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0년대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이다. 공부를 특별히 잘해서 일류대학을 졸업한 것은 아니다. 외모가 특별히 출중한 ‘미스 코리아’나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아나운서’처럼 생기지도 않았다. 돈이 많은 부자도 아니다. 게다가 이십대 초반의 풋풋한 청년도 아니고, 삼십대의 난 결혼도 하지 않아서 아이가 있지도 않다. 이런 나는 괜찮은 사람일까?
‘괜찮다’는 말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좋다’, ‘마음에 든다.’, ‘그 정도면 훌륭하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국어사전의 의미로는 ‘별로 나쁘지 않고 보통 이상이다.’, ‘탈이나 문제, 걱정이 되거나 꺼릴 것이 없다.’이다. 한자로는 ‘근사(近似)하다’, ‘그럴싸하게 좋다’의 뜻을 가졌고, 영어로는 ‘nice’, ‘good’의 의미라고 한다.
‘괜찮다’의 어원은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 1989년 중판 발행된 ‘서정범’의 『어원별곡』(p.200)에 나온 해석을 보니 ‘괜히’는 ‘공연히’가 준 말이고 ‘공연하다’는 ‘쓸데없이’라는 뜻이므로 ‘공연하지 않다’ 즉 ‘쓸데없지 않다’, ‘그만하면 됐다’는 뜻이 된다고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똑같은 사람이 없으므로 모두가 세상에서 단 한 명뿐이다. 그래서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다르고, 특별하기에 각각의 다른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기에 더불어 살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니 쓸데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괜찮은 사람’은 그 어원을 떠올려 보면 ‘쓸데없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이니 결국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괜찮은 사람들이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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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생활에서 내가 꿈꾸던 캠퍼스 생활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았듯이 이제는 현실에서 최대한 즐겁게 생활하는 것을 실천하고 있다. 지금 현재를 즐기는 것이 최고다. 지금 내가 있는 공간에서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한다. 하고 싶었던 것들을 미루어두지 않고 도전한다. 나중이라는 것은 없을 수도 있다.
교회에서 청년들 모임이 있어서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만나서 친해지려던 동생이 있었다. 함께 이야기도 하고, 게임도 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었고, 그냥 집에 가기 아쉽다며 같이 파스타 가게에 가서 식사를 함께하고 다음 약속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2주쯤 뒤에 그녀가 혈액암이라는 소식을 들었고, 위중해서 입원을 했지만 위기를 잘 넘겼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 모임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몰랐고, 우리도 느끼지 못했었기에 충격이었다. 그 후 며칠 사이에 그녀는 무균실에서 가족들과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하늘나라에 가고 말았다.
사람 일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녀를 다음에 또 만나기로 했었지만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다음은 없을 수도 있으니 지금의 것에 집중하자.
--- p.114~115
죽음까지 생각해본 후에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진짜 좋아하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하고 있을 때 웃으면서 즐거워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돈을 얼마나 벌고 그런 것도 중요한 것이지만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규칙적으로 수입이 들어오지 않아도, 사람들이 왜 저러고 사냐고 한심하게 볼 때가 있더라도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겁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내 책을 읽고, 내 곡을 듣고 한 사람이라도 기뻐하고, 그들에게 유익함이 되고,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사는 이유로 충분하다. 어느새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나온다. 얼굴도 모르는 독자들과 글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표현이 다 안 된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어느새 나의 모든 것이 정리가 되고, 이 모습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더 이상 내 인생에 내가 빠져 있는 선택을 하지 않기로 했더니 두려운 것이 하나씩 없어졌다. 이제는 사람들의 시선에 집착하지 않고, 나를 조금씩 믿어보기로 했다. 행복의 기준은 오직 나다.
--- p.206~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