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한 소식을 가지고 왔다. 최악의 위험한 순간이 다가왔다.”
다그다가 선언하듯 말했다. 다그다의 말이 바람에 흔들렸다.
“위험이라고요? 누구에게요?”
내가 물었다.
짙은 먹구름이 다그다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며, 은빛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너한테, 멀린,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네 고향이었던 이 세계, 핀카이라라 불리는 바로 이곳에 위험한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어깨 너머, 리아와 할리아가 잠들어 있는 저 아래 어둠을 흘끗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떻게요, 위대한 정령이여? 이 위험이 언제 닥칠까요?”
“이미 닥쳤다. 엄청난 싸움, 엄청난 슬픔이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나는 두렵다.”
다그다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 p.63
“그자는 저 아이의 손을 자르려 했다네, 정말이야. 엘리리아나의 손 을 말이야!”
노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저 아이를 구하려 했지만, 아, 저 아이는 너무나 끔찍하게 피를 흘리다 죽어갔어.”
“정말 끔찍해요! 도대체 누가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지요? 저렇게 어린아이한테…….”
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짓이겠지.”
내가 지팡이를 땅에 쿵 찔러 넣으며 리아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그 전사가 누군가요? 왜 고아를 공격했지요? 다음에 어디로 갈지 말 했나요?”
나는 노인 곁으로 다가갔다.
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주름진 얼굴에 빛이 반짝였다.
“크르 달로치(Caer Darloch)에 대해 뭔가 말했어. 여기서 북쪽에 있는 마을. 거기서 왔는지 그리로 가는지, 나는 모른다네.”
“또 다른 말은 안 했어요?”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여자애의 죽음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어. 아, 시작!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이 곧 팔다리를, 목숨을 잃을 거라고 했지. 만약…….”
“만약 뭐요?”
“만약 멀린이라는 자가 혼자서 자신과 싸우러 오지 않는다면…….”
--- pp.156~157
저 위, 휙휙 스쳐 지나가는 구름이 검붉게 비추었다. 허둥지둥 날아가는 외로운 참새 한 마리의 날개도 검붉게 빛났다. 이글이글 불타는 태양이 하늘 아래 걸려, 드넓게 펼쳐진 평원 뒤로 사라지려 했다.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어, 애송이 마법사. 그러고 나면 네 환영의 진실을 알게 되겠지.’
우르날다의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 어느 때보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하지만 이제 내게는 계획이 있다. 쌍칼잡이 전사를 무찌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자를 다시 찾으려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그 러니 나는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도살자와 싸우는 대신, 놈이 더 이상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내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거다.
어깨 너머로 내 친구들의 푸릇푸릇한 정원, 그리고 땅바닥 위 씨앗 주머니를 흘끗 돌아보았다. 노부부가 이 씨앗들을 모두 모은 것처럼, 나도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하나씩, 하나씩 모을 거다! 그래, 나는 가능한 많은 아이들을 찾아 그 아이들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리라. 그 아이들이 고아든 아니면 가족과 떨어져 있든 상관없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핀카이라에서 가장 취약한 아이들이 도살자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섬에는 그런 아이들이 기껏해야 서른 명 정도 있을 거다. 그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만약 내가 어찌어찌하여 일주일 내에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나는 가장 긴 겨울밤이 되기 전에 리아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다.
--- pp.224~225
불현듯, 묵직한 신발이 모래를 가로질러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 생각이 맞았다. 도살자였다! 이제 도살자는 모래톱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해골 가면은 비뚤어지고, 각반은 찢기고, 팔에는 젖은 모래가 달라붙어 있었다. 도살자는 우리를 향해 부리나케 걸어와, 무시무시한 칼날로 허공을 갈랐다.
“이리로 돌아와, 이 겁쟁이야! 돌아와 싸우란 말이야!”
나는 모자 옆에 착 달라붙어, 끊임없이 거품을 일으키며 일렁이는 바다의 힘에 호소했다.
제발 우리를 데리고 가주세요. 이 해안에서 멀리 데려가주세요!
파도가 연신 몰아치며 배를 때렸다. 하지만 전보다 더 큰 힘은 아니었다. 도살자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면 아래 툭 튀어나온 도살자의 턱이 보였다. 그자가 휘두르는 칼날이 쨍그랑 울어대는 소리도 들려왔다. 순간, 불현듯, 짙은 안개가 모자 위로 다가와, 우리를 해안에서 분리시켰다. 도살자에게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저주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려왔지만, 빽빽한 안개 사이로 도살자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짙어지며, 그 소리 또한 끊임없이 이어지는 파도 소리에 파묻혀 버렸다.
바다가 우리를 받아주었다.
--- p.289
“그렇다면 저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나요?”
마치 한 마디 한 마디가 전체 세계의 무게를 싣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다그다가 천천히 말했다.
“너는, 리아나 할리아와 마찬가지로,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할리아는 이미 자신의 선택을 분명히 했어. 이곳 사후 세계에 남아 있기로 말이다. 그 어떤 것으로도 묘사할 수 없는 것들을 수없이 포함하고 있는 세상에.”
트러블은 내 어깨 위에서 열정적으로 울며 사뿐사뿐 걸었다.
“아니면, 너는 아발론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갈 수도 있다.”
다그다는 리아 쪽을 흘끗 바라보며 덧붙였다.
“네 엄마는 그곳으로 가기로 결심했다는 걸 말해줘야겠구나. 너희가 돌아오기 직전에 너희 엄마랑 이야기를 나누었거든. 네 친구 류, 어린 소녀 쿠웨나, 그리고 몇몇 아이들도 함께 가기로 했지.”
“그건 제 선택이기도 해요.”
리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리아의 목에 달라붙어 있던 스컬리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기다란 귀를 펄럭거렸다. 이윽고 리아가 긴장했다.
“그런데 그건, 만약…….”
리아가 덧붙였다.
“그래, 너는 여전히 날개를 갖고 있을 거다.”
다그다가 웃으며 말했다.
다그다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향했다.
“처음 두 가지 중 무엇을 선택하든, 네 날개는 네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의 경우는 다르단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한한 지구, 브리타니아라 불리는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니까.”
--- p.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