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이상문학상 심사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문학평론가, 문학전공 대학교수, 작가, 문예지 편집자, 문학기자와 독자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의뢰한 앙케이트 추천을 종합하는 작업을 출발점으로 삼아, 조남현 편집주간 주재 하에 주관사 편집진이 수개월에 걸쳐 광범위한 각계 의견을 종합하여 예비심사를 마쳤다.
올해의 심사위원은 종전의 5명보다 2명이 늘어난 7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예심을 통과한 작품 15편 가운데 대상 후보작을 추천하는 제1차 투표에서 전원 일치로 권지예의〈뱀장어 스튜〉를 선정하게 되었다.
신인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작가의 연륜에 대한 고려도 없지 않았으나, 제8회 대상 수상자 이균영(李均永) 씨의 경우 작품집 한 권도 내지 못한 신인인데도 대상을 받았고, 은희경 씨의 경우는 등단 3년 만에 대상을 받은 선례에 비추어, 이상문학상의 작품 본위의 심사 기준을 재확인하며 권지예의 대상 수상을 확정했다.
그가 짧은 작품 활동으로 이상문학상의 대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는 것은, 연배나 등단 햇수에 관계없이 '우수한' 작품을 써 낸 작가에게 주는 이 문학상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다시 한 번 입증하게 되었다.
이상(李箱)이 회심의 미소를 지을 만한 작품
외설에 가까운 격렬한 성 묘사가 오히려 잔잔하고 슬픈 생의 심연으로 잦아 들어가는 그 감동을 우리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다. 이상이 이 소설을 보면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 같은 참신한 은유 하나하나가 사원의 모자이크처럼 정교하게 어울리면서 건축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 이어령(문학평론가)
우리 소설문학의 한 자리를 차지할 작품
〈뱀장어 스튜〉는 상징과 비유를 내재한 일화, 삽화, 사건들로 직조해 낸 빼어난 작품이다. 우리 소설문학의 떳떳하게 한 자리를 차지할 만한 격조 높은 작품이다.
--- 유재용(소설가)
신선한 충격 자아낸 역작
바퀴벌레, 닭, 흉터 들은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하기에 적어도 한 걸음은 더 내딛고 있었다. 일상의 작은 스침으로부터 삶과 죽음의 대비를 선명하게 그려 보이는 필치는 차라리 처연할 정도였다.
--- 윤후명(소설가)
세련된 기법이 돋보인 원숙한 작품
남편과 애인과 성에 대한 환멸의 기록이다. 소설의 탁월한 작품성과 강한 인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세련된 표현기법의 미는 신인답지 않은 원숙한 경지를 엿볼 수도 있게 한다.
--- 김인환(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상차리기와 성욕의 섬뜩한 은유
사랑의 숨은 파괴욕과 집착을 꿈틀거리듯 화려하게 승화시킨 뛰어난 작품이다. 욕망에 대한 치밀한 해부와 상황을 심미적으로 녹여 내는 부드러움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
--- 권택영(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사랑과 상처의 아이러니
<뱀장어 스튜〉는 평범으로 떨어지기 쉬운 소재를 기법을 통해 새로운 예술로 탄생시켜 놓고 있다. 이 작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야기 소재에 대한 작가의 해석과 그것을 풀어 나간 뛰어난 기법이다.
--- 권영민(문학평론가/서울대 교수)
대상의 미화를 넘어서는 치장술과 연금술
〈뱀장어 스튜〉를 통해서 남녀의 불륜이라는 범속한 이야깃거리는 빈틈없는 구성력, 시적인 것과 산문적인 것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담론, 생동감 넘치는 상징적 장치 등의 힘을 빌리면서 의미 있는 서사체로 태어났다.
--- 조남현(문학평론가/서울대 교수)
수상작 <뱀장어 스튜>는 몇 년 전 어느 날,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피카소의 그림을 보다가 어떤 강렬한 이끌림 때문에 서두 몇 문장을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나는 박사 논문을 한창 쓰고 있는 중이라 손을 댈 틈이 없었다. 논문을 쓰는 중에 미치도록 글을 쓰고 싶을 때만 조금씩 써 보다가 재작년 가을, 비로소 병상에서 완성하였다. 오랜 병원생활의 고통과 절망이 〈뱀장어 스튜〉를 끓인 화력이 되었다고나 할까.
이 작품은 종전의 내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개인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작품이다. 내 딴에는 이 소설에서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서처럼 작가인 화자의 개입, 시점의 변화 등,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일부 기법을 조심스레 시도해 보았다.
'나'와 '그녀', '여자'의 시점을 액자소설이되 액자와 액자 속으로 드나들게 하면서 리얼리즘 소설로는 제한적인 한 인간의 외면과 내면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 보고 싶었다. 또한 8년 간의 프랑스 체류중에 자연스레 체감한 예술적 분위기 속에서, 특히 미술을 통해 문학에 접근하는 방식을 내 나름대로 시도를 해보게 되었다.
가끔 소설은 그림을 통해서 내게로 오곤 했다. 강렬하고 즉각적인 그림의 이미지는 곧이어 내 상상력의 뇌관을 자극시키고 폭발시켰다. 나는 이렇게 그림이 문학을 여는 코드가 되는 소설을 써 보고 싶은 욕심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귀국한 지 2년 남짓, 등단 5년차, 마흔 넘은 신인. 모국에서의 글쓰기는 여간 만만치 않았다. 이제 한국 문단의 기라성 같은 수상작가들의 이름 밑에 내 이름을 올리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내게 어떤 새로움이나 가능성을 기대할 만해서 상을 주는 것이라면 이상문학상의 권위에 기대어 감히 소망해 본다. 겸손하되 비굴하지 않은 작가정신으로 죽을 때까지 인생의 본질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겠다고. 왜냐하면 위대한 작가는 녹슬지 않는 예리한 펜촉으로 사람들의 가슴에 각인될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수상소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