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고 남녀평등 혹은 젠더 평등을 주장하는 모든 이론적 담론과 실천 활동을 총칭합니다. 여성가족부가 생기고 나서 남녀는 평등하며, 심지어 남성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주장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성 평등 문제가 다 해결되었거나 진행형으로 해결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이 한꺼번에 들고일어났습니다.
---「책을 내며」중에서
사정이 이런데 2000년대의 사회가 완전한 성 평등을 성취했고, 그래서 페미니즘은 불필요한 시대착오적 유물이 되었다 할 수 있을까요?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인 낙태는 여전히 범죄이며, 안티페미협회가 여성계 규탄시위를 하는 동안에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사회적 모험입니다.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성차별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간신히 자신을 변호해도 권리만 챙기고 의무는 다하지 않는 이기적 인간이라는 비난을 받기 일쑤입니다. 이제는 여성의 권익에 대한 논의만 펼쳐도 극단주의자라는 꼬리표가 달린 ‘메갈’ 의혹을 받기도 합니다.
---「책을 내며」중에서
처음 권투를 배우려고 체육관에 등록하러 간 날, 코치는 제게 “가볍게 하실래요, 제대로 하실래요?”라고 물었습니다. “권투는 왕초보니 가볍게 할게요”라고 했더니, 회원카드 비고란에 ‘다이어트’라고 적었습니다. 살 빠져서 나쁠 거야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새로운 운동으로 경험을 넓혀 보려고 자동차 와이퍼에 꽂힌 광고 전단지를 들고 찾아간 건데, 왜 권투를 배운다고 하면 한마디씩 들어야 하는지, 또 여성이 운동을 한다면 왜 일단은 다이어트가 목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약간 의아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했죠.
---「왜 남자 아니면 여자여야 하지?」중에서
우리는 태어날 때 여자나 남자로 태어납니다. 두 성의 기준에 애매하게 들지 않는 인터섹스를 제외하면 대부분 생물학적 성은 태어날 때 결정됩니다. 생식 기관의 모양새라는 해부학적 차이에 근거한 성을 섹스(sex)라고 한다면, 성장하면서 우리가 어떤 성과 동일시하는가 하는 문화적 성 혹은 사회적 성은 젠더(gender)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어떤 성기를 가졌느냐가 섹스, 내가 나를 어떤 성별로 느끼느냐가 젠더인 셈입니다.
---「왜 남자 아니면 여자여야 하지?」중에서
통상적으로 차이는 차별을, 차별은 억압을, 억압은 폭력을 낳는다고 합니다. 다름이 틀림이 아닐 방법, 즉 차이가 폭력이 아닐 방법이 과연 있을까요? 나와 다른 것을 마주할 때, 우리는 진심으로 그것이 단지 개인이 취향에 불과하고 서로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니라고 여길 수 있을까요?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우리가 누구와 아파트를 공유할지는 결정할 수 있어도 이 지구상에서 누구와 함께 살지는 결정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누구와 함께 살지를 선택하게 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종족이나 인종 학살로 귀결될 것이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홀로코스트 같은 비극을 낳게 됩니다.
---「왜 남자 아니면 여자여야 하지?」중에서
남성적인 것이 표준이고 여성적인 것이 약간 못 미치는 것이라는 위계 의식, 이성애가 정상이고 소수성애는 비정상이라는 위계 의식을 허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여자와 남자, 동성애와 이성애는 확실히 구분된다는 이원론을 해체한다면 사람들이 여러 가지 다른 차이가 있더라도 인간이라는 보편 토대 위에 인간답게 살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문제는 크게 보면 ‘살기 좋은 삶’ 혹은 ‘살 수 있는 삶’의 문제로 직결됩니다.
---「왜 남자 아니면 여자여야 하지?」중에서
위티그는 페미니즘의 대모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Beauvoir, 1908~1986)의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재해석합니다. 여성이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진다는 것은 선천적인 성보다는 후천적인 성, 타고난 성보다는 습득된 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위티그는 보부아르의 명제를 가져와 습득된 여성, 구성된 여성은 이성애 여성이 아니라 레즈비언 여성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젠더와 퀴어는 무엇일까?」중에서
『젠더 트러블』은 이 사회가 이성애 중심 사회라면 정말 여성/남성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지, 여성성/남성성의 내적 본질이 있는지, 또 동성애/이성애의 확고한 이분법이 가능한지를 심문합니다. 버틀러는 모니크 위티그를 제외한 당대의 프랑스 페미니즘이 전반적으로 문화적 인식성에 있어 여성성과 남성성의 근본적 차이를 가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비판을 위해 기존의 이원적 젠더/섹스가 인과적으로 연결되고 결정된다는 생각에 트러블을 일으키고자 했습니다.
---「젠더와 퀴어는 무엇일까?」중에서
“내가 남자라는 걸 알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거든요.” 또 이렇게도 말합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모습과 내가 얼마나 다르게 느끼는지, 실제로도 얼마나 다른지 알기 시작했어요.” “나한테 주어졌던 그 따위 장난감도 좋아하지 않았어요.” 인간의 모든 가치가 성기로 판단된다는 데 브렌다/데이비드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내 가치가 내 다리 사이에 있는 것 때문에 정당화된다면 나는 완전한 실패자겠죠.”
---「이분법에 희생된 사람들」중에서
존과 톰은 왜 브랜든을 살해했을까요? 왜 그냥 죽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총상으로 경련에 떠는 브랜든의 가슴에 수차례나 칼을 찔러 넣었을까요? (…) 존과 톰에게 사형과 무기 징역을 살게 한 이 끔찍한 살인의 동기는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질투, 그다음에는 분노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성애 혐오 혹은 동성애 공포일 것입니다. 살인이라는 끔찍한 충동을 들게 할 정도로 혐오스럽고 공포스러운 것은 남성의 남성성이 흔들리고, 이성애의 정상성이 의심받을지 모른다는 공포와 그로 인한 혐오였습니다.
---「이분법에 희생된 사람들」중에서
에이나르는 트랜스베스타잇, 트랜스젠더, 트랜스섹슈얼 세 영역에 걸쳐 있는 사람입입니다. 처음에 에이나르는 단순히 모델의 여성용 드레스와 스타킹의 감촉을 좋아하고 여성 복장에 흥분과 설렘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점차 릴리 엘베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했습니다. 릴리 엘베로 사교계에 나타났을 때는 다른 남성 헨릭에게 받은 구애와 키스에 강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여러 부작용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세계 최초로 최종 단계까지 여성의 몸이 되는, 실험적인 수술을 받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이분법에 맞선 사람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