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함께 하나로 치유될 수밖에 없다(We heal as one).’ 감염된 사람이 한 명뿐이더라도 감염병은 끝나지 않는다. 건강보험이 없어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못하면, 건강보험이 있는 사람의 감염 확률이 높아진다. 돈 없는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돌아다니면, 돈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거리두기를 해도 바이러스는 계속 퍼진다.
2020년의 코로나19 재난은 수십만 명의 가난한 사람을 병으로 죽였지만, 미래의 기후재난은 수억 명으로 규모가 커질 것이다. 미래의 기후재난도 코로나19 재난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더 가혹할 것이다. 토지가 물에 잠기면 부자들은 높은 곳으로 옮겨갈 방법을 찾을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그럴 수 없다. 탄소 배출이 금지되어 연료 값이 오르면 가난한 사람은 추위에 떨다 얼어죽을 것이다.
한편 불평등은 위기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가난한 사람은 숲을 태워서 농사를 짓는다. 숲에서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쓸 것이다. 숲은 공기 중 탄소를 흡수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가난은 숲을 그대로 두지 못한다. 불평등은 지구온난화를 막는 가장 큰 사회적 장애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 p.32~33
2040년, 아니 2030년만 되어도 사람이 하는 노동의 꽤 많은 부분을 인공지능이 대신할 것이다. 이런 인공지능 경제를 상상해보자. 인공지능 경제에서 생필품을 생산하는 노동은 더 이상 희소한 자원이 아니다. 일할 사람이 없어 공장을 돌릴 수 없다는 말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공지능 경제에서는 두 가지를
해결해야 한다.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하고, 인공지능으로 만든 물건을 팔아야 한다.
코로나19 재난은 이런 문제에 대해 간단한 답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 먹고 살 수 있게 한다. 사람들이 기본소득으로 물건을 사면 경제가 돌아간다. 두 가지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된다.
인공지능 경제에서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될까? 코로나19 재난은 이 질문에 대해서도 대답을 보여주었다. 재난이 터지자 사람들은 스스로 일을 찾았다. 다른 사람을 돌보고,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에게 격려와 감사를 보냈다. 사람들은 스스로 일을 찾아서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 기여하려고 했고, 그렇게 할 것이다.
--- p.56~57
바이러스로 인해 시도해본 고등교육의 전면적인 온라인화는, 적어도 재정 문제에 있어서 대책이 될 수 있다. 캠퍼스라는 거대한 물리적 공간을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현장 강의를 위주로 구성된 캠퍼스는 온라인 강의를 위한 설비와 그동안 부족했던 연구를 위한 공간으로 다시 구성할 수 있다.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교수와 직원의 인적 자원 활용도 다시 짤 수 있다. 교실이 수천 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에는, ‘모든 강의는 휘발된다’는 조건도 역할을 했다. 한 번 했던 강의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으니, 수천 년 동안 학생은 교실로 와야 했다. 그런데 온라인은 휘발되지 않는다. 저장할 수 있고 반복할 수 있으니, 교수는 매번 강의할 필요가 없고 직원도 매번 지원할 필요가 없다. 대신 남는 시간에 지역 사회에 필요한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재구조화 할 수 있다. 비용을 효율적으로사 용할 수 있다.
--- p.89쪽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서열화를 깨는 더 강력한 방법이 있어야 한다. 이는 통합대학 설립으로 가능하다. 한국에는 국립대학이 여러 개 있다. 이 역시 무상화로 헤게모니를 정부가 쥐었다고 가정하면 좀더 수월하게 학사행정을 운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각 국립대학 현재 정원의 10% 정도를 통합대학으로 뽑는다. 지방에 있는 A국립대학에 다니는 학생 ‘갑’은 통합대학 소속이다. 갑은 A국립대학에서 자기가 전공을 고를 수 있다. 그런데 갑은 다른 지방에 있는 B국립대학의 과목을 수강할 수도 있다. 온라인화가 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갑은 A국립대학에서는 a라는 전공을, B국립대학에서는 b라는 전공을 할 수도 있다. 지방 국립대학이 특성화된다면 효과는 더욱 있을 것이다.
이렇게 지방 국립대학 네트워크 안에 포함된 갑은 필요한 학점을 이수하고 졸업한다. 갑은 A국립대학 졸업장과 통합대학 졸업장을 받는다. 전공은 a와 b 두 가
지다. 이렇게 하면 지방 국립대학을 상향평준화시킬 수 있고, 무상화된 고등교육 시스템 안에서 소수의 기득권 명문대학의 서열과 경쟁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지방 국립대학 학생의 100%를 이런 식으로 운영할 수도 있고, 나중에는 지방 사립대들 역시 이런 방식으로 묶을 수 있다. ‘공동입시’라는 제도다. 공동입시를 수용하는 지방 사립대는 추가로 지원이 나갈 것이다. 물론 전제가 있다. 고등교육의 온라인화로 비용을 줄이고, 고등교육의 온라인화로 공동입시와 통합대학이 실질적인 운영이 가능해져야 한다
--- p.113~114
전형적인 민주주의지만, 나는 고인물 민주주의(old democracy)라고 부른다.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민주주의는 각 지역의 시민혁명으로 시작해, 2차 대전 이후에 완성되었다. 사회계약으로 보자면 오랫동안 차근차근 쌓여온 안정감 있는
계약이다. 그런데 안정감 있었던 오래된 사회계약, 선진국 민주주의가 코로나 앞에서 무력했다.
이 대목에서 짧게는 30년, 길게는 40년 정도 진행된 신자유주의를 검토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민주주의를
낡고 허약하게 만들었다. 노동자 계급을 분열시켰고, 시민이 연대할 수 있는 기반도 무너뜨렸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는 ‘공공선’이라는 말을 계약서 안에만 머무르게했다.
신자유주의는 안정감 있는 사회계약, 즉 시민들과 그들의 행복을 위한 공동체의 약속(공공선)을 포위하고 공격했다. 사회계약에서 시민들은 모두의 행복을 위해 개인의 절대적인 자유를 보류하고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공공의 약속을 하기로 했다.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보류하기로 약속한 공간을, 이윤을 위해서 다시 절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게 풀어헤치자는 것이다. 경쟁과 효율성, 민영화와 규제완화, 노동유연성 등 부자들과 강자들의 논리가 공동체의 공공의 약속을 대신해 자리 잡게했다. 시민은 각자도생을 위해 연대보다는 극한적인 경쟁 상황으로 내몰렸다
--- p.143~144
좀더 범위를 확장해보자. 코로나19가 재난과 위기의 시작이라면, 제도 역시 재난과 위기 상황으로 들어가게 된다. 민주주의도 재난과 위기 상황으로 들어간다. 대표적으로 고인물 민주주의가 재난과 위기상황으로 들어갔다. 재난과 위기는 변화를 요구한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도 조정되어야 하는데, 조정은 바꿀 것과 바꾸지 않을 것을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기준은 시민적 자유권과 공동체성의 최적 타협지점으로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사회계약 내용의 위상을 강화시키고, 개인의 자유권을 보류하거나 스스로 자제하도록 강력하게 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요구되는 정치적 주체는 자유주의적인 ‘자연적 시민’보다는, 공화주의적으로 잘 훈련되고 지성을 갖추고 ‘자제력 있는 시민’이다. 다른 한 쪽에서 공공선의 강화와 비상권력의 강화는 필요성, 투명성, 비례성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고, 비상권력의 강도, 확대되는 속도는 끊임없이 검토해야 한다.
--- p.155~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