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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그림여행

인상파 그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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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6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40쪽 | 634g | 153*224*30mm
ISBN13 9788960602847
ISBN10 896060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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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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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널빤지를 쭉 이어놓은 ‘사비냑 산책로’는 여기서 약 20년을 살았던, 사비냑이라는 한 도안가의 이름을 딴 것이다. 강렬한 햇빛 때문에 하얗게 보이는 나무판자 산책로는 트루빌 해안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명물이다. 그리스의 섬들이나 세계의 다른 해변에도 나무판자 산책로가 있지만 이렇게 길고 멋진 곳은 찾기 힘들다. 모네의 〈트루빌의 판잣길〉은 이 산책로가 있는 해변 풍경을 그리고 있다. 그가 1870년에 신혼여행으로 노르망디로 오기 바로 2년 전에 길이 만들어졌다. 결국 모네는 신혼여행 와서도 그림을 그린 것인데, 직업병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넉넉하지 못한 형편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도 된다. 그림 속 여름날의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고 구름도 화사하기만 하다. 작열하는 태양은 그 아래의 모든 것을 하얗게 탈색시켜 버린다. 여자들의 드레스, 천막, 모래밭 나무 산책로 모두 하얀 색! 색이 들어간 건물들도 지나치게 강한 햇빛으로 색이 바래지고 만다. 여름날의 강한 햇빛으로 명암의 차이도 심하다. 모네가 이 한가한
해변 풍경에서 묘사하고자 한 것이 바로 이 눈부신 빛! 그가 평생 매달린 모티프다.--- pp.19-21

드가의 〈해변에서〉를 보면 여름 한낮의 아주 밝은 빛 아래서 한 여자가 아이의 머리를 빗겨주고, 그 뒤로는 산보객과 수영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드가는 휴양객들과 같이 모래밭에 앉아 이 그림을 그렸다. 모네와는 달리 인물과 사물들을 상당히 세밀하게 표현했다. 드가의 그림과 비슷하게 바로 내 앞에도 한 여자가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넘기며 바다 쪽으로 앉아 있다. 그 뒤쪽으로는 청년 둘이 공을 주고받고 있는데, 조금 따뜻한 날씨에 웃통을 벗어젖히고 짧은 반바지를 입었다. 다른 쪽에선 비키니를 입고 수영하는 여자도 있다! 아직은 물이 꽤 차가울 텐데도 정말 용감하다. 일부러 자랑이라도 하려는 건지 헤엄을 치며 왔다 갔다 한다. 과거에는 한여름에도 온몸을 드레스로 칭칭 감싸고 바닷가를 거닐거나, 수영복이라고 해봤자 지금 보면 내복 같은 것으로 몸을 숨겼던 것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달라진 광경인가? 그래도 모네가 그렸던 19세기의 사람들이나 현재 내 눈앞의 사람들 모두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같으리라.--- pp.29-30

부댕의 작품은 거의 대부분 노르망디의 해변을 그린 것이다. 같은 주제에 같은 시점이지만 시간대를 달리해 꾸준히 그렸다. 이는 곧 후배인 인상파 화가들의 시간에 대한 개념과 일치한다. 모네가 연작으로 그린 유명한 건초더미나 루앙 대성당, 지베르니의 수련 등에서 그 방식을 보게 된다. 부댕은 특히 하늘을 묘사하는 것에 뛰어나서 스승인 코로는 부댕을 가리켜“하늘의 제왕”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부댕의 작품 〈트루빌 해변〉에서도 하늘과 구름을 묘사한 그의 탁월한 솜씨를 보게 된다. 그림의 장면은 모네가 그린 로슈 누아르 호텔이 있는 방향에서 해변을 바라보며 그린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잘 보이듯 부댕의 그림에서 하늘은 화면의 절반 혹은 그보다도 더 넓게 나타난다. 아래쪽 육지 부분이 코로의 작품들처럼 어둡게 묘사될 때도 하늘은 밝다. 그리고 그 구름들! 청명한 날인데도 부드럽게 흩어진 구름들은 정말 매혹적이라서 왜 부댕을 하늘의 제왕이라 부르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pp.32-33

로슈 누아르 호텔은 모네가 그린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모네는 파리 출생이지만 유년 시절에는 가족과 함께 노르망디에서 살았다. 그리고 다시 파리에서 살다가 돌아와서 한적하던 해변이 경제적으로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모네는 부인 카미유와 결혼 전에 이미 낳은 아들 장과 함께 트루빌에서 여름을 보냈다. 비록 값싼 여인숙에 묵는 신세였지만, 로슈 누아르 호텔 앞의 한가로운 여가 풍경에 매혹되어 로슈 누아르 호텔을 그림으로 남겼다. 이 시기에 모네는 총 9점의 훌륭한 작품을 남기게 된다. 그림 속 호텔에서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찾아볼 수 있다. 모네의 작품 〈로슈 누아르 호텔〉을 보면 원경의 프랑스 국기와 앞쪽에 대충 그려진 미국 국기가 있다. 당시에 로슈 누아르 호텔이 미국인들이 많이 찾던 곳임을 짐작하게 한다. 모네는 정면으로 보는 호텔 건물보다는 바다를 바라보는 위치의 테라스에 관심이 더 많았기에 호텔을 오른쪽에서 비스듬히 바라보는 위치에서 그림을 그렸다. 햇빛이 화창한 여름날에 해변은 거의 보이지 않고 오른쪽의 호텔과 그 앞의 산책로에서 쉬거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재빠르고 간략한 붓질로 그려졌다.--- pp.42-43

프랑스 작가 피에르 쌍소는 에세이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처음으로 월급이 끊기는 것에 대한 걱정 없이 휴가를 즐기게 된 당시 노동자들의 환희를 잘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여름
이 시작되자, 자동차의 경적을 울리며 바다로, 산으로, 시골로 떠났다. 이런 현상은 옹플뢰르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역에서 일어났으니, 인상파 화가들이 현대인의 여가 장면을 묘사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음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인상파의 탄생을 불러온 그밖의 사회적 원인으로 기차를 이용한 사람들의 이동, 금속튜브 물감의 발명을 들지만,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유급휴가 제도의 실시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고 하겠다. 화가들 역시 이런 영향으로 여름 바캉스를 떠나서 휴가지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 인상파들은 주로 바다나 강가를 많이 찾았다. 바닷가 마을 옹플뢰르에 머문 화가들 중에는 우선 요한 바르톨트 용킨트가 있다. 그는 네덜란드 출신 화가로 1840년대에 파리에 정착했으며, 이후 인상파 화가들의 선배라고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된다. 용킨트는 모네, 부댕과 자주 만났고, 그들과 어울려 같이 그림도 그렸다.--- pp.62-63

용킨트의 작품 중에 〈옹플뢰르 항구〉는 새벽의 포구 모습을 담고 있다. 커다란 돛을 단 고색창연한 범선 두 척은 항구로 들어오고, 오른쪽 끝에는 어부가 작은 거룻배의 노를 젓고 있다. 색채의 변화가 거의 없이 명암으로 색조를 표현하는 것은 언뜻 카미유 코로의 그림과도 비슷하다. 원경에 보이는 1865년 당시 항구는 현재와 비교해도 거의 비슷하다. 옹플뢰르는 이미 11세기경에 원거리 무역항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신대륙 아메리카와 교역을 많이 했다. 16세기 초에는 옹플뢰르 출신의 사람들이 이 항구에서 떠나 캐나다 동부에 정착해서 현재의 캐나다 대도시인 퀘벡을 건설하기도 했다. 이들은 브라질과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와 자바에도 정착할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황금기를 누리다가 18세기 중엽 캐나다가 영국 지배로 들어가자 차츰 쇠퇴하게 된다.--- p.65

류트낭스가 있는 생 카트린 거리에는 폭이 좁고 위로 높이 올라간 집들이 벽을 맞대고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 뒤는 생 카트린 광장. 용킨트가 여기에 있는 같은 이름의 생 카트린 교회를 그린 작품이 있다. 〈옹플뢰르, 생 카트린 교회의 종탑〉은 이 마을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교회의 높은 종탑과 그 주변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림 속 탑 앞에는 작은 시장이 섰고, 장꾼들과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보인다. 화가는 이전의 세밀한 풍경화에서 벗어나 인상파적인 간략한 붓질을 보여준다. 색채도 예전처럼 무겁게 눌린 단색조가 아니라 밝고 다양하다. 오른쪽 위 하늘의 붉은 붓자국은 이 화가의 눈에 비친 놀라운 하늘의 인상이다.그 붓자국은 에밀 졸라가“회화는 예술가의 기질을 통해서 본 자연의 한 귀퉁이다.”라고 한 말과 잘 들어맞는다. 그런가 하면“인간이 형상을 지각하는 것은 각자의 자아를 나타내는 흔적과 비늘 모양으로 겹친다.”는 이폴리트 텐의 당시 최신 연구결과와도 일치한다.--- pp.79-80

에트르타는 로마시대에 ‘길의 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고, 중세 시대까지 꾸준히 발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영국과의 백년전쟁 후에 쇠퇴의 길을 걸었다. 19세기에 작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알퐁스 카가 자신의 작품에 에트르타를 자주 소개하면서부터 다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후 모리스 르블랑, 기 드 모파상, 빅토르 위고 같은 작가들 역시 이곳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특히 쿠르베와 모네를 비롯한 여러 화가들이 에트르타의 바닷가에서 즐겨 그림을 그렸다. 거기에 음악가나 다른 예술가들, 파리에서 온 관광객들도 에트르타에 흠뻑 빠졌다. 에트르타의 명물인 아발 절벽은 소설가 모파상이 일찍이“코끼리가 바다에 코를 처박은 형상”이라고 묘사했다. 지금도 코끼리 바위라 불리기도 한다. 소설가 모리스 르블랑 원작의 괴도 루팽 시리즈! 그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 『기암성』의 무대도 바로 여기다. 이 기이한 모습의 바위를 들라크루아, 부댕, 모네, 이사베, 베르네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이 화폭에 옮겼다. 쿠르베도 에트르타의 관문인 아발 절벽을 그렸다.--- pp.108-111

소설가 모파상 역시 에트르타에 매혹되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소설『여자의 일생』에 이곳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작품 속 여주인공 잔느의 남편 줄리앙은 호색한으로 여러 여자와 바람을 피우다가 백작부인과 간통해 그 남편에게 살해되고 만다. 이때 백작부인과 줄리앙이 떨어져 죽는 곳이 바로 에트르타 절벽이다. 모파상은 이 소설의 성공으로 돈을 많이 벌게 되자, 1883년에 아예 이 마을에 별장을 짓고 살았다. 기예트라는 이름을 지은 별장에서 살던 모파상은 플로베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에트르타와 노르망디 지방의 풍경과 사람들, 그들의 삶의 풍경을 정확하게 묘사했다. 나중에는 스승인 플로베르가 그의 소설에서 이 장면을 사용하기도 했다. 1885년에 모파상은 에트르타에서 모네를 만났다. 그 다음해에 그는모네에 관해 이렇게 썼다.“ 나는‘인상’을 찾아다니는 모네를 따라가 보았다. 그는 더이상 진실한 의미의 화가가 아니라 추적자였다. 모네는 대여섯 개의 캔버스를 운반하는 아이들을 따라서 갔는데, 그 캔버스들에는 같은 주제가 여러 시간에 걸쳐 각자 다른 효과로 묘사되고 있었다."--- p.120

모네는 특히 코끼리 바위와 소설 『기암성』의 배경이기도 한 바늘탑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1883년 2월 1일에 쓴 편지에서 “에트르타의 거대한 절벽을 그리려고 해. 물론 쿠르베가 이미 매혹적으로 그려놓은 것을 따라 한다는 건 내 입장에서는 분명 엄청나게 과감한 도전이 될 거야.”라고 쓰고 있다. 이런 걱정 뒤에는 거장에게 맞서보겠다는 패기도 보인다. 〈에트르타의 파도가 심하게 치는 바다〉가 그 결과물이다. 거센 바람에 파도가 흰 거품을 내며 미친 듯 질주해온다. 파도의 움직임이 워낙 실감나게 표현되어서 귓가에 몰아치는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해변에는 두 어부가 파도에 갇힌 모습이다. 이들은 마치 악천후 때문에 그곳에 계속 머물러야 했던 모네 자신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네가 그린 아발 절벽은 해발 85m의 높이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경사가 가파른 곳으로 에트르타 해변의 왼쪽 끝에 있다. 절벽을 올라가다보면 차츰 건너편 끝의 아몽 절벽과 바다, 해변의 모습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밑에서 본 것과는 딴판으로 절벽 위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다. 이 정상에서 왼쪽으로 더 가다보면 코끼리 바위와 ‘에트르타의 바늘’이 신비한 모습을 드러낸다.--- pp.122-124

〈페캉, 바닷가〉는 모네가 1881년에 페캉에 머물면서 그린 작품이다. 첫 번째 아내인 카미유가 죽은 후였다. 모네는 이 왼쪽 절벽에 매혹되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절벽의 모습을 그렸는데 모두 16점이나 되었다. 이런 그의 끈질김은 일찍이 드가를 비롯한 동료들도 칭찬해 마지않는 미덕이었으며, 후에 이어지는 〈건초더미〉나 〈루앙 대성당〉, 〈수련〉 연작의 단초를 제공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림 속 하늘은 막 해가 지려는 모습이다. 모네는 절벽에 가까이 다가가서 매스mass를 크게 그려서 강조했다. 절벽은 노랑, 청색, 오렌지색이 섞인 하늘과 바다의 빛을 제 몸으로 받아들여 물들인다. 멀리 깊은 바다의 녹색이 수평선을 강조한다. 하얗게 치는 파도는 구름의 움직임과 닮았다. 거친 날씨의 하늘과 바다, 절벽이 만들어내는 찰나의 원시적 풍경이다. 그림 속 풍경은 현재와 똑같다고 할 수 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더해진 것이 없다. 바람과 파도가 바위를 조금 더 깎아낸 차이만 있을 뿐이다. 최대한 야성적인 모습을 그리기 위해 모네는 절벽을 따라 한참이나 걸어갔을 것이다. 회색 바위의 뭉툭한 꼬리는 여전히 끝을 모르고 뻗어나가고 그 위의 하늘에는 모네가 본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태양이 진다.--- pp.151-154

모네가 폭풍 속에서도 단지 빛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에 치중했다면, 쿠르베는 자연의 거대함과 위협을 강조했다. 이는 쿠르베가 다분히 자연의 물질적인 것에 더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유물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던 사회주의자 쿠르베는 찰나의 분위기보다는 자연의 물성에 더 이끌렸을 것이다. 쿠르베는 이 그림을 그리던 당시 쥘 발레에게 보낸 편지에 “오, 바다여! 너의 목청은 대단하구나. 하지만 세상에 나의 이름을 소리칠 때, 그 명성을 들리지 못하게 할 정도는 아닐 거야.”라고 유머스럽게 쓰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바다, 물기둥〉 속 쿠르베의 사인은 당시 그가 그린 그림들 속 사인 중에서 가장 크다. 이런 격동적인 그림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겠지만, 쿠르베는 열정적인 인물이었다. 열렬한 공화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로 1871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최초의 노동자 정부인 파리코뮌에도 적극 참여했다. 파리코뮌은 1870년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보불전쟁에서 패한 뒤 제2제정이 무너지고, 파리가 함락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봉기를 일으켜 수립한 정부다.--- pp.195-196

인상파들이 활동하던 19세기 말, 루앙은 유명한 항구도시로 현대 산업 발전의 현장이었다. 프랑스의 아카데미가 보수적 부르주아의 미적 취향을 고수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인상주의자들은 이런 변화를 적극 수용해서 화폭에 담았다. 모네의 경우에는 친형인 레옹이 루앙 인근 지역인 데빌 레 루앙의 화학공장에서 일해서 루앙을 더 가까이 접할 수 있었다. 그는 1872년부터 이듬해까지 형의 집에 머물면서 처음으로 루앙의 도시와 강의 풍경을 그렸다. 1883년에는 피사로가 새로운 모티프를 찾아서 루앙에 왔다. 루앙을 그린 피사로의 작품들은 1890년대에 이르러야 열매를 맺게 된다. 피사로도 모네나 고갱과 마찬가지로 도시와의 대면을 통해서 점점 개인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켜나갔다. 루앙 출신의 지역 화가인 샤를 앙그랑이나 레옹 쥘 르메트르, 점묘파인 샤를르 프레숑 등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현대미술의 조류에 동참했다. 루앙 화파라고 불리는 이들은 20세기 초에 그 절정을 맞게 된다.--- pp.238-240

모네의 최초의 연작 작업은 1864년의 옹플뢰르에서 그린 〈바볼 거리〉였다. 이런 작업 방식을 두고‘연작’이란 말을 최초로 쓴 사람은 에밀 졸라다. 그는“모네는 정원에서 연작 그림을 그렸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것은 〈정원의 여인들〉과 〈꽃이 핀 정원〉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후로 모네는 한동안 정원을 모티프로 한 그림을 시리즈로 그려나갔으며 이런 연작 작업은 계속 이어졌다. 생 라자르역을 모티프로 한 12개의 작품, 겨울의 해 지는 센 강을 그린 연작, 노르망디의 해안 절벽을 그린 연작, 벨 섬에서 그린 40점의 연작, 남프랑스 앙티브 연작 등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이후에 그 유명한 〈수련〉 연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모네가 한 가지 모티프에 극도로 집중하면서 같은 건축물을 여러 번 그린 것은 루앙 대성당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그렸던 어떤 작품보다도 오랜 시간을 들여서 완성했다. 시리즈 작업을 해나가는 데는 작업 간의 조화가 필요했다. 모네는 형체의 흐릿함을 강조하고, 물질성을 주장하며, 구성을 달리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1892년부터 1895년까지 모네는 오로지 이 성당만 생각한 것처럼 보인다.
--- pp.247-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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