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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청 만드는 법 / 핑거라임

레몬청 만드는 법 / 핑거라임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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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6월 3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246g | 125*185*15mm
ISBN13 9791196138929
ISBN10 1196138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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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서면 주먹밥과 콜라 따위가 진열된 좁고 기다란 카운터가 먼저 보였고, 초등학교 교실처럼 오밀조밀 놓인 식탁과 의자 뒤로 주방 입구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벽은 아주 연한 연두색이었는데, 페인트가 긁힌 자국이나 거무스름한 얼룩 때문에 아픈 사람의 누렇게 뜬 얼굴 같았다. 화장실 문에는 '손을 깨끗이 씻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화장실 안은 주인아저씨가 하루에도 몇 번씩 청소해서 늘 깨끗했다. 하얀 벽에는 에펠탑을 그린 수채화가 걸려 있었고 플라스틱 통에 담긴 물비누에서 풀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 p.9

주인아저씨는 음료를 정성껏 만들었다. 태국식이라고 단순히 연유와 설탕만 넣은 게 아니라, 적은 양이지만 별처럼 생긴 나무 열매를 비롯하여 이름을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향신료를 넣고 끓였다. 음료 만들기와 화장실 청소를 각별하게 생각하는 주인아저씨는 점잖고 조용한 분이었다. 아저씨의 우리말이 서툴러서 대화를 깊이 나누지는 못했으나, 나도 왠지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계산대를 지키고 싶어졌다.
--- p.10

남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차례대로 읽었고, 여자의 눈은 위아래 좌우로 구르면서 사방을 헤집었다. 진열장에 놓인 주먹밥과 코코넛 주스 캔을 보다가, 내 머리 위의 메뉴판을 보다가, 턱을 치켜들어 천장도 보다가, 계산대 옆에 진열한 태국산 홍차 티백을 보았다. 남자는 바질치킨볶음밥, 여자는 두부팟타이를 시켰다. 물컵을 들고 자리에 앉은 여자는 미대 벽화 동아리 학생들이 벽에 그려 준 커다란 해바라기와 말리화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p.14

일요일에 문을 여는 식당이 많지 않아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였다.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았고, 커피를 담은 보온통이 비었다. 그녀에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다시 계산대 앞에 섰을 때 그녀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보면서도 보지 않는 것처럼 텅 빈 표정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 레몬청이 담긴 유리병을 가리켰다.
--- p.17

나는 레몬을 썰다 말고 사분의 일쯤 되는 조각을 그대로 입에 넣었다. 시고 씁쓸한 과즙이 혀에 닿았다. 코를 막고 레몬 조각에 이를 깊이 박아 보았다. 강렬한 신맛에 입 안이 아렸다. 시큼한 향이 피부에서 스며 나오는 기분이었다.
--- p.23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약물 치료, 인지 치료, 미술 치료, 언어 치료, 음악 치료를 두루 거치고도 차도가 없어서 상담사의 권유로 핑거라임 요법 시술을 받으러 온다. 시술을 할 때에는 먼저 의뢰인을 긴 의자에 눕히고 눈을 가린다. 의자에 설치된 헬멧을 씌워 머리를 고정한다. 태아 시절에 들었던 어머니의 심장 박동 소리와 비슷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바로크 음악을 작게 튼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의뢰인에게 핑거라임 요법을 설명한다.
--- p.49

인간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까?
--- p.53

어쩌면 너무나도 일상적인 그런 소리들, 무시하면 그만일지 모르죠. 하지만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요. 다른 사람들은 정말 안 거슬리는 건지. 의미 없는 소리들. 카페에서 한 사람이 목소리를 높이면 모두의 목소리가 커지죠. 타인에게 질 수 없다는 안간힘. 주목받으려는 비굴함. 어떻게 들릴지 계산하고 연출한 대화. 모르는 사람까지도 다 들으라고 내지르는 말들.
--- p.57

그들은 어떤 이유에선지 사방이 조용해야 긴장이 풀리고 편안해지는데, 그런 편안한 상태를 소리가 위협한다고 여긴다. 마음의 평화에 집착하느라 청각이 예민해져서 그 평화를 쉽게 얻지 못한다.
--- p.59

“줄곧 레몬이나 라임을 소재로 무언가를 쓰고 싶었습니다. 너무 시어서 괴로운데 동시에 맛있기도 하고, 그런 오묘함이 인생과 닮았다고 생각해요.”
--- p.100 「작가들의 대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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