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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무가 중얼거렸다

꽃나무가 중얼거렸다

푸른사상 시선-128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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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7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22쪽 | 188g | 128*205*10mm
ISBN13 9791130816883
ISBN10 113081688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꽃을 보았어 똥 누고 싶은 것 노랗게 참고 있는, 곧추선 대궁이 초록 목책 울타리처럼 싱싱했어, 반짝이는 십자 창문을 닮았어 꽃잎, 감정 없이 떨어졌어 관자놀이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처럼 부드러웠고

옷에 노란 똥이 묻었어 소문처럼 왁자했어 쑤알라 쑤알라 지구의 공전 소리를 엿들었고 몇 번 하늘을 바라보았을 뿐인데 고만고만한 똥 무더기 무성했어

노란 꽃, 똥 누고 싶은 것 참고 있는 거래, 믿어지지 않지만 귓속말은 이 귀에서 저 귀로 윙윙거렸어

마을을 돌아다녔어, 똥 묻은 옷을 입고 간이 화장실 한 칸 덜렁 들어다 애기똥풀 군락지에 놓아주고 싶었어

구름 속에는 여름이 가득했어
--- 「애기똥풀」


뇌경색을 털고 일어난 동생이 문맹이 되었다

지구의 모든 도서관과
서점들과 서재들이 불탄 듯
몸에서 문자들만 쏙, 빠져나갔다

밀물이 들면서 지워지는 개펄처럼
민들레 텅 빈 씨방처럼

살아온 날들의 앞장과 뒷장이 공백이 되었다
필기구들과도 낯선 관계가 되었다

어쩌면, 동생에게
문명의 먼 과거가 잠시 깃들었을 것이다
조수 간만으로 탁류의 해면이
잠시 상승했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과 주소
날아간 문자들을 되찾으려는 듯
백지의 유년을 샅샅이 뒤진다
--- 「문맹」


밖으로 나오니 사월
살구꽃, 재잘재잘 말놀이 중이시다
성큼성큼 묘비로 주소를 전입한 아버지

나는 책망의 눈길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손목시계가 헐렁한,
아버지는 제라늄 줄기 같은 팔을 뻗어 어딘가를 가자고 가자고 나를 끌었다 마디가 검고 손톱 속 반달이 눈썹처럼 까맸다

가요, 집에 가요
어릴 적 술 취한 아버지를 잡아끌었던 것같이
어디일까 아버지가 가자는 그곳

꽃놀이는 아닐 것이어서
싫어, 싫다니까 눈이 축축해지도록 버텼다
끌고 당기고 버티다 아침까지 온 날
팔이 뻐근하고 목이 돌아가질 않았다

불을 켜봐,
꽃나무들이 꿈 밖으로 나갈 거야

그런 날,
온종일 내 몸에서 결리는 아버지, 끌어도 끌어도 버티던 술 취한 아버지가 이곳저곳에서 욱신거린다
--- 「꽃나무가 중얼거렸다」

아마 동양 시문학사에서 전통적으로 자연 대상을 읊은 시들, 그 가운데 화조풍월을 제재로 한 시들이 가장 많을 것이다. 꽃과 새와 바람과 달. 이것은 자연을 대신하는 말이다. 농경 중심 사회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서정적 충동을 일으키는 데는 화조풍월이 최고였을 것이다. 예부터 시를 공부하면 초목(草木)을 많이 알게 한다고 하였다. 아마 선배 시인들이 우리 살림살이와 가까운 자연이나 자연 현상에서 시의 제재를 가져다가 시를 많이 썼기 때문일 것이다.
꽃과 식물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서 꽃과 식물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풍부한 신준수는 모든 시의 재료를 채취한 뒤 가능한 꽃과 식물로 변용한다. 그러니까 꽃과 식물은 신준수의 식물성에 가까운 세계관을 대변하는 객관적 상관물인 것이다. 또 그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고전 제재, 웃음을 주는 서사와 구성, 발랄하고 청신한 어법의 배경에도 꽃과 식물이 있다. 모든 사물과 사건을 꽃과 식물로 치환해서 보여주려는 노력과 진술 방식은 신준수만의 특기이자 개성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그의 시를 읽으면 꽃길을 걸으며 꽃의 복음을 듣고 보는 것 같다. 신준수의 시를 꽃과 식물에 대한 묘사, 꽃을 매개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거나 인물을 환기하는 상상력, 옛것을 좋아해서 얻는 고전적 제재, 재미와 웃음을 주는 서사와 구성 등으로 유형화하여 살펴보았다. 자신의 세계관을 객관적 상관물인 꽃을 통해 내보이는, 표현하는, 발성하는 시인의 태도와 순정한 식물성의 마음이 담긴 “꽃 피고 지는 씨가 맺힌/한 권의 나무 같”「(씨, 혹은 시」)은, 꽃다발 같은, 꽃밭 같은 이 시집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잠시나마 서정의 광휘에 휩싸였으면 한다.
--- 「공광규(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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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순원 (시인·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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