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를 하면 (다들) 물어봐요. “얼마나 가는 겁니까? 방역 열심히 하면 빨리 끝낼 수 있습니까?” 나를 포함한 전문가들은 말해요. “그렇지 않습니다. 방역 열심히 할수록 점점 늦게 끝납니다. 대신 가늘고 길게 갈 수 있습니다.”
--- p.30, 「팬데믹_완벽한 안전? 그런 건 없다」 중에서
심각한 팬데믹, 흑사병이나 스페인 독감이 일어났을 때에는 마지막 단계로 사람들이 무덤덤해지는 상태에 빠졌어요. 심각한 불안이 장기간 지속되면 무감각해져요. 예를 들면 학대를 심하게 당하는 아이나, 가정이나 직장에서 트라우마가 심한 사람들도 처음에는 저항하다가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가면 그냥 받아들이게 돼요. 그게 생존 전략이에요.
--- p.43, 「마음건강_‘뉴 노멀’ 시대의 적정 불안감」 중에서
대구를 보면서 드는 생각 중 하나가, 과연 나머지 16개 시도는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단지 운이 좋아서 혹은 운이 나빠서 확률적으로 발생한 일들이고, 다른데서 대구 같은 일이 일어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요. 더 나아가면, 지금 미국이나 유럽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왜 우리에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 p.67, 「대구_애증의 도시가 공동체에 던진 질문」 중에서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저는 학교가 좀 더 힘든 사람, 약한 사람, 소수자를 위한 곳으로 강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미 가정에서 교육 잘 받고 사교육 많이 받는 학생은 학교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그렇다면 이제 학교는 학교가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는 학생을 위한 학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p.87~88, 「교육_2020년 봄, 학교 문이 닫혔다」 중에서
한국 언론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발굴해서 제기하고, 정부 반대편에 서서 비판하고 정치적으로 투쟁하는 전통의 저력을 더 많이 쌓아왔어요. 그런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 전통보다는 다른 자세가 더 필요해 보이는 거죠. 정부, 지자체, 의료진은 다 코로나19 앞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언론은 직접적으로 방역도 안 하고 사람도 안 살리는데 옆에서 “못하고 있어, 왜 더 잘 못해?”라고 훈수만 두고 있다고 이용자 시각에서는 볼 수 있어요.
--- p.110~111, 「언론_믿을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하다면」 중에서
새로운 질서 안에서 우리가 평화, 연대를 이야기하고 그런 걸 만들어낼 역량이 있는 국가임을 보여주고 그 가치를 앞에 내세우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더 자랑스러울 것 같아요. ‘성장’ ‘동력’ 이런말이 언론에 너무 많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 p.134, 「외교_각자도생 세계에 품격있게 맞서기」 중에서
(코로나19 이후로도) 위험한 현장은 계속 돌아가고 있어요. 방역은 세계 최고라고 하는데 이 부분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어요.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일에 우리나라가 정말 잘할 수 있다는 게 이번에 증명되었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정말 모든 자원을 투입해서 사람이 죽는 일을 막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왜 일하다가 사람이 죽는 일을 막지는 못할까요.
--- p.146, 「노동_좋은 노동이 좋은 방역을 만든다」 중에서
정부는 민간이 열심히 자원봉사도 하고 병상도 내줬다며 ‘공공과 민간 협력모델로 성공했다’고 모른 척 지나가려 하는데요. 민간 측은 사실 어쩔 수 없이 눈치 보고 한 거예요. 시스템이 형성되어 있는 게 아니고요. 당장 2차 대유행이 오면 아수라장이 될 가능성이 있어요.
--- p.172, 「공공의료_#덕분에 응원보다 시급한 과제들」 중에서
[장애의 역사]에 이런 말이 나와요. "우리는 인디펜던트(independent, 독립적)한 존재가 아니라 인터디펜던트(interdependent, 상호의존적) 존재이고, 이러한 상호 의존이 민주주의를 만들어왔다." 지금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불완전한 인간들이 어쩔 수 없이 서로 의존하면서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 p.205, 「인권_폐 끼쳐도 괜찮은 사회를 꿈꾸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