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으로 들어선 신니는 혼절한 듯 누워 있는 소율을 보고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어쩌자고…….”
저리 아파 쓰러진 여잘 어떻게 해주란 건지, 기절하다시피 누워 있는 와중에서도 추위에 온몸을 떠는 저 여린 몸을 어찌해야 할지. 신니는 막막하기만 했다.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소율을 쳐다보던 신니는 일단은 호기로운 자세로 뚜벅뚜벅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러고도 한참을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대체…….”
막상 다가서니 눈앞이 더욱 캄캄해져서 신니는 같은 말만 한숨처럼 되풀이했다. 들리는 것은 자신의 숨소리와 소율의 아픈 신음뿐이라고 생각될 때쯤, 마침내 자리를 잡고 앉은 그가 이불자락을 향해 조심히 손을 뻗었다. 앉은자리에서 이불까지, 한 치도 되지 않는 거리를 이동하는 그의 손은 더디기만 했다.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려왔다. 무거운 물살을 가르듯 이불자락으로 천천히 손을 뻗던 그가 결국엔 또다시 멈칫거리고 말았다.
“젠장…….”
선뜻 그녀를 만지기가 미안해서 신니는 떨리는 손을 불끈 거머쥐고 두 눈을 감아버렸다. 차마 용기가 안 났지만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자정이 임박했으니 늑장을 부릴 시간도 없었다.
“불…… 그래, 불부터 꺼야지.”
허둥대던 그가 후욱, 입 바람을 불어 등잔불부터 소등했다. 그리고 조심히 그녀 곁에 다가앉았다. 어둡던 방 안에 이내 푸른 달빛이 새어들었다. 불을 끈 것이 무색하리만치 밝게 내려앉은 달빛이 신니와 소율, 두 사람만의 공간속을 적당한 적막과 긴장감으로 고루 뒤섞어놓았다.
“으으, 으윽…….”
달빛이 가득한 창가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신니가 소율의 신음소리에 고개를 내렸다. 파리하게 내리쬐는 만월의 빛이 아파하는 그녀의 숨을 더욱 서늘하게 짓누르는 듯했다. 그새 증상이 더욱 심해진 듯, 그녀의 오한은 아까보다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어찌할까 고심하던 신니는 이불 밖으로 삐죽이 튀어나온 소율의 손을 살그머니 잡아보았다. 이내 신니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마치 산 사람의 몸이 아닌 양 차갑게 식은 피부가 손바닥에 저릿한 찬기를 몰고 왔다.
대체 그녀는 이 차가운 몸으로 어찌 살아온 것일까. 지난세월을 기억저편에 묻어버린 그에겐 아직은 낯선 그녀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아픔이 제 아픔처럼 여겨져 신니는 명치끝이 아려왔다.
문득 꿈에서 보았던 소녀와의 입맞춤이 신니의 머릿속에 연기처럼 아련하게 떠올랐다. 마치 비극적인 헤어짐을 앞둔 심경처럼 꿈속에서조차 몹시 아프고 서글펐었다. 꿈에서나마 그녀의 마음 한 자락이라도 붙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사방에 만발한 바람꽃향기를 포옹삼아, 여리디여린 소녀의 입술을 소중히 머금었었다. 그것이 기억에서 지워진 과거의 일이라면, 그녀의 입술을 당차게 훔쳤던 그때처럼 지금 이 순간 다시 한 번 용기를 내보고 싶었다.
‘오랫동안 널, 기다렸던 건가?’
마적단 아우들의 등살에 떠밀려 기방에 들어설 때마다 ‘부탁이다, 가지 마라’ 흐느끼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아서 기녀의 유혹적인 손길도 싫다며 뿌리치길 매번이었다.
는개가 죽고 난 후 시작된 악몽은 환청처럼 들리던 소녀의 목소리를 또렷한 영상으로 각인시켜버렸고, 흰 꽃이 만발한 바람뜰에서 그녀를 처음 본 그 순간 악몽이 현실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죽은 듯 누워 있는 그녀의 모습이 왜 가슴을 쓰라리게 만드는지, 누구에게도 줘본 적 없던 마음이 왜 처음 만난 그녀에게 선뜻 열려버린 것인지, 아직은 머릿속이 복잡하고 혼란스럽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지금 이 순간, 그녀가 원치 않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사실은…… 내가 널 원했던 것 같다.”
둥둥, 뛰는 가슴을 긴 호흡으로 진정시킨 신니가 소율이 덮고 있던 이불을 옆으로 걷어내었다. 망설임도 잠시, 손을 앞섶으로 옮겨간 그가 꽁꽁 묶인 옷고름을 조심히 끌러 내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차마 옷깃을 걷어내지 못한 신니가 또다시 하던 행동을 멈칫거렸다.
오늘따라 동작은 왜 이리도 굼뜬지, 천하의 마적단 진월이 여자 앞에서 이리도 긴장하였다고 하면 모두가 배를 잡고 웃어넘길 만큼 그의 행동은 미련스럽기 짝이 없었다. 눈을 딱 감고서, 마침내 옷깃을 옆으로 들춰낸 그가 오만상을 쓰며 별찌에게 건네받은 춘화집을 바닥에 펼쳤다
“근데 말이지, 혹시라도 나란 놈이 싫어서 죽고 싶은 맘이 든다면 곤란해. 나는 네가, 네가 아닌 다른 여자였다면 이렇게 고민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투박하게 말했지만 그의 눈에는 곤두선 긴장감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인을 다루는 데에는 무지하니 별찌가 준 춘화집이라도 참고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첫 장을 실행하기도 전에 신니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춘화집을 덮어버리고 말았다.
“젠장…….”
짧은 잇소리를 내뱉은 그가 다시금 책의 첫 장을 펼쳐들었다. 가랑이를 벌리고 앉은 여인의 생생한 나신이 신니의 안구를 따갑게 긁어댔다. 주요성감대와 명칭이 적힌 맨 앞장에는 뒷부분부턴 볼 수 없는 글씨가 짤막하게 쓰여 있었다. 달빛에 비추어 자세히 읽어보니 교합에 필요한 간단한 요령들이었다. 책에서 지시하는 첫 번째 사항은 단연 ‘탈의’였다.
“돌겠군. 무공수련보다 더 힘들어.”
툴툴대던 그가 책을 봐가며 걸치고 있던 옷을 차곡차곡 벗기 시작했다. 이내 치부를 가린 속고의까지 모두 벗은 그가 알몸 차림으로 소율의 곁에 다가앉았다. 걸치고 있던 옷을 모두 벗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그녀의 옷이었다.
소율이 입은 옷은 색감과 자수가 화려하지만 입고 벗기엔 단출한 무사복이었다. 자신도 매일같이 입고지내는 옷이건만, 남의 옷가지를 벗기는 신니의 손길은 서투르기만 할 뿐 아니라 욕정에 찌든 조급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신중이 지나쳤다. 차곡차곡 옷감을 걷어내던 그가 마침내 여성을 감싼 속곳에 떨리는 손길을 뻗었다. 굼벵이처럼 느린 속도로 움직이던 손가락이 건들면 찢어질 듯한 얇은 속곳에 닿자, 신니는 가슴이 철렁한 표정으로 덜컥거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 다 벗기는 게, 맞긴 한 건가?”
아무리 무지하다한들 남녀모두 옷을 벗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면서도 신니는 괜스레 그녀에게서 눈을 돌릴 핑계를 찾았다. 그리곤 학업을 행하는 도령처럼 책에다 시선을 박은 채 조심히 소율의 속곳을 벗겨내었다.
모든 것이 끝난 듯해 보였지만 이제 겨우 작은 산 하나를 넘었을 뿐, 아직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었다. 착실히 실행에 옮기기 위해 신니가 그녀의 벗은 몸에 시선을 돌린 순간, 시선을 사로잡는 눈부심에 그는 한동안 넋을 잃고 말았다.
다른 성(姓)이 만들어낸 신체의 조화는 극치의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고운 달빛을 받아 푸르게 작렬하는 여체가, 만지면 부서질 듯 섬세한 곡선으로 이어진 얼음 같은 피부가 그의 이성에게 어서 오라며 유혹의 손짓을 보내는 듯했다. 신니의 손이 반사적으로 그녀의 어깨에 닿았다.
“흐으으윽…….”
소율의 신음이 터졌다. 그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증세가 더욱 악화되었는지 소율의 몸에선 낯선 접촉에 대한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그저 손만 닿았을 뿐임에도 차갑던 그녀의 몸이 신니의 체온을 빠르게 앗아가고 있었다.
“지체하면 안 되겠어.”
마음이 급해졌다. 다음은 어찌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신니가 다시금 책에다 시선을 쏟았다.
“누, 누워…….”
포개어 누우라는 글귀를 따라 읽던 신니가 면구함을 무릅쓰고 소율의 다리를 양옆으로 벌렸다. 여성과 근접한 그의 남성에 서서히 피가 몰려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책에서는 분명 서로의 살을 어느 정도 문질러야 발기가 된다고 하였는데 그의 아랫것은 벌써부터 뜨거운 욕정에 물들어 자석에 이끌린 듯 발딱 일어서 있었다. 당장 찔러댈 무엇부터 갈구하는 동물적인 감각이 아우성쳐댔지만 신니는 침착하기로 했다. 우선은 자신이 가진 열기로 차갑게 굳은 그녀의 몸을 천천히 녹여주어야만 했다.
무공수련을 할 때조차 비급을 뚫어져라 읽은 적이 없었건만, 슬쩍 눈길을 주기도 망측한 춘화집을 읽는 신니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하기만 했다. 책의 다음 장에는 남성과 여성의 나신이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이렇다 할 설명을 보태어주는 글씨는 없었지만 적나라한 그림체만으로도 무엇을 행하라고 지시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벌려진 다리 사이에 허리를 파묻은 신니가 탐스러운 가슴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채 애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신니는 눈썹을 찡그리고 말았다. 살며시 낮춰진 남성이 그녀의 은밀한 수풀 사이에 슬쩍 스치자 더욱 힘껏 솟구친 그것에서 짐승의 포효와도 같은 전율이 찌르르 일었다.
‘으윽…….’
가슴을 움켜쥔 손에 힘이 실렸다. 차갑게 굳어 있던 그녀의 피부가 갈증을 해소하려는 듯 그의 열기를 앗아갔다. 피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듯한 그 느낌이 몹시도 생소했지만 남의 젖가슴을 만지는 것 자체가 그에겐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방을 문지르는 신니의 입에서 색스런 신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돌출된 유두가 손바닥에 분포된 세세한 신경들을 한곳에다 끌어다 모았다.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의 곡선을 따라 손길을 부드럽게 옮겨가니, 어서 빨리 그녀의 은밀함을 찾아 살갗을 파헤치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가 마구잡이로 들끓기 시작했다.
신니는 망설임 없이 손바닥을 간질이던 유두를 찾아 입안 가득히 머금었다. 혀끝에 감기는 서늘한 감촉을 앞니 사이로 세차게 빨아 당기던 그가 나머지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어느새 여성의 근처까지 도달한 그것은 동굴 앞에 놓아만 두면 당장이라도 길을 뚫고 들어설 듯이 본능적인 탄력을 받아 들썩거리고 있었다.
“으, 으으음…….”
그의 체온으로 서서히 기운을 차린 소율이 목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가는 신음을 흘렸다. 마찰의 효과가 확인되자 소율의 몸을 녹이는 신니의 행동이 빨라졌다. 책장을 넘기던 그가 교합의 순서를 빠르게 눈으로 훑고는 그대로 소율의 가슴 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리고 그녀의 피부를 쓰다듬으며 배와 배꼽을 지나 은밀한 수풀까지 지분지분 입술을 찍어 내려갔다.
“으으윽…….”
소율의 입술에서 더욱 진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마비되어 있던 신경이 서서히 되살아난 듯, 가까스로 손을 움직인 소율이 은밀한 그곳을 점령하려던 신니의 입술을 저지했다.
“뭐……하는…… 짓이…….”
더듬더듬 입술을 벌린 소율이 다리 사이에 파묻힌 그림자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나도 이러긴 싫다고. 그래도 책에 이리 나와 있으니 어쩔 수 없어.”
제 행동에 대해 짤막하게 중얼거린 신니가 수풀을 가로막은 소율의 손을 옆으로 걷어치우고 은밀한 여성에 입술을 파묻었다.
“하, 하지 마라……. 가, 감히, 흐읍!”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