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변화는 내가 나를 바라보게 된 시선이다. 희망은 희망을 낳고, 도전은 도전을 낳는다. 기회는 기회로 이어지고, 만남은 만남을 가져온다. 나는 아이들과 살아갈 자신이 있고, 꿈과 용기가 너끈하다. 나는 아주 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살아왔던 집을 떠나오니 온 우주가 나를 돕는 느낌이다.
---「독립 선언, 홀로서기의 시작」중에서
다음에 펼쳐지는 더 좋은 이야기들로 내 기억이 채워지고 새로운 추억이 쌓여 가면서, 내 마음속에 좋은 기억의 잔재들로 가득해지면 좋겠다. 우리가 몰랐던 실수들로 겪는 고통과 아픔은 그대로 안고 가야 할 숙제로 남는다. 그러나 과거의 사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다면, 앞으로 해 나갈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제약이 생길 것이다. 바뀐 현실과 바뀔 미래, 희망을 가슴에 품고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내 삶이 되리라 믿는다.
---「남편의 삼시 세끼를 챙기는 자세」중에서
이런저런 조율을 하며 우리 가족은 다듬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어리다고 해서 생각이 어리지 않음을, 아이들이 컸다고 해서 생각까지 같이 자란 것이 아님을 안다. 하지만 아이들이 몸만큼 생각이 자라고, 마음의 넓이만큼 생각의 너비도 자라고, 마음의 깊이만큼 생각의 깊이도 자라는 게 이상적이라고 본다.
---「우리 가족 행복하게 해 주세요」중에서
아무리 옳은 것, 좋은 것이라도 공감 있게 표현하지 못하면 사람을 움직일 수 없듯, 공감은 힘이고 능력인 것이다. 공감 가는 글,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려면, 사람을 향한 애정과 따뜻한 관심, 행동력이 필요하다. 나 살기에 급급해 나보다 어려운 이들을 몰라보지 않도록 사회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려 한다. 신문을 열심히 보고 사람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으리라.
---「마음 아픈 적금 해지의 기억들」중에서
아이를 사랑해서 결혼한 것인지, 남들처럼 아이 키우며 살고 싶은 마음으로 결혼한 것인지, 아내의 자격은 아이의 출산 여부에 있는 것인지. 내 가정사도 웬만큼 장편적으로 다 까발린 와중에 몇 자 보태자면, ‘아내의 자격’은 출산과 육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혼할 때 ‘아기도 못 낳는 너 같은 여자!’라는 말을 들었다는 지인에게, 이혼하길 참 잘했다고 축하해 줬다.
---「이혼하길 잘했다고 칭찬하고 싶은 마음」중에서
나는 언제나 그래왔듯 ‘나’인 것이다. 내가 겪는 혼란과 절망은 내가 ‘나’일 수 없을 때 일어난다. 나답게, 나다운, 나여서 좋은 일상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가장 나다운 길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나답길 원한다. ‘나’다우면서도 나를 잃지 않고 나여서, 이 세상 어느 한 부분이 밝아지고 아름다워진다면 그것이 곧 행복이고 보람이다.
---「가장 나다운 길을 가는 것이란」중에서
뇌출혈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고, 회복이 빠르니 다행이고, 기적적으로 아무렇지 않아 보여 다행이다. 물론 앞으로 평생 먹어야 하는 약의 특징상 지혈이 잘 안 된다거나 멍이 많이 든다거나 피부발진, 두통, 어지러움, 언어 장애 등 곳곳에 지뢰밭 같은 징검돌들을 건너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알고 가는 길과 모르고 가는 길은 다를 것이다.
---「내 삶을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다」중에서
뇌경색은 재발과 후유증을 조심해야 한다. 혹시나 재발하면 신속하게 병원에 가야 한다. 다른 대안은 없다. 바로 큰 병원 응급실 행이다. 내 삶 속에 ‘응급실’이 이렇게 친숙하고 또 의지가 되는 순간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건대, 우리 모두에게는 ‘응급실’이 필요하다.
---「나는 조금 힘들고 많이 행복하다」중에서
행복의 가치와 기준을 돈에 두면, 많이 가진 자가 더 행복하고 적게 가진 자는 불행할 것이다. 그러나 재산이 많이 있어도 봤고 없어도 봤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작 행복은 마음속에 있다고 한다. 함께하는 이들 사이에서 마음을 나누고 그 마음을 내가 베풀 수 있는 관계가 있다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아이들도 행복하게 살고자 필요한 것들에 자동차, 돈, 집, 능력을 내세운다. 어른들의 생각을 아이들이 받아들이면서 자라는 것이다.
---「행복이 커튼 틈 사이로 가려지지 않기를」중에서
삶에 대해서나 불행이나 절망에 대해서나 크게 요동치지 않는다. 글도 담담하게 쓰게 되었다. 절망을 기회로,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면 절망도 얼마든지, 언제든지 희망이자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절망이란 행운의 여신의 뒷모습일 수 있다. 나에게 다가온 수많은 절망 앞에서 행운의 여신이 보내는 미소를 발견할 수 있기를, 앞으로도 나에게 다가올 절망 앞에서 무릎 꿇지 않기를 꿈꾼다. 그렇게 담담히 살아가고 싶다.
---「절망은 행운의 여신의 뒷모습이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