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라비안나이트』를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억지로 원본에 꿰맞추는 축어역보다는 “만약 아랍인들이 영어로 썼다면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바탕으로 번역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나의 번역 작업은 그저 정신뿐 아니라 수법, 문체, 내용까지도 온전히 보존함으로써 동양의 위대한 보물을 가장 충실한 모습으로 전하고픈 소망의 발현이다. 따라서 아무리 진부하고 지루하더라도 원전의 중요한 특색을 이루는 야화별 분류를 고수했다.
--- pp.11~12 「1권, 영역자 리처드 F. 버턴 서문」중에서
“샤흐리아르 왕은 1001일 동안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여 살인 행각을 멈추고 성군이 되었다.” 이 한 문장으로 『아라비안나이트』가 다 요약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큰 줄거리만 알면 됐지 굳이 1001일 동안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 내용까지 시시콜콜 알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진짜 재미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 시시콜콜한 여담에서 바로 이야기의 ‘참맛’이 우러난다.
--- p.358 「1권」
세 사람이 앉자 공주가 주문을 외었다. “양탄자야, 이 보석에 쓰인 이름과 부적과 글씨의 힘으로 너에게 부탁하노니, 우리들을 싣고 하늘로 올라가다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양탄자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게 아닌가. … 공주가 양탄자가 그려진 면을 지상 쪽으로 향하고 비비자 양탄자는 지상으로 내려갔고, 막사가 그려진 면을 위로 하고 비비자 막사가 나타났다. … 식탁을 그린 네 번째 면에 대고 비비자 이번엔 온갖 산해진미가 차려진 식탁이 나타났다.
--- p.118 「2권」
궁전은 메디나를 능가할 정도로 넓었고, 금은으로 만든 갖가지 색깔의 보석, 감람석, 진주 등을 아로새긴 기둥들이 높이 솟아 있었다. 바닥에는 진주와 사향, 용연향, 사프란 등 개암 열매만큼이나 큰 보석들이 뒹굴었다. 누각의 큰 지붕과 발코니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래쪽으로는 몇 가닥의 시내가 졸졸 흐르고, 큰 거리에는 열매를 매단 나무들과 껑충한 야자수들이 늘어서 있고, 집들은 황금을 입힌 벽돌로 지어져 있었다. 이곳은 내세를 위해 약속된 낙원임이 틀림없었다.
--- pp.134~135 「2권」
잠시 후 당나귀만 한 크기의 큰 뱀 하나가 황금 쟁반을 등에 지고 다가왔다. 쟁반 위에는 수정과 같이 빛나며 여자 얼굴 같은 용모를 하고 사람의 말도 할 수 있는 암구렁이가 앉아 있었다. 암구렁이는 하시브 옆을 지나면서 인사말을 던졌다. 하시브도 답례를 보냈다. 암구렁이가 옥좌에 앉자 모든 구렁이들이 공손하게 절을 했다.
--- p.91 「3권」
방 한가운데 황금 보료를 깐 설화석고의 침상 위에 보름달 같은 처녀가 누워 있었다. 머리맡과 발치에는 용연향 초가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 촛대에 꽂혀 있었으나 빛날 듯 환한 처녀의 미모에는 그 촛불조차 빛을 잃은 상태였다. 머리맡에 조그마한 은상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갖가지 보석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금세공사는 덧이불을 쳐들어 얼굴을 가까이 갖다대고는 처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처녀는 그가 일찍이 연모하여 멀리서 여기까지 찾아온 바로 그 미인화의 주인공, 비파 타는 가희가 아닌가.
--- pp.249~250 「3권」
가리브가 우상을 가지고 도망친 데에는 이상한 연유가 있었다. 가리브가 감옥에 갇혀 전능하신 알라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을 비는 기도를 올리고 있는데, 바로 감옥과 맞닿은 둥근 지붕의 사당 안에서 이 기도를 엿들은 마신은 겁이 났다. 마신은 알라가 보이지 않는데, 알라에겐 마신이 보인다니 도대체 그놈이 누굴까 궁금했다. 그래서 마신은 가리브에게 엎드려 가리브의 종문에 들어가려면 어떤 문구를 외어야 하는지 물었다.
--- p.80 「4권」
유대인은 저울과 돌추, 금은과 서랍 달린 궤짝을 주위에 늘어놓고 앉아 있었다. 이윽고 해가 저물자 그는 가게를 닫고, 금은을 돈주머니에 넣어 다시 안장 주머니에 넣은 다음 그걸 암탕나귀에 싣고 교외로 나왔다. 알리가 미행하는 걸 모르는 모양인지 그는 돈지갑에서 먼지 부스러기를 꺼내 주문을 중얼거리며 공중에 뿌렸다. 그러자 난데없이 세상에서 유례가 없는 굉장한 성이 나타났다.
--- p.179 「4권」
“저희들은 마치 육지를 걸어 다니듯 눈을 뜨고 바닷속을 걸어 다닙니다. 그것은 오직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도장 반지에 새겨진 신의 이름의 영험에 의한 것입니다. 저희들은 바닷속을 돌아다니며 바닷속에서도 태양이나 달, 별이나 하늘도 바라봅니다. 모두 대지의 표면에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바닷속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육지에 있는 여러 가지 모양의 온갖 생물들도 있습니다. 육지에 있는 것은 바다의 것에 도저히 비교가 안 될 정도입니다.”
--- p.223 「4권」
두 눈은 자연의 코르 분을 새까맣게 바른 것 같고 눈썹은 초승달, 입은 마치 솔로몬의 도장 반지처럼 귀엽고 입술과 치아는 산호와 진주를 연상시킬 만큼 빛났다. 한번 보기만 해도 빠질 것 같은 요염한 눈썹과 발그레한 볼이 내뿜는 아름다움에 넋을 잃지 않을 수 없었다. 마스룰은 처녀의 아름다움에 빠져 자기도 모르게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잘 가꿔진 화원에는 재스민을 비롯해 질리꽃, 제비꽃, 장미와 오렌지꽃 등 온갖 기화요초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꾀꼬리, 염주비둘기, 흰 비둘기, 나무 비둘기 등 온갖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 p.48 「5권」
“제 소원은 단 한 가지, 베일을 벗고 맨 얼굴을 드러낸 채 거리를 활보하고 싶어요. … ‘매주 금요일 기도 시간 두 시간 전부터 모든 시민은 가게 문을 열어놓은 채 사원으로 들어가 사원 문을 걸어 잠그고 상하 귀천 구별 없이 누구 하나 거리에 나오거나 시내에 남아 있어선 안 된다. 만약 밖에 나오거나 어딘가에서 몰래 숨어서 내다보는 사람이 있으면 가차 없이 죽여버린다.’ 이런 포고를 내려달라고 해보세요. 그럼 저는 노예 계집들을 데리고 맘껏 시내 번화가를 말을 타고 지나가는 겁니다.”
--- p.268 「5권」
호기심에 상자 뚜껑을 열어보니 이게 웬일인가. 황금 도장 반지가 들어있는 게 아닌가. 무심코 반지의 글씨를 문지르니, 그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님, 저는 여기 있습니다. 분부만 내리십시오. 무슨 일이든 소원을 이루어드리겠습니다.” 마아루프는 깜짝 놀라 누구냐고 외쳤다.
--- p.333 「5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