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었어요?”
장련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부탁했기에 부르긴 했지만, 막상 광휘가 그들과 대결한다고 생각하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든 것이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그들의 무위가 그녀의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세 명의 호위무사는 목화솜을 가지고 거의 신기에 가까운 검술을 보이지 않았던가.
반면, 대전 때 보인 그들의 실책 역시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상대의 무위가 뛰어난 탓도 있긴 했으나, 어쨌든 패배하지 않았던가.
물론 광휘의 입을 통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두 명 정도는 이겨야 해요.”
“…….”
“그러지 않으면 비웃음거리가 될 거예요.”
다시금 건네는 장련의 말에 광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곧장 연무대 위로 걸음을 옮겼다.
투웅!
광휘가 느릿한 걸음으로 연무대로 올라가는 순간, 단상 위에 있던 한 사내가 크게 도약하더니 단번에 연무대를 밟고 섰다.
상황을 미루어 보건대, 그가 먼저 나서기로 약속한 모양이었다.
“능자진이오. 언젠가 한번 붙어보고 싶었는데 이리 기회가 있어 먼저 나서게 되었소. 대협께서 과연 불명귀를 알아본 식견만큼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오.”
그는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조금 전, 세 명이 차례대로 그를 상대할 거라 한 장로들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카앙.
능자진은 세차게 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사선으로 검을 내밀며 기수식을 취하고선 광휘를 바라보았다.
‘뭐지?’
한데 그는 처음 올라왔던 자세 그대로였다.
뻣뻣한 자세로 능자진을 보며 서 있었던 것이다.
“뭐요? 당황하신 게요? 아니면 갑자기 겁이라도 집어먹으신 게요?”
광휘의 태도에 능자진은 미간을 찡그렸다.
겨뤄보자고 해놓고 이게 무슨 작태인가?
설마하니, 칼을 꺼내자마자 얼어붙은 것인가?
그 순간, 광휘가 말을 꺼냈다.
“미리 말을 전하지 못했소. 난 이런 대결을 원한 게 아니오.”
“무슨 말이오?”
능자진이 반문하자 광휘가 시선을 돌렸다. 그가 향한 곳은 장로들이 자리 잡은 단상이었다.
“이 대결,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소.”
--- 「장씨세가 호위무사 제1막 1권」 중에서
광휘는 진중한 얼굴로 황 노인을 불렀다.
그럼에도 황 노인은 그를 보지 않고 웅얼거리듯 말했다.
“죽을 걸세. 모두 죽을 게야. 장씨세가 사람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죽을 걸세. 그들의 검에 잔인하게, 지옥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며 죽어나갈 게야.”
“진정하시오, 황 노인.”
광휘가 존칭을 낮추며 그를 거듭 불렀다.
하나, 황 노인은 눈길도 주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 누가 오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게야. 묵객이라도… 천하의 묵객이라도 상대할 수 없을 거네. 전부 시체가 될 테고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죽음을 맞이할 걸세.”
“진정하라고 하지 않소!”
“광휘… 애들이 있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과 힘없는 여인들이 대부분이야. 힘깨나 쓰는 장정들이 머물러 있다고 하지만 그들에겐 상대도 안 될 걸세. 장칠(張七)이도 죽을 거고, 어제 보았던 장욱(張煜)이도 죽을 걸세. 오늘 아침 술을 건네던 장무(張貿)도 끔찍한 몰골로 죽을…….”
“제발 진정하시오!”
“모두가 죽어! 모두가 객잔에서 죽는다고!”
“황충사아아암!!!!!!”
귀청이 떨어져 나갈 고함 소리와 함께 광휘가 황 노인의 멱을 잡고 뒤흔들었다.
순간 황 노인의 동공이 멈췄다.
그의 외침 때문이 아니었다.
황충삼.
장씨세가 내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어릴 적 이름.
가주 장원태도 모르는 이름.
세상에서 단 한 명만 알고 있는 이름, 그 아명을 광휘가 부른 것이다.
“내가 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겠는가! 자네 숙부만 알고 있는 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겠는가!”
황 노인은 목청껏 외치는 광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는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다.
“그럼 다시 묻겠네! 이 이름을 아는 내가 무슨 일을 했겠는가! 맹에서 내가 어느 위치에 있었겠는가! 말하게! 어서 말하게!”
“높은… 높은 위치에…….”
“그렇네. 높은 위치에 있었네. 누구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어!”
경기를 일으킬 것 같던 황 노인의 떨림이 점차 잦아들었다.
광휘의 외침과 그가 말하는 의미를 이해하자 긴장이 조금씩 가라앉은 것이다.
“요인 암살, 잠입, 색출, 첩보 등의 임무가 있었네. 당연히 서릿발처럼 단 한순간의 실수로 목이 날아갈 임무도 수없이 있었어. 생각해 보게. 그런 임무 중 이런 흑도 인물을 제거하는 일이 없었겠는가. 흑도의 녀석들을 제거하는 임무 하나 없었겠는가!”
광휘의 연이은 외침이 황 노인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 「장씨세가 호위무사 제1막 2권」중에서
오대세가 중 하나인 중원의 명가 사천당문.
독과 암기는 중원 최고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럼 몇 가지 좀 물어보지.”
광휘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암기는 어떤 자들이 쓰는 건가?”
“예?”
“암기를 쓰는 자들의 특징 말일세.”
명호는 의아한 눈길로 광휘를 바라봤다. 그러다 곧 그가 아는 대로 입을 열었다.
“암기(暗器)는 숨겨진 병기입니다. 작고, 비밀스러우니만큼 치명적이지요. 손길이 섬세해야 하고 멀리 있는 사물을 맞혀야 하니 시각도 뛰어나야 합니다. 순간적인 공격을 요하기 때문에 순발력도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목표를 놓치지 않는 집요함도 필요합니다.”
“암기술을 익히기에 적합한지는 어떤 식으로 알 수 있는가? 그리고 재능이나 감각 같은 것은 어떻게 구별하는가?”
명호가 머리를 긁적였다.
대체 왜 이런 걸 묻는지는 모르겠지만 광휘 역시 생각하는 바가 많은 사람이다. 우선 답해주면 자신 역시 알 수 있으리라 여겼다.
“아무래도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이겠지요. 아무리 강하게 던져도 집중하지 않으면 사물을 맞힐 수 없고 결국 부질없는 짓이 돼버리니까요. 재능이나 감각은 선천적으로 재주나 혹은 비상한 능력을 타고난 자에게 있습니다. 예컨대, 기(氣)라는 것을 암기에 실어 던질 수 있는 자들이지요. 무기에 내력을 담을 수 있으면 위력이 몇 배나 강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광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뜸을 들인 후 말했다.
“남자만이 아니라 여인이 익힐 수도 있는 것인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습니다. 남자는 근력과 지구력이 좋지만, 여자는 남자에게 없는 섬세함이 있으니까요. 오히려 살상 무기 중에서 암기는 가장 여인의 몸에 맞는 무기일 것입니다. 그 때문에 저희 당문에서는 여인이 가주가 된 적도 있었지요. 단 두 번뿐이지만.”
두 번뿐이지만 그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여인이 무가의 가주가 된 것은 오대세가를 통틀어 당문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흐음.”
광휘는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궁금증이 풀렸는지 딱딱하게 굳어 있던 얼굴이 본연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걸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아직 마지막 질문이 남았네.”
광휘는 여전히 의아하게 바라보는 명호에게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자네, 누굴 가르쳐 본 적이 있는가?”
--- 「장씨세가 호위무사 제1막 3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