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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못하는 자들의 사랑

사랑하지 못하는 자들의 사랑

: 스스로를 미워하지만 삶은 긍정하고픈 이들을 위하여

이하영 | 봄들 | 2020년 06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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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84쪽 | 438g | 145*210*17mm
ISBN13 9791196730031
ISBN10 119673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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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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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까치발을 들고 무대 위의 피아노를 구경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검은 기린이 목을 접고 잠들어있는 것만 같았다. 천장에 별처럼 박힌 조명이 기린의 비스듬한 등을 비추는 가운데, 반쯤 열린 등짝 안으로 구릿빛 내장이 보일 듯 말 듯했다. 나는 피아노가 아름답다고 느낀 동시에,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그렇듯 무서워지기도 했다. 저게 악기라는 걸 모르고 마주쳤더라면 당황하고도 남았을 외모였다. 어디에 쓰이는지, 대체 뭘 위해 만들어진 건지 통 알 수 없게 생긴, 외계에서 온 것 같은 물건…… 신비하다, 라고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사랑보다 강한」 중에서

이전까지 내가 맨몸으로 세상에 놓여있었다면, 독서편력이 심해진 뒤로는 언어의 갑옷 속에서 바깥을 내다보게 되었다. 나는 내가 겪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보다 마치 그것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하는 사람처럼 문장화시킨 후에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갑옷이 사람을 방어하는 동시에 무게를 지우듯, 언어는 내게 차분한 성격을 선물했지만 이성의 작용 속으로 나를 가뒀다. 쉽게 말해 중학교 때부터 내 의식은 한 번도 입을 닥쳐본 적이 없었다. 나는 매 순간 무언가를 기술하거나 분석했다. 멍을 때린다, 는 말이 대체 어떤 의식 상태를 가리키는지 몰랐고, 몇 초만이라도 멍을 때려보는 게 어렸을 때부터의 소원이었다.
--- 「콩쿠르 혁명」 중에서

이런 어려움이 피아니스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자기의 신체 혹은 정신의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뛰어넘도록 채근하는 미의 결정체, 이를테면 꿈의 소설이나 철학, 미소 짓는 가족 또는 연인이 있다. 끊임없이 과거의 자신을 넘어서려 노력하면서도, 그 때문에 자신이 상하지는 않는 수준을 유지하는 것?가장 치열하게 움직이면서도 가장 치열하게 머무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 「콩쿠르 혁명」 중에서

공통의 적을 가진 사람들은 바깥의 어둠에 대항해 같은 빛 속에 놓여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빛의 울타리 안에 위치 지움으로써 자긍심을 느끼며, 그 긍지가 가슴 깊숙이 자리를 잡고 나면 오히려 연대감보다도 근본적인 감정이 된다. 그러므로 만에 하나 그 연대가 자기의 긍지를 거스른다고 여겨지는 순간엔 언제든, 아주 자신 있게 뒤돌아 무리를 탈퇴할 것이다. 반면 공통의 죄를 지닌 사람들은 같은 어둠 속에 놓인 이들이다. 그들에게선 자긍심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같은 죄를 저지른 상대를 보며 아, 나 같은 저열한 인간이 저기 한 명 더 있구나, 그래도 저 인간이 모든 걸 포기하지는 않았구나, 라 되뇌며 앞으로도 저열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힘을 얻을 뿐이다. 이들은 서로를 통해서 생활의 자격을 찾기 때문에 살아가려는 한 그 무리를 빠져나올 수 없다.
--- 「망한 서커스」 중에서

바람과 달리 과거만큼 돌이킬 수 없고 절대적인 것은 없었다. 그 시절의 내게 과거란 해석의 영도(零度)였다. 해석은 주어진 것 속에 확실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 때만 발생한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남과 동시에, 일어났음으로 인해 영원한 사실로서 확정되었다. 내가 주호의 마음을 어떻게든 상처 입혔다는 사실, 그로써 그의 인생에 굴곡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 자체에는 조금의 해석의 여지도?그러므로 구원의 여지도?없어 보였다. 내 잘못이 얼마나 치명적이었는가 묻는 것은 주어진 정보 바깥의 문제로서, 그런 건 해석이 아닌 짐작 따위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 「망한 서커스」 중에서

고통의 순간들에는 무엇이 그녀의 괴로움을 정당화해줬을까? 글쓰기의 즐거움이 괴로움을 견딜 만하게 해줬을까? 아니면 작가들이 으레 경건한 투로 말하듯, 어떤 소명이 그 괴로움을 견딜수록 성스러워지는 것으로 만들었을까? 어느 쪽이든 괴로워하는 엄마에겐 적어도 쇼팽이 가졌던 것과 같은 긍지가 있었다. 쾌락이든, 고통이든 간에 그것은 오롯이 그녀 자신이 내린 결정들로부터 흘러나왔으리라. 그녀는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자기에게 드리워진 타인의 그림자를 조금씩 지워나가며, 마침내 자신만이 모든 애씀의 이유이자 출처가 되는 삶을 꿈꾸고 실천해왔을 것이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계속해서 엄마의 빛바랜 긍지에 대해 생각했다.
--- 「우연 구제하기」 중에서

다들 대학을 마치 삶의 마지막 목적지인 것처럼 생각하며 수험 생활을 견뎌냈지만, 이곳 또한 중간에 거쳐 가는 야영지에 불과했다. 도서관의 책상 위에는 내용만 바뀌었을 뿐 익숙한 생김새의 인터넷 강의록과 참고서들이 그대로 올라가 있었다. 결국에는 모두가 다시 한 번 엇비슷한 경쟁의 장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던 것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좋은 성적을 받는다고 해서 삶이 정당화되는 듯한 순진한 만족감은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는 것 정도였다. 무엇보다 잦은 비극은 좋아하는 일이 없거나, 있어도 그것이 해야 하는 일, 또는 하도록 기대 받는 일과 충돌하는 경우들이었다. 어느 쪽이든 대부분의 학생들이 깊은 허무감에 시달렸다. 그나마 나 같은 1학년생은 안일하게 구는 것이 허락되었는데, 어쨌거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부담은 가중되었고, 모든 1학년은 언젠가 더 이상 1학년이 아니었다.
--- 「감정은 기침 같은 것」 중에서

한 가지 골똘히 생각해본 문제는 있었다. 많은 책들이 ‘사람은 자신을 보존하려 한다’고 가르쳤다. 어떤 책은 ‘사람은 자신을 보존하는 행동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자기혐오자로서 나는 그런 번지르르한 말들의 예외였다. 도대체 나 같은 인간을 보존해서야 될까? 자기보존의 자격 같은 건 왜 다뤄지지 않는 걸까? 그러는 동시에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가능한지 또한 알고 싶었다. 예외는 단순한 돌연변이로 취급할 게 아니라, 예외가 가능한 방식으로 인간이 만들어져 있다는 증거로 봐야 한다고 믿었다. 고민한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사람이 이기적이라는 명제가 틀렸거나, 내 자기혐오도 이기주의의 일환이거나.
--- 「감정은 기침 같은 것」 중에서

나는 모든 게 혹시 그저 기분의 문제는 아닌가 싶어졌다. 사람의 마음은 영도의 말마따나 기침, 아니면 보글거리는 찌개 같은 것이고, 삶은 언제 어디서 올라올지 모르는 거품이 터지는 대로 지껄이고 저지르는 짓의 연속일 뿐인 것이다.
--- 「감정은 기침 같은 것」 중에서

이들은 서로 다른 녹턴을 연주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누가 쇼팽의 의도에 가장 근접했는지를 따지고 싶어 했지만 녹음도, 촬영도 불가능했던 시절에 죽은 작곡가의 의중이란 악보라는 미로 속에 웅숭깊이 숨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쇼팽의 연주에 대한 기록을 찾을 필요도 없이, 장담하건대 쇼팽은 결코 포고렐리치처럼 느리게 치지 않았겠지만 아무도 포고렐리치의 연주를 틀렸다 말할 수 없었다. 오류는커녕 포고렐리치만의 진실이 그 음습할 만큼 처지는 전개 속에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의 해석이란 진실을 제조하는 일이었다.
--- 「감정은 기침 같은 것」 중에서

영도의 방은 책으로 넘쳐났지만 음악이 금지된 공간이었다. 그는 언제든 서로의 목소리를 제하면 정적을 선호했다. 영도가 괜찮게 생각한 클래식 음악은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뿐이었는데, 그것조차 둘 중 하나가 몸을 씻을 때만 잠깐 틀 수 있었다. 나를 밤마다 달뜨게 했던 녹턴들은 영도의 애무에 의해 대체되어갔다. 그의 방은 맑은 물처럼 흐르는 선율이 아닌, 신음과 식은 고기 기름 같은 정액의 세계였다.
--- 「계약결혼」 중에서

사실 그와는 사랑을 나눴다기보다 나만의 놀이를 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내 놀이의 목적은 놀이의 부재, 재미없음 그 자체였다. 영도의 사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절정을 연기하되 실제로는 오르가즘에 이르지 않는 게 하나뿐인 규칙이었다. 몇 주의 훈련을 거치자 나는 스스로의 쾌락을 아주 세심히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즐겁지 않고자 하기만 하면 그 어떤 섬세하거나 과격한 자극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일을 치른 뒤에는 무엇에 대해서든?내 연기에 속아 넘어간 영도에 대해서든, 인간사의 가장 큰 환희에 대해서든?냉소할 수 있는 위치에 섰다. 그게 좋았다.
--- 「계약결혼」 중에서

반면 나의 자기혐오는 혐오스러울 정도로 성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자기혐오는 구체적인 원인을 잃고 관성에 의지해 점점 이념처럼 변해갔음을 고백한다.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자기혐오는 내 생의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였다. 내가 육체를 가지고도 진짜 세상과 맞부딪지 못하게 하는, 나만의 귀여운 허위의식……. 사실 이 이념화는 알게 모르게 열일곱 살 때부터 천천히 진행되어왔다. 나는 자주 자살은 하고 싶지만 살해당하고 싶지는 않은 욕망에 시달렸다. 자살하는 것과 살해당하는 것 사이의 골에 갇힌 채, 이 골짜기가 얼마나 큰지 이해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아무도 내게 신경 쓰지 않기를 원했다.
--- 「계약결혼」 중에서

이러나저러나 이득 없이는 어떤 계약도 성립하지 못한다. 우리의 계약결혼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를 통해 스스로를 벌할 수 있었고, 그는 내 덕에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 인간을 만났다. 이외에도 검은 구름의 속처럼 알기 어려운 요인들이 얽혀있을 터였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자기혐오로부터 실존적 이득을 취해왔으며, 이 이득이 지속되는 한에서 앞으로도 함께였다.
--- 「계약결혼」 중에서

액자 속의 회화와 달리 음악은 한꺼번에 전체가 주어지지 않았다. 음악은 한 음에서 다음 음으로 흘러가면서 천천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보였다. 곡이 끝나는 순간에도 전체가 조망되는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그대로 살아있지 않았고, 오직 기억으로만 남아 곡의 여운 속에 흐릿하게 녹아들었다. 음악은 내게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시간의 돌아오지 않음을 체험시켜줬다. 특히 좋은 음악은 의도된 정적이나 스타카토 등에서조차?모순처럼 들리겠지만?작은 구멍 하나 허락하지 않고 모든 순간을 빼곡히 채워냈다. 아니, 순간들을 공간처럼 채우고 점령한 게 아니라 음악 자체가 그것들과 한 몸이었다. 하나의 음은 하나의 찰나와 분리될 수 없이 함께 생성되고 소멸했다. 그래서 좋은 음악을 집중해서 듣는다는 것은 정해진 만큼의 시간을 오롯이 향유하는 일이었다. 클래식이든 클래식이 아니든 똑같았다.
--- 「계약결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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