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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분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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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원갑 | 바움 | 2013년 06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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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6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560g | 148*210*30mm
ISBN13 9788958831099
ISBN10 895883109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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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은 어둠 속에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희미한 불빛에 어린 건너편 물가의 나무 그림자들, 멀리 국도 쪽에서 이따금 자동차 소리가 들렸고, 마을에서 간간이 개 짖는 소리도 들렸다. 어둠 속에서 시간은 쉴 새 없이 흘러갔다. 한 시, 두 시, 세 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비록 정확한 초점은 잡히지 않았지만 맑은 하늘에 별빛이 총총했다. 아아, 저 아름다운 별빛을 이제 앞으로 얼마나 더 바라볼 수 있을까! 이제 겨우 60고개를 넘겼을 따름인데 벌써부터 시력을 잃어가고 있으니 저 별빛들도 이젠 마음속에서, 또는 꿈속에서나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살아야 해. 내게 주어진 단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하고 귀중한 한 삶을 결코 포기할 수는 없어. 더군다나 나는 아직도 노약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있지 않은가. 아내도 언젠가는 응어리진 마음이 풀릴 날이 있겠지. 또 뭐 끝내 안 풀어지더라도 어쩌겠는가.
하지만 아직까지 딸자식 시집을 보내지 못했으니 어쩌면 좋을까. 그리고 이제 두 달 뒤면 두 돌이 되는 귀여운 손자 준용(俊用)이 있지 않은가. 아아, 그 녀석이 학교에 갈 때까지는 내가 살 수나 있을까. 욕심 같아서는 그 녀석이 학교에 가면 그림도 가르쳐주고 싶고, 손잡고 책방에 가서 그림책도 사주고 싶은데, 또 좀 더 크면 데리고 낚시도 다니고 싶은데, 이 모두가 그저 헛된 욕심에 불과할 뿐일까. 어리석게도 마음만 앞서는 걸까.
어쨌거나 난 어머니를 홀로 두고 먼저 갈 수는 없어.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해. 마지막 날까지 죽기를 각오하고 열심히 살아야 해. 달빛도 별빛도 없는 캄캄한 어두운 밤길을 가듯이 불안한 미래, 비록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해도, 내일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살아 있는 동안은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해. 힘을 내서 최선을 다해야 해. 그것이 남자의 길이다. 죽을 용기가 있다면 어찌 살 힘을 내지 못할 것인가…….
그때, 빨간색 전자 찌가 쑥 솟아올랐다. 낚싯대를 잡아챘다. 요란하게 철버덕 철버덕거리며 몸부림치는 놈을 끌어내는데 10여 분이나 걸렸다. 투지가 솟구쳤다. 묵직한 손맛 하며 힘찬 몸부림을 보니 잉어가 틀림없었다. 그 소리에 깨어난 오 선배가 밖으로 나와 뜰채로 잉어를 건져주었다. 그것이 그날 밤낚시의 장원이었다. 마릿수든 손맛이든 더 욕심을 낼 필요가 없었다. 잉어를 살림망에 넣고 종달은 방으로 들어갔다.
“여덟 시쯤 깨워주세요. 잡은 물고기들 방생하고, 아침 먹고, 가까운 아산온천에 가서 목욕이나 하고 올라갑시다.”
한종달이 안으로 들어가면서 하늘을 쳐다보니 아직도 캄캄한 하늘에서 그 많던 별빛이 사라지고 있었다. 영롱하게 빛나던 별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 「별 없는 밤길」 중에서

“나는 지금 쫓기고 있습니다. 이곳에 숨어 들어와 한 이십 년 살았는데 기어코 또 붙잡힐 신세가 되었단 말입니다.”
“선생을 쫓고 있는 사람이 도대체 누굽니까?”
“바로 내가 죽인 사람의 가족입니다. 그 사람의 아우와 아들인 모양인데, 관청에서 범인을 못 잡자 저희가 형의 원수를 갚겠다고 나서서 나를 찾아다니는 지 벌써 삼십 년입니다. 이십 년 전 이곳에 들어올 때만 해도 나는 젊었고, 언제 찾아와도 또 달아날 수 있다는 배짱이 있었지만 이젠 글렀습니다. 자식들도 딸이기는 하지만 클만큼 컸고 나도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 죄값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 뒤처리를 부탁드리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젊은이,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라 갈피를 잡을 수 없긴 하겠지만 내 간청을 들어주시겠소?”
“이거 참,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정말 너무나 뜻밖의 말씀이라 무어라 대답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금 여유가 없습니다. 그들이 언제 찾아올지 모릅니다. 또 그들이 순순히 나를 법정에 세울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아무래도 수십 년의 세월을 두고 나를 찾아 헤메었으니 보기가 무섭게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 것입니다. 그러니 단 한 마디, 승낙의 답변을 해주시오.”
그는 낭패하여 어쩔 바를 몰랐다. 그러나 사냥꾼은 다시 재빠른 어조로 말허리를 이어 나갔다.
“아까 새벽부터 바깥에 나간 것은 그들을 마을에서 먼 산 속으로 유인하여 처치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소. 어제 젊은이를 만난 마을의 그 술집에서 나는 그들을 발견했는데……. 어쨌든 내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오. 그들은 이미 마을에서 빠져나갈 만한 길목마다 사람들을 배치해 놓았더군. 그러고 보니 내 운세도 여기서 마지막인 모양이오.”
“아빠, 손님이 오셨어요.”
그때 막내가 방문을 열고 여전히 티없이 맑고 밝은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자, 이제 막다른 골목이요. 이미 너무 늦었으니 뒷일은 젊은이 뜻대로 하시오.”
하는 말을 남기고 사냥꾼은 문 밖으로 나갔다. 그는 의자에 주저앉은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아빠께서 나오시랍니다.”
하는 소리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둘째가 재빨리 그렇게 일러주고는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곧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현관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한 사람의 장년 사나이가 집 안쪽으로 지그시 쏘아보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 윤곽이나 표정 같은 것은 그의 어깨 너머 바깥으로 보이는 눈보라의 반사 때문에 분별할 수가 없었다.
“저, 젊은이 말이오?”
하고 그 사내가 어둠 속에서 울려나오듯 갈라지고 녹슨 음성으로 말했다.
“그렇소. 나의 사위될 사람이오. 저 사람과 딸들에게만은 사정을 봐주시기 바라오. 그들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지 않소?”
하고 사냥꾼이 대답했다.
--- 「폭설기」 중에서

“임금을 속이고 능멸한 죄는 천만 번 죽여도 오히려 가볍지만 짐이 천한 것의 목숨이 가련하여 자비를 베풀고자 하노라. 저 간악한 도미 놈의 두 눈알을 잡아 뽑아 새 모이로 주도록 하라! 그리고 아리수로 끌고 가서 빈 배에 태워 제멋대로 떠내려가도록 하라우!”
그렇게 끔찍하게 장님이 된 도미는 아리수, 오늘의 한강변으로 끌려 나가 노도 없고 삿대도 없는 작은 배에 태워져 그대로 강물에 띄워 보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 부부의 참극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개루왕은 그러고 나서 도미의 아내 아리를 대궐로 잡아들였다. 꿇어 엎드린 아리에게 얼굴을 들어보라고 하였더니 소문이 헛되지 않아 과연 천하의 절색이었다.
어허, 이런 미희를 그까짓 하찮은 도미라는 놈이 꿰어 차고 살았다니, 참으로 아까운지고! 이제부터 넌 내 것이다! 이렇게 속으로 생각한 개루왕은 음흉한 속셈을 제멋대로 털어놓았다.
“네 지아비는 감히 임금을 속인 죄를 지었기에 사형에 처했노라. 이제 너는 홀가분한 과부가 되었으니 오늘부터는 후궁에서 과인을 모시도록 하라. 알겠느냐?”
아리가 울면서 말했다.
“오오, 이 일을 어이 할꼬! 지아비가 죽었으니 이제는 누구를 믿고 의지하여 살아갈꼬! 대왕님, 이제 홀몸이 되었으니 천한 계집이 어찌 지엄하신 대왕폐하의 명령을 거역하오리까? 하오나 지금은 달거리를 하여 몸이 더럽기 때문에 모시지 못하겠사오니 며칠만 참으시고 말미를 주시옵소서.”
“으흠,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럼 월경이 끝나는 대로 몸을 깨끗이 씻고 다시 오도록 하라!”
그렇게 하여 범의 아가리 같은 대궐 문을 빠져나온 아리는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아리수 강변으로 달려갔다. 강을 건너 폭군의 마수가 닿지 않는 머나먼 곳으로 달아나려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런데 도미 부부의 수난 소식은 이미 발 없는 말을 타고 온 도성 안에 퍼져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아리가 울고 불며 강변을 실성한 여자처럼 헤매어 다니자 이를 불쌍히 여긴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와 이렇게 일러주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의 낭군 도미는 아직 죽지 않았소이다.”
“아니, 그게 정말이세요? 누가 저의 낭군을 보셨나요?”
“그렇다우! 왕의 군사들이 눈먼 도미를 강가로 끌고 와서 빈 배에 태워 강물에 흘려보냈다우. 임금이 그의 두 눈을 잡아 뽑아버렸다는구려. 세상에 그런 잔인한 자가 다 임금이라구……“
“아이구,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앞도 보이지 않는 사람을 빈 배에 태워 보냈다면 어디로 흘러갔을꼬?”
아리는 강가에 주저앉아 넋을 잃고 통곡을 했다. 그렇게 오래도록 울고 난 뒤에 강변을 아무리 헤매어 다니며 찾아보았으나 배가 보이지 않았다.
아리는 절망감에 못 이겨 하늘을 쳐다보며 통곡을 했다. 그러자 하늘도 감동하여 그녀를 도우려 했는지 갑자기 저 멀리 상류로부터 난데없는 빈 배 한 척이 내려와 물가에 닿는 것이었다.
--- 「도미와 아리」 중에서

나 연개소문은 보장왕 23년(664년)에 58세를 일기로 죽고 맏아들 남생이 막리지를 세습하여 권력을 장악했다. 나는 죽기 전에 남생·남건(男建)·남산(男産) 세 아들을 불러 이렇게 유언했다.
“너희 형제는 고기와 물같이 화합해 벼슬을 다투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 만일 그런 일이 있으면 반드시 이웃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죽은 뒤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자식 농사를 잘못 지은 것이 화근이었다. 내가 죽은 지 불과 2, 3년도 안되어 세 아들놈이 권력투쟁을 벌여 결국 고구려를 멸망의 길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그런 유언을 한 것도 평소 세 아들놈의 사이가 나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식들에게 권력을 세습한 것이 돌이킬 수 없는 나의 과오였다.
그런 의미에서 말한다면 정권이란 자질과 자격을 갖춘 자에게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도 내가 남긴 교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질도 없고 자격도 없는 자가 국가지도자 자리에 앉아서 오만무례한 이웃 나라에게는 질질 끌려 다니거나 무작정 퍼주기나 하면서 헛세월이나 보낸다면, 그런 나라의 앞날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그런 지도자는 나라가 망하기 전에 일찌감치 끌어내리는 것이 천만번 마땅할 것이다.
고구려는 내가 죽은 뒤에 세 아들이 내전을 벌인 끝에, 둘째 남건이 막리지가 되어 국정을 전담하여 당군의 침략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기울기 시작한 국운은 둑이 터진 제방과도 같아서 걷잡을 수 없었다.
보장왕 27년(668년) 고구려의 내분을 둘도 없는 호기로 삼은 당은 반역자 남생을 길잡이 삼아 5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공했다. 설상가상으로 나의 동생인 연정토(淵淨土)까지 12개 성을 들어 신라에 항복했다. 신라도 20만 대군을 동원하여 당군과 합세하여 고구려를 공격했다. 남건·남산 등이 죽을힘을 다해 도성을 지켰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려 그해 9월에 항복하고 말았다. 이로써 동명성제께서 개국한 대제국 고구려는 천년도 못되어 무상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끝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당부하노니 너희 후손들은 역사를 바로 보고, 역사에서 교훈을 찾기 바란다. 고구려가 망한 것은 당나라의 침략보다도 지도자 자질도 자격도 없던 나의 못난 자식놈들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지금 너희가 나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된 것이 아니냐.
그러나 저러나 이제 중국 오랑캐들에게 고구려의 역사마저 빼앗기고 만다면 동명성제와 영락대제와 을지문덕 장군, 그리고 나 또한 국적이 중국 오랑캐로 둔갑하고 말겠지만, 너희도 역사를 빼앗긴 못난 후손, 못난 조상이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아야만 하리라.
그보다도 너희가 남북통일을 이루기도 전에 김정일정권이 폭삭 망해버리면 북녘에 중국의 괴뢰정권이 잽싸게 들어설까 매우 걱정되는구나! 그렇게 되면 나는 이 저승에서도 동명성제와 영락대제, 을지문덕 장군 등 어르신들을 볼 면목이 더욱 없어지게 되겠구나!
사태가 이처럼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너희 못난 후손들은 집안싸움이나 계속할 작정이냐! 북을 쳐서 군사를 내보낼 때 쇠(징)를 쳐서 군사를 불러들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라.
--- 「대막리지의 한」 중에서종달은 어둠 속에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희미한 불빛에 어린 건너편 물가의 나무 그림자들, 멀리 국도 쪽에서 이따금 자동차 소리가 들렸고, 마을에서 간간이 개 짖는 소리도 들렸다. 어둠 속에서 시간은 쉴 새 없이 흘러갔다. 한 시, 두 시, 세 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비록 정확한 초점은 잡히지 않았지만 맑은 하늘에 별빛이 총총했다. 아아, 저 아름다운 별빛을 이제 앞으로 얼마나 더 바라볼 수 있을까! 이제 겨우 60고개를 넘겼을 따름인데 벌써부터 시력을 잃어가고 있으니 저 별빛들도 이젠 마음속에서, 또는 꿈속에서나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살아야 해. 내게 주어진 단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하고 귀중한 한 삶을 결코 포기할 수는 없어. 더군다나 나는 아직도 노약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있지 않은가. 아내도 언젠가는 응어리진 마음이 풀릴 날이 있겠지. 또 뭐 끝내 안 풀어지더라도 어쩌겠는가.
하지만 아직까지 딸자식 시집을 보내지 못했으니 어쩌면 좋을까. 그리고 이제 두 달 뒤면 두 돌이 되는 귀여운 손자 준용(俊用)이 있지 않은가. 아아, 그 녀석이 학교에 갈 때까지는 내가 살 수나 있을까. 욕심 같아서는 그 녀석이 학교에 가면 그림도 가르쳐주고 싶고, 손잡고 책방에 가서 그림책도 사주고 싶은데, 또 좀 더 크면 데리고 낚시도 다니고 싶은데, 이 모두가 그저 헛된 욕심에 불과할 뿐일까. 어리석게도 마음만 앞서는 걸까.
어쨌거나 난 어머니를 홀로 두고 먼저 갈 수는 없어.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해. 마지막 날까지 죽기를 각오하고 열심히 살아야 해. 달빛도 별빛도 없는 캄캄한 어두운 밤길을 가듯이 불안한 미래, 비록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해도, 내일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살아 있는 동안은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해. 힘을 내서 최선을 다해야 해. 그것이 남자의 길이다. 죽을 용기가 있다면 어찌 살 힘을 내지 못할 것인가…….
그때, 빨간색 전자 찌가 쑥 솟아올랐다. 낚싯대를 잡아챘다. 요란하게 철버덕 철버덕거리며 몸부림치는 놈을 끌어내는데 10여 분이나 걸렸다. 투지가 솟구쳤다. 묵직한 손맛 하며 힘찬 몸부림을 보니 잉어가 틀림없었다. 그 소리에 깨어난 오 선배가 밖으로 나와 뜰채로 잉어를 건져주었다. 그것이 그날 밤낚시의 장원이었다. 마릿수든 손맛이든 더 욕심을 낼 필요가 없었다. 잉어를 살림망에 넣고 종달은 방으로 들어갔다.
“여덟 시쯤 깨워주세요. 잡은 물고기들 방생하고, 아침 먹고, 가까운 아산온천에 가서 목욕이나 하고 올라갑시다.”
한종달이 안으로 들어가면서 하늘을 쳐다보니 아직도 캄캄한 하늘에서 그 많던 별빛이 사라지고 있었다. 영롱하게 빛나던 별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 「별 없는 밤길」 중에서

“나는 지금 쫓기고 있습니다. 이곳에 숨어 들어와 한 이십 년 살았는데 기어코 또 붙잡힐 신세가 되었단 말입니다.”
“선생을 쫓고 있는 사람이 도대체 누굽니까?”
“바로 내가 죽인 사람의 가족입니다. 그 사람의 아우와 아들인 모양인데, 관청에서 범인을 못 잡자 저희가 형의 원수를 갚겠다고 나서서 나를 찾아다니는 지 벌써 삼십 년입니다. 이십 년 전 이곳에 들어올 때만 해도 나는 젊었고, 언제 찾아와도 또 달아날 수 있다는 배짱이 있었지만 이젠 글렀습니다. 자식들도 딸이기는 하지만 클만큼 컸고 나도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 죄값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 뒤처리를 부탁드리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젊은이,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라 갈피를 잡을 수 없긴 하겠지만 내 간청을 들어주시겠소?”
“이거 참,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정말 너무나 뜻밖의 말씀이라 무어라 대답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금 여유가 없습니다. 그들이 언제 찾아올지 모릅니다. 또 그들이 순순히 나를 법정에 세울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아무래도 수십 년의 세월을 두고 나를 찾아 헤메었으니 보기가 무섭게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 것입니다. 그러니 단 한 마디, 승낙의 답변을 해주시오.”
그는 낭패하여 어쩔 바를 몰랐다. 그러나 사냥꾼은 다시 재빠른 어조로 말허리를 이어 나갔다.
“아까 새벽부터 바깥에 나간 것은 그들을 마을에서 먼 산 속으로 유인하여 처치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소. 어제 젊은이를 만난 마을의 그 술집에서 나는 그들을 발견했는데……. 어쨌든 내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오. 그들은 이미 마을에서 빠져나갈 만한 길목마다 사람들을 배치해 놓았더군. 그러고 보니 내 운세도 여기서 마지막인 모양이오.”
“아빠, 손님이 오셨어요.”
그때 막내가 방문을 열고 여전히 티없이 맑고 밝은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자, 이제 막다른 골목이요. 이미 너무 늦었으니 뒷일은 젊은이 뜻대로 하시오.”
하는 말을 남기고 사냥꾼은 문 밖으로 나갔다. 그는 의자에 주저앉은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아빠께서 나오시랍니다.”
하는 소리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둘째가 재빨리 그렇게 일러주고는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곧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현관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한 사람의 장년 사나이가 집 안쪽으로 지그시 쏘아보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 윤곽이나 표정 같은 것은 그의 어깨 너머 바깥으로 보이는 눈보라의 반사 때문에 분별할 수가 없었다.
“저, 젊은이 말이오?”
하고 그 사내가 어둠 속에서 울려나오듯 갈라지고 녹슨 음성으로 말했다.
“그렇소. 나의 사위될 사람이오. 저 사람과 딸들에게만은 사정을 봐주시기 바라오. 그들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지 않소?”
하고 사냥꾼이 대답했다.
--- 「폭설기」 중에서

“임금을 속이고 능멸한 죄는 천만 번 죽여도 오히려 가볍지만 짐이 천한 것의 목숨이 가련하여 자비를 베풀고자 하노라. 저 간악한 도미 놈의 두 눈알을 잡아 뽑아 새 모이로 주도록 하라! 그리고 아리수로 끌고 가서 빈 배에 태워 제멋대로 떠내려가도록 하라우!”
그렇게 끔찍하게 장님이 된 도미는 아리수, 오늘의 한강변으로 끌려 나가 노도 없고 삿대도 없는 작은 배에 태워져 그대로 강물에 띄워 보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 부부의 참극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개루왕은 그러고 나서 도미의 아내 아리를 대궐로 잡아들였다. 꿇어 엎드린 아리에게 얼굴을 들어보라고 하였더니 소문이 헛되지 않아 과연 천하의 절색이었다.
어허, 이런 미희를 그까짓 하찮은 도미라는 놈이 꿰어 차고 살았다니, 참으로 아까운지고! 이제부터 넌 내 것이다! 이렇게 속으로 생각한 개루왕은 음흉한 속셈을 제멋대로 털어놓았다.
“네 지아비는 감히 임금을 속인 죄를 지었기에 사형에 처했노라. 이제 너는 홀가분한 과부가 되었으니 오늘부터는 후궁에서 과인을 모시도록 하라. 알겠느냐?”
아리가 울면서 말했다.
“오오, 이 일을 어이 할꼬! 지아비가 죽었으니 이제는 누구를 믿고 의지하여 살아갈꼬! 대왕님, 이제 홀몸이 되었으니 천한 계집이 어찌 지엄하신 대왕폐하의 명령을 거역하오리까? 하오나 지금은 달거리를 하여 몸이 더럽기 때문에 모시지 못하겠사오니 며칠만 참으시고 말미를 주시옵소서.”
“으흠,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럼 월경이 끝나는 대로 몸을 깨끗이 씻고 다시 오도록 하라!”
그렇게 하여 범의 아가리 같은 대궐 문을 빠져나온 아리는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아리수 강변으로 달려갔다. 강을 건너 폭군의 마수가 닿지 않는 머나먼 곳으로 달아나려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런데 도미 부부의 수난 소식은 이미 발 없는 말을 타고 온 도성 안에 퍼져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아리가 울고 불며 강변을 실성한 여자처럼 헤매어 다니자 이를 불쌍히 여긴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와 이렇게 일러주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의 낭군 도미는 아직 죽지 않았소이다.”
“아니, 그게 정말이세요? 누가 저의 낭군을 보셨나요?”
“그렇다우! 왕의 군사들이 눈먼 도미를 강가로 끌고 와서 빈 배에 태워 강물에 흘려보냈다우. 임금이 그의 두 눈을 잡아 뽑아버렸다는구려. 세상에 그런 잔인한 자가 다 임금이라구……“
“아이구,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앞도 보이지 않는 사람을 빈 배에 태워 보냈다면 어디로 흘러갔을꼬?”
아리는 강가에 주저앉아 넋을 잃고 통곡을 했다. 그렇게 오래도록 울고 난 뒤에 강변을 아무리 헤매어 다니며 찾아보았으나 배가 보이지 않았다.
아리는 절망감에 못 이겨 하늘을 쳐다보며 통곡을 했다. 그러자 하늘도 감동하여 그녀를 도우려 했는지 갑자기 저 멀리 상류로부터 난데없는 빈 배 한 척이 내려와 물가에 닿는 것이었다.
--- 「도미와 아리」 중에서

나 연개소문은 보장왕 23년(664년)에 58세를 일기로 죽고 맏아들 남생이 막리지를 세습하여 권력을 장악했다. 나는 죽기 전에 남생·남건(男建)·남산(男産) 세 아들을 불러 이렇게 유언했다.
“너희 형제는 고기와 물같이 화합해 벼슬을 다투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 만일 그런 일이 있으면 반드시 이웃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죽은 뒤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자식 농사를 잘못 지은 것이 화근이었다. 내가 죽은 지 불과 2, 3년도 안되어 세 아들놈이 권력투쟁을 벌여 결국 고구려를 멸망의 길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그런 유언을 한 것도 평소 세 아들놈의 사이가 나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식들에게 권력을 세습한 것이 돌이킬 수 없는 나의 과오였다.
그런 의미에서 말한다면 정권이란 자질과 자격을 갖춘 자에게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도 내가 남긴 교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질도 없고 자격도 없는 자가 국가지도자 자리에 앉아서 오만무례한 이웃 나라에게는 질질 끌려 다니거나 무작정 퍼주기나 하면서 헛세월이나 보낸다면, 그런 나라의 앞날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그런 지도자는 나라가 망하기 전에 일찌감치 끌어내리는 것이 천만번 마땅할 것이다.
고구려는 내가 죽은 뒤에 세 아들이 내전을 벌인 끝에, 둘째 남건이 막리지가 되어 국정을 전담하여 당군의 침략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기울기 시작한 국운은 둑이 터진 제방과도 같아서 걷잡을 수 없었다.
보장왕 27년(668년) 고구려의 내분을 둘도 없는 호기로 삼은 당은 반역자 남생을 길잡이 삼아 5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공했다. 설상가상으로 나의 동생인 연정토(淵淨土)까지 12개 성을 들어 신라에 항복했다. 신라도 20만 대군을 동원하여 당군과 합세하여 고구려를 공격했다. 남건·남산 등이 죽을힘을 다해 도성을 지켰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려 그해 9월에 항복하고 말았다. 이로써 동명성제께서 개국한 대제국 고구려는 천년도 못되어 무상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끝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당부하노니 너희 후손들은 역사를 바로 보고, 역사에서 교훈을 찾기 바란다. 고구려가 망한 것은 당나라의 침략보다도 지도자 자질도 자격도 없던 나의 못난 자식놈들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지금 너희가 나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된 것이 아니냐.
그러나 저러나 이제 중국 오랑캐들에게 고구려의 역사마저 빼앗기고 만다면 동명성제와 영락대제와 을지문덕 장군, 그리고 나 또한 국적이 중국 오랑캐로 둔갑하고 말겠지만, 너희도 역사를 빼앗긴 못난 후손, 못난 조상이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아야만 하리라.
그보다도 너희가 남북통일을 이루기도 전에 김정일정권이 폭삭 망해버리면 북녘에 중국의 괴뢰정권이 잽싸게 들어설까 매우 걱정되는구나! 그렇게 되면 나는 이 저승에서도 동명성제와 영락대제, 을지문덕 장군 등 어르신들을 볼 면목이 더욱 없어지게 되겠구나!
사태가 이처럼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너희 못난 후손들은 집안싸움이나 계속할 작정이냐! 북을 쳐서 군사를 내보낼 때 쇠(징)를 쳐서 군사를 불러들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라.
--- 「대막리지의 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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