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의 양심’과 ‘성인지 감수성’은 객관적 증거가 없어서 악용될 소지가 있다
한국 사회에 거짓말이 판치는 것은 객관적 증거도 없이 주관적인 감정을 가지고 사물을 판단하고 사람을 매도하는 법과 관행 때문이다. 이런 풍토는 법원 판사나 정치가뿐 아니라 민초들의 경우도 마찬가지, 사회 전반에 퍼져서 공감대를 이루기 때문에 먹혀드는 것이다. ‘법관의 양심’, ‘성인지 감수성’ 같은 개념이 그 예가 된다.
헌법 제103조의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규정이 법관이 근거도 없이 자의적으로 재판할 수 있다는 뜻으로 악용되고 있다. “헌법과 법률”은 사라지고 편의적으로 “양심”만 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독일 기본법 제20조 제3항에는 오직 “법관은 법(헌법)과 법률에 구속된다”고 되어 있다. 독일에서는 미리 ‘양심’이란 개념이 법관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간파하여 아예 이런 문구를 넣지 않았다고 한다.
--- p.125
2018년 충남 전(前) 도지사가 ‘미투(나도 성폭력 피해자다)’ 폭로에 시달릴 때,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박원순은 성폭력 예방교육을 강조하면서 “성희롱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때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단다. 여기서 박원순이 놓친 것이 두어가지 있고, 그가 놓친 그것이 오늘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실마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는 자연성으로서, 인간의 본능은 결코 교육을 통해서 순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겉으로 위선은 할 수 있으나 본능은 만고에 변하지 않는다. 교육이 아니라 그 무엇을 통해서도 자연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사회 법제적인 것으로서, 성희롱은 결코 피해자의 관점에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특히 ‘성인지 감수성’이란 것은 객관적 증거가 없는 주관적 감정이므로, 자칫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 p.115~116
법치에 우선하는 민초의 주권: 민초는 정부 권력에 대해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
민주(民主)는 법치 위에 존재하는 상위개념이다. ‘민주(民主)’사회에서는 아무것도 민중의 중의를 능가하는 것은 없어야 한다. 1793년 프랑스 헌법은 “국민은 언제든지 법률과 헌법을 검토하고 개정하고 변경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했다. 여기서 ‘법을 변경할 권리’라 함은 성문법을 무시할 수 있는 권한까지 포함한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법을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민초는 성문법 개정에 우선하여 행동으로 변경할 권리를 갖는다는 뜻이다.
직접민주정치나 대의정치 중 어느 쪽이 더 정의롭고 공정한지,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것인지 하는 것도 말할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누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에게 득이 되는 정책을 구사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직접민주정치에는 크게 정책제안형과 권력통제형의 두 가지가 있다. 이 중 적어도 주권자로서 민중은 적어도 위정자의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하고, 그 절차를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권력통제형 직접민주정치는 간접민주정치 혹은 대의제와 서로 공존한다.
--- p.18
어떤 나라도 개인의 생계는 물론 폭력으로부터의 보호를 정부 기관에서 완벽하게 보장하지 않는다. 경찰, 검찰, 법관 등 관료조직이 발생하는 모든 범죄를 다 처리할 만큼 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의 안전을 정부만 믿고 맡겨놓을 수가 없게 된다. 일차적으로 각 개인이 스스로의 보호를 책임지는 것이고, 정부의 역할은 부차적, 보완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자기 보호 개념에는 정부 권력 자체에 의한 인권 침해에 항거하는 저항권의 개념도 물론 포함된다. 이 때문에 나라에 따라 개인의 총기 소지를 허용하고 있고, 사립탐정제도도 같은 맥락에 있다. 시민의 총기 소지는 악의의 다른 개인뿐 아니라 부족한 정부 인력에 대한 협조와 보완인 동시에 부당한 정부 권력에 대한 저항의 방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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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절차는 재판이 아니므로 재판소원금지의 대상이 아니다
재정절차는 재판이 아니라는 사실을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자체의 다음과 같은 진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재정법원의 심리는 수사에 준하는 성격을 일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불기소 판단을 내린 사건에 대한 재심리 절차인 점을 고려할 때 비밀을 보장하고 피의자를 더욱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히 양측에 공정해야 하는 재판이 아니라는 뜻이다 (2008헌마578, 2011. 11. 24. 전원재판부). 둘째, 재정신청에 대한 재판은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하여 국가형벌권을 확정하는 일반 형사재판과 달리 검사의 불기소처분이 위법·부당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특수한 절차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재정신청절차가 재정신청 기각결정에 대한 재정신청인의 불복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성질의 재판절차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08헌마578. 2011. 11. 24. 전원재판부) 반면, ‘재판’의 의미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법 결정례 자체에서 다르게 규정하고 있다. 즉, [96헌마172. 1997. 12. 24. 전원재판부] 결정문에서는 ‘재판청구권’이란 분명히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기본권’임을 밝히고 있다. ‘소송이 제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기본권을 보장받은 것’이 아닌 것이 된다.
--- p.170~172
재정신청 절차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례의 자가당착의 모순
헌법재판소의 결정례는 재정신청과 헌법소원의 관계에 대해 절차상의 충돌·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법의 구제를 받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봉쇄를 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 한편으로 “불기소처분에 대하여 재정신청 및 즉시항고절차를 경유하지 아니하고 제기한 헌법소원은 부적법하다”고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절차를 거친 후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경우에도 재판소원금지가 적용되어 부적법한 청구가 된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법 논리의 모순과 공백은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결정의 타당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파생적으로 사법권력의 횡포를 조장하는 사각지대를 조성함으로써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위헌이다. [헌법재판실무제요](헌법재판소 발행), p.316.
--- p.157~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