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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지은 시

인공지능이 지은 시

황금알 시인선-212이동
박산 | 황금알 | 2020년 06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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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53*224*20mm
ISBN13 9791189205669
ISBN10 118920566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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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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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써 놓고 보니

뭔가 있는 척 했다

잘못했다!

시에게 사과하고는

얼른 다 지웠다
--- 「가식」 중에서

쓰고 찾고 저장하고
듣고 보고 소통하고도
쥐고 있어야 안심
그것도 모자라
머리맡에 두고 잠들기
신줏단지 모시듯
상전도 이런 상전이 없다

내가 주인이어야 마땅한데…
버리자! 이눔을 버리자!
it's 100% impossible!

그럼 이틀만… 아니 하루만이라도

지하철에서
앉고 서 있는 젊은 다수는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에 머리 박고는
구린 입도 안 떼고 문자를 두드리는데
검고 붉고 푸른 옷차림의
내 또래 60대 남녀들은
주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통화 중이다
공연히 내 얼굴이 붉어진다

독한 맘먹고 닷새를 버렸다

헤어졌다 만난 애인 입술 열 듯 다시 켰다

도심이 싫다고 지리산 자락 사는 W가
짜증스런 문자를 남겼다
-아니 왜 전화를 안 받아?-
도사 되긴 힘든 친구다

자주 소통하는 단톡방 다섯 군데에
-69 28 19 45 39- 로또 같은 두 자리 숫자와
열다섯 군데 개별 톡의 숫자가 보이고
입출금 은행 카드 관련 문자가 여섯 군데
뭔 일이냐? 묻는 카톡과 중복된 문자 몇 개 등등

낄낄낄! 닷새 동안 뭐 별것도 없었다
다음 목표는 열흘 버리기다
--- 「닷새 동안 뭐 별것도…」 중에서

긴장 속 팽팽한 연장전에서
끝내기 홈런 때린 타자의 환호성보다
고개 푹 떨군 투수의 축 처진 어깨를
보듬어 달래주고 싶다
--- 「나잇값」 중에서

작은 모임에서 시 얘기를 했었는데
지역 신문을 운영한다는 분이
전화를 주셨다

― 선생님 시 ‘당신도’를 싣고 싶은데
저희 같은 3류 지역 신문이….

말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을 했다

― 에이 무슨 말씀을
저도 3류인데요 뭐
--- 「3류」 중에서

전쟁 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다
먹는 일이 급해 싸는 일은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딜 가나 싸는 곳에
아로마 은은하고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이 흐른다
급한 일을 급하지 않게 오히려 느긋하고 즐겁게 본다
거기다가 무료다
휴지 세제 손 닦는 휴지까지
TQ 지수 10점 만점에 10점이다

잘 사는 나라 못 사는 나라 꽤 다녀봤다
기차가 멈추면 아무데나 뛰어나가 일을 보는 나라도
쭈그려 앉아서 일 보려다 발 디딜 틈이 없어 포기했던 나라도
컴컴하게 열린 공간에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로 코를 막고는
밤 고양이 눈에 불 켜듯 반짝이는 담배 불빛과 연기 자욱한 채
서로 빤히 마주 보고 일을 봐야 하는 나라도 가봤다
나라가 가난하니 이해가 갔다 우리도 그랬었으니까
그렇지만 TQ 지수 제로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산다는 EU 국가들은 정말 이해 불가다
뚱뚱하고 인상 험한 아주머니들이
지하철역 고속도로 휴게실 유명 관광지 등의
비좁은 화장실 문 앞에서 떡 버티고는 돈을 받는다
동전 투입구로 급한 일을 막아 짜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0.5유로 받아서 뭐 얼마나 더 잘 살려고 그러는지
우리 속담 '있는 놈들이 더 한다'는 말이 맞다
TQ 지수 10점 만점에 6점도 주기 아깝다

* TQ 지수: 박산이 만든 화장실 지수(Toilet Quotient)
--- 「TQ 지수」 중에서

새벽 6시 어둠 속 가미호로소* 야외 온천탕
제 몸 몇 배의 눈덩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소나무들이
부러진 가지들조차 쉬이 놓아주지 못하고 바람을 부르고 있다

산악스키 전문가라는 가슴 털이 복슬복슬한 스웨덴 청년과
뽀얀 김 서린 욕탕에 어깨까지 푹 담근 채로
그가 경험하고 있는 일본 얘기를 듣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하고 물어와
이렇고 저렇고 몇 마디 대꾸하는데
바람이 던진 커다란 눈덩이 하나가
소나무 꼭대기로부터 날아와
김 서린 온천탕 우리 머리 위를 퍽! 하고 덮쳤다

머리 위 눈을 툭툭 털어내던 청년은
솟구치는 새벽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겠는지
덜렁거리며 벌떡 일어나더니
스트레칭으로 물장구치며
“Today will be good job! fine…”
신바람으로 오늘 펼쳐질 스키트레킹의 설렘을 말하고 있는데
눈 덮인 산속 새벽이 깨지는 풍경에 심취한 나는
건성으로 맞장구나 쳐줄 요량으로
“right!” “sure!”
고개를 끄떡이며 짧게 말하고 있다

다시 또 싸한 바람이 더 큰 눈덩이를 몰고 와
욕탕을 어지럽히고 지나간다
코끝이 시리고 뺨이 얼얼해 왔다
뜨거운 물로 눈을 씻어 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The sound of wind is sometime soft and sometime it is not”

청년이 하려던 말을 멈추고 물끄러미 날 쳐다보더니

“Whose poem?”
소나무가 보낸 바람과 눈이 다시 내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It is my poem now written by me. I am poet.”

“Really?….”
생존 본능의 소나무들은 쉬지 않고 바람을 불러 제 몸무게를 가볍게 하고 있는 중이다
바람은 계속해서 윙윙 큰 소리로 울고 있다

* 가미호로소: 일본 북해도 대설산 토카치다케 계곡에 있는 호텔. 영화의 스크린을 앞에 두고 있는 듯한 야외온천탕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유명하다
--- 「바람소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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