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어느 저녁, 처음 가까이서 만난 이후 야생 검은 늑대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저 어둠 속에서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형체가 아니라 수년간 사람들이 알고 지내는 존재가 되었다. 이것은 빛과 어둠, 희망과 슬픔, 공포와 사랑, 그리고 어쩌면 약간의 마법이 뒤얽힌 이야기다. 이것은 로미오의 이야기다. --- 「프롤로그」중에서
늑대는 골격 자체가 다르다. 다리가 더 길고, 척추가 더 곧고, 목이 더 두껍고, 꼬리가 더 무성하며, 털이 더 빽빽하고 많은 층을 이루고 있다. 늑대가 지나간 자취가 그렇듯이 미끄러지는 듯한 경제적인 움직임 역시 독특하다. 하지만 늑대와 개의 차이를 보여주는 진정한 척도는 눈이다. 개는 눈을 통해 총명함과 유대감을 표출하지만, 깜박임조차 없는 늑대의 시선에 포착되면 마치 레이저를 응시하는 것 같다. --- 「늑대다!」중에서
어느 날 아침 셰리가 침실 블라인드를 걷었더니 회색빛 여명 속에서 늑대 혼자 우리 집을 응시하며 눈밭에 앉아 있었다. “아, 로미오가 또 있어.” 하고 셰리가 중얼거렸다. 처음 셰리는 굳이 이름을 붙일 생각은 아니었지만, 로미오라는 호칭이 워낙 잘 어울려서 우리끼리 대화할 때는 그렇게 굳어져버렸다. 셰리는 어쨌든 녀석을 그냥 ‘그 늑대’라고 계속 부르기엔 너무 잘 지냈을 뿐 아니라 오래 알고 지냈다고 말했다. --- 「로미오」중에서
첫 총성이 울려 퍼졌을 때 나는 ‘그 늑대’라는 생각을 언어보다는 이미지에 가까운 형태로 제일 먼저 떠올렸다. 지금 어둠 속을 뚫고 달려가봤자 정적만 울려 퍼질 뿐, 허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서둘러 청바지와 부츠, 재킷을 집어들었다. 경찰 신고 센터에 전화를 걸었지만 담당자는 알래스카 식의 작은 놀이를 수사하기 위해 촌구석에 수사관 파견하는 일을 달갑잖게 여기는 게 분명해 보였다. --- 「쏴라, 파묻어라 그리고 입을 닫아라」중에서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겨울철 영역을 선택한 로미오의 안목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늑대는 저항이 가장 적은 길을 택하는 편이다. 생존은 끝없는 험로에서 잃는 에너지보다 얻는 에너지가 더 많아야 한다는 지엄한 원칙에 좌우된다. 실패는 곧 죽음이다. 사냥에 나섰다가 어려움에 처한 늑대 무리는 보통 하루 25킬로미터에서 50킬로미터 정도 일렬종대로 이동하고, 부담이 큰 선두는 서로 돌아가면서 맡는다. 이는 방랑벽이 아니라 필요, 즉 텅 빈 위를 먹이로 채울 필요에서 나온 행위다. --- 「생존 경쟁」중에서
나는 이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었지만 창밖 풍경을 힐끗 보기만 해도 뭔가가 잘못되고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한 사람은 이 늑대를 사람들에게 구경시켜 주고 싶어하고 다른 한 사람은 독점하고 싶어한다는 차이는 있었지만, 어쨌든 해리와 하이드 쇼라고 불리기도 하는 행동의 최종 결과는 동일했다. 정치적인 뒷이야기는 이런 예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2006년 12월, 세라 페일린이 알래스카 주지사에 당선되고 곧바로 자기식대로 야생동물 관리에 들어갔다. --- 「늑대와 소통하는 사람」중에서
녀석은 꼬리를 들고 총총 다가와 높은 음조로 애가를 읊조리고 부드럽게 낑낑대고 나서 우리의 자취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그 자리에서 빙빙 돌았다. 우리가 자리를 잡으면 녀석도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누웠고, 마치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오래된 친구들처럼 모두―개와 인간 그리고 늑대―가 잠시 동안 한데 어울린다는 데 만족하며 여유를 만끽했다.
--- 「로미오와 친구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