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후는 문득 물끄러미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수아의 눈에 입 맞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수아의 눈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맑았고 깨끗했다. 정후는 수아를 볼 때마다 신기했다. 어떻게 2년 동안 한 번도 이 아일 보지 못했는지, 대체 어디 어느 자리에 박혀 얼마나 꼼짝 않았기에 이제야 눈에 띄었는지 신기하고 신기했다. 정후는 수아의 눈처럼 맑고 깨끗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어쩌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이 고집스런 아이에게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받어.” 정후는 벌써 두 번째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 두 번째는 부탁을 비슷하게 들렸다. 수아는 정후가 내민 빨간색 사탕 상자로 시선을 옮겼다. “난 초콜릿 준 적 없는데.” “알아. 하지만 상관없어. 그땐 널 몰랐으니까. 난 초콜릿 안 줬다고 야단치지 않을 테니까 받어. 받으라는 말 벌써 세 번째야.” 수아는 그제야 상자를 받아들었다. “고맙다는 말 듣고 싶니?” “아니, 할 것 같지도 않은데 뭐.” “고마워.” 수아가 말했고 정후는 씩 웃었다. 수아가 사탕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예쁘네.” 수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수아는 사탕 하나를 집어 들고 뚜껑을 닫은 후 껍질을 벗겨서 입에 집어넣었다. “왜 하필이면 학교 옥상에서 주니? 애들한테 보이면 자존심 상한다, 그거니?” “여자한테 이런 거 줘본 적이 없어서.” “받기만 했니?” “그랬지.” “인기가 많았다는 뜻이지?” “자꾸 묻지 마. 너 사람 곤란한 쪽으로 몰고 가는 게 취민 거 같아.” “설마 그걸 취미로 삼겠니? 어머, 이거 무슨 사탕이 이렇게 시니? 뭐 이런 사탕이 다 있어? 무슨 식초 같아.” 수아가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치고는 정후를 노려봤다. “너 나 물 먹이려고 일부러 이런 사탕 준거 아니니?” 수아가 쏘아붙였다. “말도 안 돼!” 정후가 기분이 상해서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기껏 사방을 돌아다니며 거금 들여 사줬더니 뭐 이런 계집애가 다 있나 싶었다. “너 소리 지르기 너무 좋아해. 너 정말 시끄러. 진짜 너무 시단 말이야. 네가 먹어 봐. 너 악 소리 낼걸?” “줘 봐. 네 말대로 시면 사탕 몽땅 불 싸지르고 다시 사줄 테니까.” 정후가 신경질이 치밀어 소리쳤다. 수아가 심통 난 얼굴로 사탕 상자 뚜껑을 열려는데 정후가 상자를 휙 낚아챘다. “입에 있는 거 줘봐.” 정후의 말에 수아가 정후를 노려봤다. 그리고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농담 아니지?” “아니야.” 정후는 수아가 이번에는 분명 당황할 거라고 내심 쾌재를 부르며 대꾸했다. “너 나랑 키스하고 싶니?” 하지만 수아는 당황하기는커녕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정후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정후는 정작 자신이 당황함에 묶여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시끄러워, 사탕이나 줘봐!” 정후는 무턱대고 큰소리만 쳤다. 수아가 정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정후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얼굴을 정후의 코앞에 바짝 들이밀었다. “너 겁나지?” “사탕이나 줘.” 정후는 떨리기 시작한 목소리로 겨우 소리쳤다. 수아가 빙긋 웃는다 싶더니 정후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정후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멈췄다가 갑자기 미친 낙타처럼 헐레벌떡 뜀박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정후는 자신도 모르게 수아의 허리께로 손을 뻗치는데 수아의 입안에 있던 새콤달짝지근한 사탕이 자신의 입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알았고 수아의 촉촉한 그것이 입술에 닿는다고 느끼는 순간 수아의 입술이 떨어졌다. 그리고 수아는 정후에게서 사탕 상자를 도로 빼앗아갔다. “넌 줬다 뺏을 게 뭐니? 치사해.” 수아가 돌아섰다. “나 먼저 갈게, 사탕 시다고 소리질러대는 거 보기 싫으니까.” 수아가 옥상 문을 향해 걸어가는데 정후가 달려가 수아를 붙잡았다. 그리고 수아를 돌려세워 수아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전혀 계획이 없었는데 정후는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수아의 입술을 향해 자신의 입술을 밀어붙였고 수아가 웅얼거리며 뭐라고 항의하려는데, 그리고 정후에게 발길질을 해대는데 두 눈 딱 감고 수아의 입 속으로 혓바닥을 밀어 넣어 버렸다. 수아의 발길질이 멈추고 눈썹이 떨리도록 눈을 감고 있던 정후가 눈을 살짝 떠보자 수아의 눈이 금방 튀어나올 듯이, 동그란 팥빵만큼 커져서 정후를 쳐다보고 있었다. 수아를 놀라게 했다는, 드디어 당황하게 만들었다는 승리감에 도취될 겨를은 없었다. 정후는 생애 첫 키스를 감행했고 그것도 프렌치 키스를 감행했다는 당혹감과 설렘에 수아가 놀라고 당황하고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정작 아직도 수아의 입 속에 자신의 혀를 밀어 넣은 채 꼼짝 않고 있는 정후 자신의 심장이 멎어 버릴 것 같은 공포에 휩싸여 있었으니까. 정후는 다시 눈을 질끈 감았고 그리고 감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도 모를 키스를 계속하고 있었다. 수아의 얼굴을 감싸 쥐고 있는 손은 부들부들 떨려서 수아의 얼굴을 놓칠 것만 같았고 수아의 입 속을 헤집고 있는 혀는 악 소리를 지르며 온몸에 전기를 관통시키고 있었다. 이제야 뭔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키스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이놈의 키스가 사람을 잡아 놓을 만큼 황홀하다는 것을. 수아는 얼마나 보드랍고 연약한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딩동댕동……. 정후가 화들짝 놀라며 수아를 놔주었다. 젠장, 수업 종이 지금 꼭 울려야 했는지. 정후가 상기된 수아의 얼굴을 쳐다보며 로봇처럼 정지된 채 굳어 있는데 수아가 꼴깍 침을 삼켰다. “이 사탕 시다고 안 먹는댔잖아.” 수아가 눈을 깜빡거리며 불만스럽게 말한 후 옥상에서 뛰어나갔다. 키스하다가, 키스하는 바람에 아니 키스하는 중에 수아에게서 받아먹었던 사탕이 도로 수아 입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고약한 계집애.” 정후는 아직도 당황함과 설렘과 달콤함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괜히 수아를 욕했다. “나쁜 계집애.” 정후는 욕지거리를 내뱉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예쁜 짓만 골라 하네.” 정후는 풍선 바람 빠지듯 피식피식 웃으며 교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수아, 우리 수아,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운 계집애라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