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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하다 1

오로지하다 1

이드한 | 동아 | 2020년 07월 24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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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7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432쪽 | 402g | 128*188*20mm
ISBN13 9791163023630
ISBN10 116302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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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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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30분으로 해.”
“…….”
“내 전화 시간은.”
통화를 하자는 말이 믿기지 않아 고개를 돌렸는데, 태평이 기다렸다는 듯 로지의 시선을 잡아챘다. 마주 닿은 시선이 얽히며 두 사람은 서로의 눈동자만 빤히 바라보았다. 켜져 있던 센서등의 불이 꺼질 때까지.
로지는 어두워진 현관에 몸을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조금씩 멀어지는 걸음 소리가 들렸다. 뚜벅거리는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로지는 시선을 뺏긴 사람처럼 현관문을 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따뜻해.”
가까스로 시선을 내린 로지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태평과 다투는 동안 하얗게 질려 있던 손끝에 혈색이 돌고 있었다. 손끝에서 퍼지기 시작한 온기는 이윽고 온몸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로지는 딱딱하게 굳어 있던 무언가가 스르륵 녹아내리는 걸 느끼며 가슴 위에 손을 살포시 얹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손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중략)
“미안해.”
버석하게 갈라진 목소리로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로지는 가볍게 도리질을 쳤다.
“미안하기는, 너한테 보여 줬을 때부터 그건 이미 네 그림이었어.”
괜찮다고 말한 로지는 태평의 등허리를 토닥였다. 그 작은 손이 전하는 울림이 태평의 가슴 밑바닥까지 전해졌다.
바보 같은 뱁새. 그래서 더 예쁜…… 오로지.
그림을 빼앗긴 사람은 태평이 아니었다. 로지였다. 그런데 정작 위로를 받는 사람은 자신이라니. 그게 너무 안타까워 미칠 것 같았다. 태평은 로지가 쓰고 있는 헬멧에 그의 뺨을 가져갔다. 로지의 뒤로 해가 완전히 져서 스산해진 강가가 보였다.
그 어둠 속에 서 있는 어린 시절의 태평이 보였다. 영국으로 떠나기 전이었다. 올리버는 한국과 작별 인사를 하라고 태평을 데리고 이곳에 왔었다.
태평을 업은 올리버는 나쁜 기억들은 모두 이 강에 던져 버리고 영국에서 새롭게 시작하자고 했다.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태평은 대답 대신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강 건너 도로에 줄지어 서 있던 차들의 붉은 브레이크 등 때문이었다. 그 빨간 불빛들이 트리를 감쌌던 꼬마전구 같아서, 불에 휩싸여 피눈물을 흘리던 부모님의 눈처럼 보여서…… 태평은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오늘도 차들은 새빨간 브레이크 등을 환히 밝힌 채 기다란 꼬리를 만들고 서 있었다. 태평은 어렸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는 똑같은 풍경을 두 눈에 똑똑히 담았다.
“오로지.”
로지의 이름을 부른 순간, 로지가 쓰고 있던 헬멧 위로 뜨거운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태평은 그의 눈물이 떨어진 곳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감사함을 담은 입맞춤이었다.
악몽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는 있게 되었으니까. 로지와 가까이 닿아 있는 만큼, 그의 마음도 로지의 마음에 마주 닿았으니까.
“좋아해.”
머릿속을 꽉 채운 감정이 태평의 입술을 스치고 떠나갔다. 로지의 팔이 그의 허리를 느릿하게 당겨 안는 게 느껴졌다. 서로의 몸만 꼭 끌어안은 채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 정적을 흘려보낸 뒤 로지가 속삭였다.
“너만 돈 거 아니야.”
“…….”
“나도 완전히 돌아 버렸어.”
“…….”
“김태평한테.”
감당할 수 없는 충만한 감정이 태평의 머릿속을 꽉 채웠다. 낮은 한숨을 몰아쉬며 로지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터질 듯이 쿵쿵대는 심장과 달리 그의 얼굴은 잔잔한 평화로 깊게 물들고 있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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