세분화된 마이크로 결제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몇 년 안에 집집마다 인터넷이 연결된 에어컨 시스템, 인텔리전트 스프링클러 시스템, 인터넷이 연결된 창문 등 수백 가지 인터넷 연결 장치 설치가 가능해질 것이다. 이 모든 장치는 블록체인을 사용하여 기능을 향상시키고 상업적인 거래를 할 수 있다.
--- p.258
세금 징수 또한 블록체인 기술로 간소화될 수 있다. 자동화된 스마트 컨트랙트를 사용하면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에 의존하는 사람, 조직, 어쩌면 기계조차도 세금을 납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기 납세 신고를 기다리는 대신, 과세당국은 특정 블록체인 기반 계정에서 자금을 받거나 지출할 때마다 또는 특정 당사자가 특정 스마트 컨트랙트와 상호 작용할 때마다 실행되는 특별히 설계된 스마트 컨트랙트를 사용하여 거래가 완료되는 즉시 부가가치세 또는 개인 소득세와 같은 일부 세금을 자동으로 계산하고 송금하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정기적인 납세 신고의 필요성을 없앨 뿐만 아니라 개인 또는 회사가 탈세 또는 기타 유형의 사기에 가담할 가능성을 줄인다.
--- p.314
점점 더 많은 정부 서비스가 블록체인 기반 인프라스트럭처에 의존함에 따라, 우리는 결국 기존 관료주의 시스템의 비효율을 알고리즘에 의한 시스템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는 자율적인 소프트웨어 코드에 의해 정의되고 집행되는 ‘암호기술의 법’이 지배하는 새로운 사회구조의 출현을 의미하며, 개인들은 법의 부적절한 해석이나 불공정한 적용에 대한 구제수단을 거의 또는 모두 상실할 수 있다. 정부가 보호 메커니즘을 제공하지 않거나 이러한 시스템을 해체하기로 선택한 경우, 오늘날 “법에 의한 지배(rule of law)”는 궁극적으로 “코드의 지배(rule of code)”에 따라 운영되는 알고리즘의 지배로 대체될 것이다.
--- p.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