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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에서 꽃 핀 사랑

무심천에서 꽃 핀 사랑

: 제7회 직지소설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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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7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30쪽 | 438g | 152*225*15mm
ISBN13 9791190526142
ISBN10 11905261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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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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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 목소리에 힘이 느껴졌다. 집에 있을 때 욕하고 소리 지르는 거친 목소리가 아니었다. 기쁨에 찬 소녀의 음성이었다. 수련은 범종각 계단 아래 연못에서 앙증맞은 봉오리를 몇 개 달고 개화를 기다리는 자태였다. 어머니는 생각했다. 수련 꽃봉오리가 경희 성품과 닮아있다고. 처염상정 방화즉과, 즉 진흙탕 속에 처해도 물들지 않고, 꽃피자 열매 맺는 연꽃의 꽃말은 바로 경희의 장대한 미래를 보는 것처럼 흐뭇했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딸의 영혼을 보위하는 것 같아 어머니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원혜암에 머문 기간은 경희가 본래의 ‘나’를 찾는 과정에 해당했다. 나를 찾는 과정에서 선지식, 스승, 길라잡이는 호수 바람 구름 하늘이었다. 산하대지의 무심한 풀 나무와 꽃들이었다. 가깝게는 해명 스님이었다. 그들 모두 부처였으며 경희 역시 본래 부처였다.
해명 스님은 경희가 매서운 겨울 추위를 이겨낸 봄 들판의 보리 싹처럼 회생의 징후를 보인 것에 대해서 이종 아우인 경희 어머니 박순금에게 소식을 전했다. 특별한 치료나 약 처방을 받은 것도 아니다. 마음의 안정과 평화에 기인한 치유였다. 치료의 주체는 평화스러운 마음과, 원혜암의 자연 풍물이었던가. 경희가 원혜암에 머무는 동안 치유의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났다고 유추해볼 수 있었다.

김승환 씨의 장기 부재에 이어서 경희가 결혼하자 어머니는 견딜 수 없이 마음이 허전했다.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반갑지 않았다. 어머니는 결심했다.
서울로, 서울로.
어머니는 살림집 애들과 연좌제에 몰려 학교생활이 원만하지 않은 이유로 일찍 군대 간 두 아들에게는 기별 한마디 없이, 서울 가는 첫 기차를 탔다. 나중 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계를 운영하면서 남보다 먼저 곗돈을 타간 사람, 아직 탈 날이 많이 남은 사람, 곗돈을 잘 안 내고 뭉그적거려 어머니가 대체해준 사람들을 어떻게든 처리하지 못한 것은 실수였다. 어머니의 빚이라는 게 대개 그런 것이었다. 어머니는 쌀 한 톨이라도 남에게 신세를 지는 성미가 아니었다. 신세를 져야 할 만큼 생활이 궁핍하지도 않았다.

경희는 어렴풋하게 알고 있다. 최초로 형사에게 끌려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때, 그리고 감옥에 있을 때, 낮도깨비 같은 사내들이 짐승으로 둔갑해서 으르렁 그르렁 덤벼들 때, 죽을 힘을 다해 버럭버럭 악을 쓰며 반항하던 일. 그녀의 기억력은 기껏해야 그 지점에 머물러 있었다.
이거 놔! 나쁜 자식!
경희는 그 한마디 말도 버겁게 되면서 점차 음색, 음소, 발음, 그 모두를 상실했다. 입고 간 옷은 며칠 못 가 넝마 조각이 되었다. 머리칼은 산발이 되어 몸을 움츠리고 공포에 떨던 일. 공포에 떨다가 느닷없이 구치소 안이 들먹거릴 만큼 큰 소리로 악을 썼던 일. 공포를 물리친다고 소리를 질러댄 게 오히려 조사관들의 조롱을 샀던 일! 그리고 얼마 못 가 그녀는 말도, 정신도 다 놓아버렸다.

금숙의 어린 시절, 무심천 위에는 나무 쪽다리가 걸쳐 있었다. 혹 그 쪽다리가 남석교가 되었던가. 쪽다리는 장마가 지면 번번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무심천에 당도해보면 어제까지 있던 쪽다리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거센 물살을 헤치고 학교에 갈 일이 난감했다. 어쩔 수 없이 앞서가는 선배들 뒤를 따라 발을 벗고 한 손에는 책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운동화를 들고 냇물을 건너 학교에 갔다.
냇물을 건너다가 손에 들고 가던 운동화를 놓치고 황토물에서 운동화를 찾느라고 허우적거리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의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깔깔거리고 웃었다. 깔깔거리고 웃는 것은 무슨 다른 감정이 내포된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순전한 무심의 발로였다. 금숙의 사념은 무심천을 기점으로 동서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불법의 이치를 참구한다고 면벽수도도 좋고, 산간 외진 곳에서 홀로 수행 정진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불법이라는 것은 멀고 아득한 곳에 외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눈 돌리면 도처에 나타난다. 산에 들에 난만한 봄꽃, 무심히 흘러가는 무심천의 푸른 물, 달밤에 하얗게 만발하는 배꽃의 향기, 꾀꼬리의 영롱한 울음소리, 새끼에게 나누어 줄 먹이를 물고 둥지를 부지런히 찾아드는 제비의 몸짓, 하얀 달빛과 맑은 바람 한 줄기, 그 속에도 엄연히 불법이 존재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어떻게 마음을 밝히고 어떻게 도를 깨닫는가 하는 것, 그것은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고 했다. 먼 데 가서 불법을 찾는 것을 복숭아 오얏의 단맛을 버리고 신맛 나는 매실을 따는 것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오직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 마음이 곧 부처, 즉심시불이라는 뜻으로 풀이해 볼 수 있었다. 법문은 첫 대목부터 진리의 맑은 향훈이 떠도는 것처럼 참신하고 수승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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