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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큐버스의 여인들

인큐버스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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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6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534쪽 | 152*225*35mm
ISBN13 9791156344063
ISBN10 115634406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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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고통스럽다. 답답하다.무슨 생각이든 해야 하는데, 생각할 수가 없다.무슨 행동이든 해야 하는데, 행동할 수가 없다.그저 망연자실하고 있는 와중에도 감각은 살아있어, 온몸의 세포가 고통스럽다고 외쳐댄다. 마치, 형언하지 못할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걸 잠재워줄 약을 도무지 찾지 못하는 환자가 된 것만 같다.이 지경의 발단은…… 바로, 그 한 권의 낡은 책이다.고향에 내려온 이후 나는 내 옛 외갓집을 찾아가 추억을 더듬을 수 있어 좋았고, 어린 시절 나만이 알고 있던 비밀 장소에서 나만이 알고 있는 물건, 그 책을 찾게 된 걸 매우 흥미로운 일로 여겼다. 꼭 보물찾기에서 원하던 물건을 건진 아이처럼 흥분했었다. 그래서 그 책을 읽었냐고?물론이다. 나는 그 책을 읽었다.더불어, 나는 그 책을 읽음으로써 그걸 읽기 이전의 나 자신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강을 건너고 나서 다시 저편으로 돌아갈 나룻배를 영영 잃어버린 것 마냥.대체 그 책의 정체가 뭐 길래?간단하게 말해보겠다. 그 책은 19세기, 그러니까 1800년대 중후반에 한 개인에 의해 쓰인,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다. 조선 시대에 살았던 한 반가(班家) 여인의 비망록이다.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게 통렬한 비극으로 끝난다.그 내용이 사뭇 놀랍기도 하지만 나를 진짜로 놀라게 한 건 따로 있었다.다름 아닌…… 천화다.맙소사,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걸까? 천화가 그 책에 등장하는 것이다. 나는 실로 놀라 까무러칠 뻔했다.내가 아는 천화가 그 책 속의 남자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는 점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름도, 그 외모에 대한 묘사도, 그가 하던 일도, 살던 지역도, 일점의 어긋남 없이 맞아떨어졌다.
--- pp.332-333

공주에서 올라온 뒤 3일 후_전화 통화

- 세라야, 그 책 내용을 풀어쓴 파일, 방금 너한테 이메일로 보냈어. 제목은 내가 임의로 ‘박씨 부인의 기록’으로 정했다. 한번 열어봐.
- ‘박씨 부인의 기록’…… 아, 그렇군요. 내내 긴장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수고하셨어요, 선배. 바로 읽어볼게요.
- 기본적인 내용은 할머니가 파악하셨던 그 내용과 같아. 젊은 양반 가문 여인과 천민 갖바치의 신분을 뛰어넘은, 그렇지만 이룰 수 없었던 사랑……. 그런데…….
- 그런데요?
- 그 사연이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도 자못 애절하고 비극적이더군. 천화는 진실되게 그 관계에 임했고, 그 관계로 인해 목숨까지 잃었어.
- 그가…… 생전에, 좋은 사람이었나요?
- 그와 관계를 맺었던 그 여인에게 있어서야 두말할 것 없이 지고지순한 연인이었지. 그리고 제삼자인 내 시각에서 볼 때나, 현대의 상식이나 기준으로 볼 때도 결코 불순한 면은 찾을 수 없는 순수한 영혼이었던 것 같아.
- 그럼 죽어서는요?
- 내 생각이지만…… 그가 죽어서도 원귀가 되어 죄 없는 산 사람들을 대대로 괴롭힐 만한 캐릭터는 아닌 것 같다는 말이야.
- 하지만 천화는 그런 귀신이 맞잖아요? 끝 간 데 없는 원한과 욕정을 품은 채, 절 포함해 살아있는 여자들을 농락하고 이용해온 원귀, 색귀……. 마치 인큐버스와도 다를 바 없는 존재라고요!
- 세라야…… 결과는 중요하지만, 그 과정도 간과할 수 있는 게 아닌 경우가 종종 있어. 게다가, 아무리 명백해 보이는 결과라도 그게 진실이 아닌 경우도 더러 있고.
- 천화가 원귀라는 결론 외에 다른 것도 있을 수 있나요?
- 성급하게 단정하지는 말자. 우린 비밀의 열쇠를 이미 손에 쥐고 있어. 박씨 부인의 기록을 읽어봐, 세라야. 네가 읽은 다음에, 우리 HCCC 빌딩 사무실에서 얘기 나누도록 하자…….
--- pp.35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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