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비자》 하면 건조한 법치지상주의나 냉혹한 처세술로만 여기기 쉬운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전체 55편으로 구성된 《한비자》는 방대한 역사적 일화와 다채로운 철학적 사유들을 품고 있는 사상의 드넓은 바다요, 인생철학의 풍성한 숲이었다.
한비는 그런 풍성한 역사적·사상적 재료를 자신의 ‘법치론’에 녹여냄으로써 수준 높은 법철학을 확립하고 있는 바, 그것이 2000여 년 전 왕조시대의 산물이라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것이다. (……) 바로 그 지점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와 정치 현실을 《한비자》에 비춰볼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 그래서 우리는 한비의 이야기를 각자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활용할 방안을 모색하기로 한 것이다. --- p.5

〈설의〉편에는 군주가 신하들을 다스리는 방법, 특히 주의해야 하는 인간 부류, 필요한 사람들의 역할, 인재 등용 기준과 임용 방법, 사람에 의한 재난 방지 사항, 간신의 종류, 군주로서 피해야 할 사항 등을 조목조목 사례를 들며 설명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것과 동시에 유가儒家의 논리를 반박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런 가운데 ‘옳은 길’과 ‘쉬운 길’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망설이고 고민하게 마련입니다. 그 선택에 따라 인생길의 방향이 달라지고 운명이 갈리게 되지요. 그런데 대개의 경우 ‘옳은 길’은 어려운 길이고 가시밭길이 되기 쉽니다. 반면에 ‘쉬운 길’은 안락한 길이지만 옳지 못하거나 비겁한 길이기 쉽습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탈했을 때 독립투쟁의 길과 친일매국의 길로 갈린 사람들의 운명을 보면 이해가 쉽지요. --- p.29~30

한비의 변법은 보편성을 확보한 법령을 세우고, 법령의 원활한 작동과 일관된 유지를 위해서 인간 본성에 맞는 시스템을 도입하며, 시스템을 보완하는 매뉴얼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시스템의 붕괴를 막고 법의 보편성을 유지하자는 얘기이다. 이것이 필자가 앞서 얘기한 '시스템 위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한비의 변법은 형법주의를 근본으로 하면서 지나친 형법주의를 보완하기 위해 정치적이고 조직적인 시스템을 구축한 후에 이를 유지하기 위한 세심한 매뉴얼을 추가로 준비하자고 주장한다. 한비는 지나친 상벌주의나 강철통치를 위한 과격한 군주론과 통치 이론만을 강조한 사상가가 아니다.

<b>왜 지금 ‘한비자’인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b><br/><br/>한 케이블TV의 프로그램 ‘응답하라’ 시리즈가 요즘 또 한 시대를 불러내 사람들을 추억에 잠기게 하고 있다. 90년대에 이어 한 시절을 더 거슬러 올라간 80년대, 그중에서도 이른바 쌍팔년. <br/><br/>그런데 그 90년대에 태어났거나 80년대를 뜨겁게 건너온 20대부터 50대까지, 다들 청춘을 자처하는 ‘을’들 다섯이 모여 무려 2200여 년 전의 사상가를 불러내 응답을 구했다. “응답하라! 한비자.” 그리하여 적잖은 각고 끝에 저마다의 질문방식으로 응답을 얻었다. 그 응답을 모아서 풀고 다듬고 보태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br/><br/>그 많은 사상가와 현자 가운데 왜 하필 한비자일까? 필자들은 동양사상사에서 가장 다채롭고 뜨거운 사상의 꽃을 피웠던 춘추전국시대, 그리고 당시의 ‘백가쟁명’百家爭鳴 가운데서도 가장 실체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진보적인 이념과 방책을 제시했던 법가法家에 주목했다. 유가儒家를 비롯한 다수 사상가는 사실 덕치德治로 상징되는 ‘인치’人治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노장老莊으로 대표되는 도가道家는 정치사상으로만 보면 사실상 ‘아나키스트’였다. 다시 말해, 법가야말로 2000여 년의 시공을 초월하여 21세기 현재 우리의 문제에 대해 시원하게 응답해줄 최고의 조언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법치’가 위기에 처하고 ‘을’들이 절망에 빠진 대한민국에서, 한비자는 잠시 현실을 회피하거나 고통을 잊게 해줄 그런 모르핀이 아니라 좀 불편하고 아프겠지만 근본적인 처방전을 내놓을 수 있으리라 믿은 것이다. <br/><br/>1장에서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을들”에게 보내는 한비자의 응원을 전한다. 당장 고통스럽고 궁핍하더라도 쉬운 길보다는 옳은 길을 가라고 격려한다. 2장에서는 “험한 세상을 건너는 (한비자의) 법”을 제시하는데, 세상을 건너는 “다리”는 바로 “인간관계”임을 설파한다. 3장은 리더십 그리고 4장은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에 관한 한비자의 응답을 정리했다. 에필로그는 “왜 지금 한비자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이고, 부록은 《한비자》 55편에 대한 간명한 해설이다. 맨 뒤의 집필후기는 이 책이 나오기까지 오인오색의 소감이자 마음의 변주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