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좋아하면 천국 못 간다구는 하더라만….” 당신이 가꾼 꽃을 들여다보며 할머니가 가끔 하던 말씀이다. … 하더라만…. 이렇게 할머니가 남긴 그 뒷말의 여운 속에서 나는 당신이 이렇게 살아 있어서 이처럼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천국이 아니겠느냔, 할머니의 꽃 사랑 넘치는 즐거움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음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것 같았다.
--- p.16, 「꽃밭, 할머니의 천국」 증에서
실컷 울고 난 뒤 열적은 마음으로 경춘선 철길을 따라 걷다 보니 공지천의 뱀산 앞이었다. 뱀산 절벽에 진달래꽃이 만발했다. 제기랄, 그 진달래꽃이 왜 또 그렇게 아름답던지, 철길에 주저앉아 또 울었다. 열여덟 살 그 봄날의 비애미, 그 극치는 철길 아래 움막에서 나와 철둑에 앉아 볕 쪼임을 하던 나환자 아버지와 그 아들의 만남이었다. 예닐곱 살 된 남자아이가 손가락이 뭉그러지고 눈썹도 없는 나환자 아버지의 얼굴에 무슨 약인가를 바르고 있는 장면이었다. 충격, 엄청난 발견이었다. 아,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열외로 밀린 밑바닥 그 절망에서 새로운 세상을 본 것이다.
--- p.38, 「진달래 추억」 증에서
김유정은 고향의 자연 속에서 일제강점기 똥구멍 째지게 가난한 만무방들의 생활을 담 너머로 넌지시 바라보는 일로 위안 받는다. 그네들 이야기를 글로 써내고 싶은 충동, 그때 김유정이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으면 「동백꽃」, 「봄·봄」 같은 작품은 세상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김유정은 학교도 없는 작은 마을에서 야학과 농촌계몽운동을 벌이는 가운데 처참한 자기 신세의 희화화, 능청과 시치미 떼기로서의 이야깃거리를 모아 소설 쓰는 즐거움을 찾았던 것이다.
--- p.68, 「김유정을 만나다」 증에서
더 놀라운 것은 내 눈에 들어온 나무와 풀들이 내가 그네들을 바라보기 전보다 먼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네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그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저들도 살아 있구나. 저들도 나와 함께 살고 있구나.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을 저들도 똑같이 보고 느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왔다. ㅎㅎㅎㅎ. 진달래꽃이 내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우우우웅…. 벌들을 불러 사랑을 나누는 벚꽃나무의 환락경, 그 환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목의 겨울나기, 완전히 죽은 상태로 추위를 이겨낸 나목의 봄맞이 그 장엄한 소생 앞에 나는 말을 잃었다.
--- p.103~104,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 증에서
김유정의 동백꽃은 꽃 모양이 산수유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나무다. 산수유는 외래 식물이지만 동백은 한반도에만 자생하는 우리 나무로 산수유나 남쪽의 빨간 동백꽃이 냄새가 전혀 없는 데 비해서 꽃 향이 알싸하니 짙다. 손가락으로 비비면 냄새가 나는 세 가닥 타원형의 잎은 덖어서 꽃잎처럼 말려 차로 쓰거나 부각을 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노란 꽃을 말려 차로 끓여 먹으면 머리가 개운해져 옛날 절간 차로 유명하다.
--- p.131, 「알싸하고 향깃한 노란 동백꽃」 증에서
그리고 주목 아래 자줏빛으로 핀 얼레지 꽃 군락은 영산의 신비로움을 한층 더하게 했다. 길쯤한 두 장의 잎 한가운데 꽃자루를 키워 사뿐히 피어난 얼레지 꽃은 그 이름만큼이나 모습이 이국적이었다. 실제로 백합과에 속하는 얼레지 꽃은 겨울 꽃으로 인기 있는 시크라멘과 모양새가 비슷했다. 산행에서 얼레지 꽃을 가끔 보긴 했어도 이렇게 눈 속에 지천으로 군락을 이뤄 핀 것을 보기는 처음이어서 와아, 하는 탄사가 저절로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어? 그때 낯선 것이 눈에 보였다. 딱 한 송이 흰빛 얼레지 꽃. 자줏빛으로 무리지어 핀 숱한 얼레지 꽃 속에 숨은 듯 피어 있는 그 흰빛 얼레지 꽃의 발견은 현실 같지가 않았다.
--- p.149~150, 「얼레지 꽃」 증에서
자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신명이 넘쳐난다. 당신들 이거 몰랐지, 이거 이렇게 아름다운 거. 이렇게 대단한 자연의 이치를 알고 있다는 자족의 뽐냄이다. 자연에 대해서 내가 이만큼 알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이제부터 내가 하는 모든 이야기를 믿고 들으라는 식이다. 그것은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듣게 하기 위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전략일 수도.
--- p.195, 「신명, 아는 척 뽐내기」 증에서
이팝나무. 절기의 그 입하가 이팝으로, 혹은 이밥이 이팝으로, 이러쿵저러쿵 생긴 나무 이름이라 이런저런 전설도 전해진다. 이밥(흰쌀밥)으로 올린 제삿밥을 몰래 먹은 며느리가 시어머니 구박으로 죽은 뒤 그 무덤에서 이밥 같은 흰 꽃이 다닥다닥 피었다는 이야기에, 눈이 먼 어머니가 그렇게 먹고 싶어 하는 흰 쌀밥을 해드릴 수가 없어 그 자식이 잡곡밥 위에 이팝나무 꽃을 한 줌 얹어 올렸더니 그 밥을 맛있게 잡수더란 이야기까지. 그리 멀지 않은 그 시절, 우리네의 가난에 대해 생각한다.
--- p.225, 「이팝나무, 이밥」 증에서
나는 가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입 속에 중얼거린다. 그 나무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내가 그 나무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의 확인일 터이다. 사랑의 숭고함은 주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지만 그 결실, 혹은 영원성은 주고받는 그 양에 비례한다는 생각이다. 우리 할머니가 그 시절 그랬듯 나 또한 들꽃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내가 능청스레 감추고 사는 염세·염인증의 자가 치유의 바이블이 바로 자연이었기 때문이다.
--- p.298, 「그 나무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