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 이 노래가 나왔을 때, 수많은 여성 팬들이 “동률 오빠, 동욱이 오빠~꺅!” 수많은 그냥 남자들이 “그래, 지금 이 순간 우리의 행위 역시 낭만을 위한 거야! 취중진담! 지화자!” 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황금비율에 대한 인류 본연의 찬탄! 취중 실언을 ‘찐따의 자기배설’이 아닌, 수줍은 자기고백으로 탈바꿈시킨 역사적 사건에 관한 인식의 필연! 하지만, 헛되고 헛되게도 그래 봤자 뭐하나. 정작 노래의 핵심인 취중진담이야말로 ‘술 먹고 하는 소리’에 가까우니 말이다. 그래서 노래 역시 부질없을 수밖에.
---「취중진담 _전람회」 중에서
따지고 보면 피디는 소심하고 또 소심해야 하지 않던가. 트라우마야 극복해야 하지만 실패담을 반면교사하지 않고 모든 것을 망각하는 순간, 발전과는 영원히 멀어진다. 현재 차장급의 모 선배는 자신의 조연출 시절, 선배 피디가 휴가를 간 사이에 있었던 일을 두고두고 말한다. 수영장에 놀러갔는데 노란색의 엿 같은 게 떠다녀서 ‘이건 뭔가’ 하고 만짐과 동시에 혀를 살짝 대보았더니 똥이더라는 청취자 사연을 ‘재밌다. 이거 대박이다!’ 하며 방송에 내보냈다가 담당 피디가 ‘연출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은 일화인데, 홍역을 치름을 넘어 몸에 각인한 탓에 그는 현재 하는 프로그램마다 대박이 나는 미다스의 손이 되어버렸다.
---「樂しみな週末 _곤티티」 중에서
아무튼 삶의 목표가 에로영화 감독에서 ‘유유자적’과 ‘자유인’으로 바뀐 지금, 나의 새로운 예명은 ‘까를로스’다. 언제인가 종로 1가에 위치한 ‘Rock The Who’란 뮤직바에서 까를로스 산타나의 「I Love You Much Too Much」가 울려 퍼지던 날, 나의 가슴속에는 넥스트의 「불멸에 관하여」, 로즈의 「A Taste Of Neptune」마저 경외감에 떨어야했던 거대 바다, 대양이 펼쳐졌다. 주변인 모두가 고개를 갸웃하는 콧수염을 기르게 된 것도, 큰 머리 때문에 그토록 기피해왔던 페도라를 동대문 두타에서 이만팔천 원에 구입한 것도, 나의 새로운 예명인 ‘까를로스’ 그리고 산타나의 「I Love You Much Too Much」가 발단이 되어서다. 만약 당신이 서른이 되고 마흔에 이르면서 삶의 공허감에 시달린다면 5분 내외의 짧은 시간에 세계를 펼치는 마법의 음악, 그리고 새로운 자아의 사명을 부여하고 그 길로 인도하는 예명을 경험하기 바란다.
---「I Love You Much Too Much _산타나」 중에서
『두시의 데이트』 대타 연출을 맡을 때였다. 중학교 때부터 줄곧 팬이었던 종신이 형과 방송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도 들뜬 나는 어느 날 그를 위한 트리뷰트 선곡을 결심했고, 결국 변성기 이전 1집에서의 맑디맑은 미성이 돋보이는 「이젠 그댈」을 1부 두 번째 곡으로 고르게 되었다. 그런데 “오! 이창호 피디. 어떻게 이 노래를 다 알아?” 하면서 감탄해 마지않을 것 같던 종신이 형이 선곡표를 보는 순간 갑자기 극도로 착잡해진 얼굴을 하더니, 실제로 노래가 나가는 동안에는 책상에 얼굴을 처박고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형님, 무슨 일 있어요?” “별건 아닌데, 음…… 이창호 피디는 혹시 내 안티가 아닌가 싶어.”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사실 이 곡은 내 노래 중에서 워스트 파이브 안에 드는 거야. 가사 들어봐, 이게 말이 되냐고. 정말 부끄러워 죽겠어. 어떡할거야.” “저는 형님 좋아할 줄 알고…….”
---「이젠 그댈 _윤종신」 중에서
이처럼 방송에서의 선곡이란 가사 전체의 내용보다도 제목을 이루는 단어에 따라 좌지우지되기도 하는데, 그와 같은 선곡의 예로는 여름철 전력수급 차질 기사 다음 조영남의 「불 꺼진 창」, 허약 체질 남편 사연 다음의 홍삼트리오 노래 등이 있겠다. 후자의 경우 사연 당첨 선물로 홍삼진액 세트를 준비하면 트리플 크라운에 등극하는데, 피디들은 이럴 때 광활한 우주 속 자기존재감을 갖는다나 뭐라나. 지금도 MBC 라디오 피디들 사이에는 선곡과 관련해 전설처럼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배경은 포크가수 이윤수가 90년대 초반 「먼지가 되어」를 발표했을 때다. 모 피디가 이 곡을 트는데 방송을 듣던 국장이 갑자기 스튜디오에 난입, 노발대발하며 격정을 토했다고 한다. 이유인즉 ‘사람이 될 게 없어 먼지가 되냐’였다고.
---「이 거지 같은 말 _서영은 Feat.정엽」 중에서
얼마 전 후배들과 함께 음악을 듣는데 그중 실제로 뮤지션의 길을 걷는 한 후배가 글렌 팁톤의 「Baptizm Of Fire」를 듣고서 이렇게 말한다. “몇 개 안 되는 단순한 코드가 반복되는데 ‘그래도 너희들 한번 들어봐’ 식으로 정황하게 연주를 펼치는 게 듣기에 불편해요.” 음악의 내부 사항에 대해서 무지한 내가 그 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떤 코드가 쓰였고, 코드 변환이 어떻게 이뤄지는지와 상관없이 그저 음악에 깃든 사악한 기운과 파워, 연주자의 자기 확신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헤비메탈이면서도, 분명 또 다른 헤비메탈. 이튿날, 후배가 말한다. 음악을 듣고서 집으로 돌아간 뒤 가위에 눌렸다고. 왠지 모를 음습함이 가슴에 웅크리고 있던 것 같다고.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음악을 ‘분석’할 날이 없다. 이유는 늘 부정의 힘으로 살아가는 내게 음악만큼은 유일하게 허락된 긍정의 세계, 늘 새로움과 놀라움으로 가득한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Baptizm Of Fire _글렌팁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