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성복은 상사바위에서 「남해 금산」이란 시의 모티브를 떠올렸다. 그가 바라본 남해 금산은 실연의 아픔을 간직한 산이다. 시인은 푸른 바다에 떠 있는 남해 금산의 바윗덩어리에서 슬픈 사랑의 노래를 건져 냈다. 그렇다. 이토록 아름다운 바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이는 누구라도 일생에 한 번 있을 법한 운명적인 사랑을 떠올릴 것이다. 정끝별 시인은 “모든 사랑은 위험하지만 사랑이 없는 삶은 더욱 치명적이라는 것을 시 ‘남해 금산’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그 치명적이고 위험한 사랑이 궁금해 벼랑 쪽으로 한 발 더 나간다. 저 멀리서 눈부신 바다가 가슴으로 밀려든다. 여긴 남해 금산이다..
---「 경남 남해 금산, “누구든지 소원 하나는 들어주마!”」 중에서
봄날에 선운사 동백꽃을 찾는 사람 치고 이 시를 떠올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당시 봄을 학수고대하던 시인은 조금 서둘렀던가 보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닿지 않아 붉은 동백꽃을 보지 못하고 되돌아가다 사하촌 주막집에 들러 탁주 한 잔 들이키는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1915~2000) 시인의 뒷모습이 동백꽃만큼 정겹게 다가온다.
선운사 동백은 한겨울이 아니라 성미 급한 봄꽃들이 사위어 가는 계절이 전성기다. 4월에 만개해 5월까지 피고 지며 선운사 골짜기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선운사 동백은 사실 늦동백, 곧 춘백인 것이다. 이렇듯 선운사 동백은 오는 봄을 마중하는 게 아니라 가는 봄을 배웅하는 꽃이다.
---「전북 고창 선운산, “붉은 동백꽃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그곳” 」 중에서
적가리골 분지 너머 북쪽 멀리로는 구름모자 쓴 설악산 대청봉이 봉긋하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설악에서 점봉산, 갈전곡봉, 구룡령,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장쾌한 마루금이 황홀하다. 가히 산국(山國)이라는 예찬이 틀리지 않다. 남쪽 가까이로는 개인산(1,341미터)으로 이어진 듬직한 산줄기 오른쪽 아래엔 모습을 감춘 비경의 내린천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능선길은 굴곡이 심하지 않아 좋다. 조망과 들꽃에 취해 설렁설렁 걷는 부드러움이 있다. 작은 오솔길. 늦은 철쭉과 붉은병꽃나무꽃이 떨어진 자리엔 어여쁜 큰앵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얼마 뒤면 이 산길엔 라일락의 원조인 수수꽃다리 맑은 향기가 진동할 것이다. 여유로운 마음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 강원 인제 방태산, “폭염에도 행복한 한 여름의 유토피아”」 중에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반드시 올라보는 북한산의 최고봉 백운대. 여기에 서면 세계적인 대도시 서울의 사방 1백리 반경이 모두 발아래다. 가깝게는 인수봉?만경대?노적봉 등의 가파른 바위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하고, 남한산?관악산 같이 서울을 에워싸고 있는 산들도 선명하다. 날씨가 좋으면 소요산?운악산?용문산 등 경기도의 명산들과 강화도?영종도 같은 서해의 섬들도 볼 수 있으며, 북녘 땅 개성의 송악산도 어슴푸레하다. 특히 노을 지는 석양 무렵, 금빛으로 반짝이는 한강의 유장한 물줄기를 바라보는 느낌은 아주 각별하다. 이 세상 어느 대도시에 이보다 빼어난 자연의 전망대가 있던가.
---「서울 북한산, “수려한 암봉으로 성을 이룬 ‘서울의 영혼’”」 중에서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청량산을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미덕을 지닌 선비로 여겼다. 신재는 “층층이 늘어선 벼랑은 꼿꼿하여 정녕 단아하고 곧은 선비와 같다.”고 했고, 퇴계 이황은 “청량산을 가보지 않고서는 선비 노릇을 할 수 없다.”고 단정했으니 얼마나 많은 학자들이 앞다퉈 찾아갔겠나.
청량산에서 멀지 않은 남쪽의 안동에 살던 퇴계 이황은 청량산을 ‘우리집의 산’이란 뜻으로 ‘오가산(吾家山)’이라 하고, 말년엔 호를 ‘청량산인(淸凉山人)’이라 짓기도 했다. 실제로 청량산은 퇴계의 산이다. 이 나라 웬만큼 이름난 산은 대부분 절집 소유지만, 이 청량산만큼은 청량사가 아닌 퇴계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퇴계가 벼슬을 물리치고 내려갈 때 선조 임금이 퇴계에게 하사했다는 이야기는 봉화와 안동 일대에 전설처럼 전해 온다..
--「경북 봉화 청량산, ‘나 먼저 고삐 잡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 중에서
태백산이 ‘크고 밝은 산’이란 사실은 봄도 아니요, 여름 가을도 아닌 겨울날 그 품에 안겨 보면 알 수 있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으로 불리는 주목에 핀 눈꽃과 상고대는, 환웅이 이 땅에 내려올 때 동행한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가 힘을 모아 겨울 태백산에 빚은 소조(塑造)다. 눈안개 끼고 바람 센 날, 주목에 달라붙는 상고대는 시시각각 그 형상이 변한다.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 그리고 여우, 늑대, 승냥이, 산토끼…. 태백산, 아니 이 땅에 살았거나 살고 있는 온갖 만물이 태백산 주목의 눈꽃과 상고대로 환생하는 것이다.
---「강원 태백 태백산, “하늘과 통하는 ‘크고 밝은 산’”」 중에서
‘설악’이란 말을 듣기만 해도 가슴 떨리고 바라보면 눈물 나는 설악병. 그래서 그 병에 시달리다 인내가 극에 달한 사람들은 마침내 배낭을 꾸려 길을 나선다. 설악의 품에 안기기 위해. 그래, 설악병을 치유하려면 무조건 설악으로 가야 한다. 그 외에 다른 처방전은 없다. 그리고 마침내 설악의 품에 안기면 설악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설악을 보고도 가슴이 뛰지 않는 자, 아무리 젊어도 청춘이 아니다.”
---「강원 속초ㆍ인제ㆍ양양 설악산, “나 보고도 가슴 뛰지 않는 자, 청춘이 아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