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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호두나무 상자

조그만 호두나무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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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7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84g | 128*188*10mm
ISBN13 9788960215030
ISBN10 896021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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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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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고양이가 조그만 호두나무 상자 속으로 숨어들어 갔어요.
올해로 열여덟 살이었는데요. 한 며칠 허공을 딛는 듯 휘청휘청하더니
밥 대신 물만 조금조금 먹더니 몸을 아주 가볍게 만들더니 어둠 속에서
눈만 훤히 뜨고 나를 향해 무어라 무어라 마른 입술을 달싹였는데요.
나는 알아듣지 못하고 그만 잠이 들고 말았어요.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보았지요. 애들이 죽으면 무지개다리를 건너간다지요. 그날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지개다리가 어딘가 떠있었나 봐요. 그렇게 가벼워졌으니 새처럼 훌쩍 날아올랐겠지요. 그리고 벌써 넉 달이 지나갔네요. 앞으로도 넉 달이 지나가고 또 넉 달이 지나가고 또 넉 달이 지나가겠지요. 무지개다리
아래로 위로 여전히 시간은 흐물흐물 흘러가겠지요. 꼭꼭 숨어서 숨소리도
안 들리는 고양이는 저 있는 곳으로 제가 좋아하는 햇볕은 잘 불러들이고 있는지, 그곳으로도 제가 다닐 만한 길을 만들어놓고 겁도 없이 혼자 잘 돌아다니고 있는지, 나는 다만 이곳에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저쪽 세상에
귀를 기울이다가 어쩔 수 없이 고양이와의 모든 기억을 곱게 빻아 담은 조그만 호두나무 상자를 안방에 있는 유리 책장 안에 책들과 나란히 넣어두었어요. 나는 또 가끔씩 그 기억들을 꺼내 들고 고양이 이마를 비비듯 내 뺨에 가만히 비벼 보겠지요.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면 결국, 그러니까
바로 내가 그 조그만 호두나무 상자라는 걸 깨닫게 되겠지요.
날이 갈수록 반질반질 닳아서 마침내 흔적 없어질 기억 상자라는 걸.
--- 「조그만 호두나무 상자」

개인과 개인 사이 침엽수림이 견고해 갈수록 교류와 연대가 힘겨워지는 시대이지만, 상처를 기꺼이 감내하면서까지 무관심과 개인주의의 숲으로 들어가 새소리 물소리를 내고 오솔길을 열어 간극을 좁힐 때 세상이 보다 아름다워진다고, 이나명은 믿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끊임없이 타자에게로 나아간다. …(중략)… 그리고 그때, 이나명의 시는 자연에게로, 타자에게로 나아가려는 관성과 지향성을 통해 끝내 독자의 심장에까지 가 닿으며 우리들 “안에 둥글게 들어와 안기는 소리”(「그러니까 뛰어 봤자」)가 된다. 나는 이 “단단한 평안”(「너를 본다는 건」)을 “따뜻이 녹여 가며 천천히 천천히 아껴 먹고 싶을 뿐”(「늦게 와도 괜찮아,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이다.
--- 「해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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