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께서 만약 관우(關右) 지역에서 수레와 말을 징발하는 소동을 없애시고 산동(山東) 지역에서 꼴과 군량을 운송하는 수고를 줄이신다면, 소동이 없으니 난리도 생기지 않고 수고가 줄어들어 물자가 넉넉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변란 초기에 난제를 없앨 뿐만 아니라 환난을 미연에 방지하게 될 것이니, 사태를 찬찬히 살피어 좋은 계책을 다시 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분란을 해결하는 계책의 순서입니다. 폐하께서는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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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백성을 움직이면 감동이 깊지 않지만 행동으로 백성을 움직이면 그 반응이 반드시 신속합니다. 대체로 말은 사정에 따라 쉽게 할 수 있으나 행동은 사욕을 거슬러야 하므로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말은 하기 쉬우므로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행동은 실천하기 어려우므로 복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난리를 평정하고 위기를 극복하며 백성을 구제하고 근심을 없애길 바라신다면, 스스로 욕심을 버리고 어려운 일을 행하시며 진심을 다하여 백성의 병폐를 없애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과오를 반성하는 뜻을 드러내실 수 있고 새롭게 바뀌겠다는 말씀에 부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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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가 이기기를 좋아하면 필시 아첨을 달콤하게 여길 것이며, 군주가 과오를 부끄러워하면 필시 바른 간언을 싫어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첨하는 신하가 군주의 뜻을 따르느라 충성스럽고 진실한 말은 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군주가 말솜씨가 좋으면 필시 말로 공격하여 남을 꺾을 것이며, 군주가 총명을 뽐내면 필시 억측하며 남에게 속을까 염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눈치를 살피는 신하가 자신의 편의를 도모하느라 조언을 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군주가 위엄을 내세우면 필시 자세를 낮춰 남을 대하지 못할 것이며, 군주가 멋대로 고집을 부리면 필시 과오를 인정하고 권고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겁을 내는 신하가 허물을 잡히지 않으려고 진실한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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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이는 위기를 계기로 안정을 구축하고 현명한 이는 잘못을 바로잡아 덕을 완성합니다. 폐하께서 진실로 기물을 지나치게 풍족하게 쓰지 않으시며 옷과 음식을 반드시 아랫사람에게 나누어주시고, 두 부고의 재물을 모두 내어 유공자에게 하사하시어 대중이 바라는 것을 함께한다는 마음을 담담하게 표현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렇게 폐하의 순수한 마음을 백성에게 전하며 기대하지 않던 특별한 은혜를 이들에게 내려주신다면, 병사들은 확실하게 내려지는 상을 바라보며 공을 세우려고 하고, 만민은 잘못을 바로잡는 정성에 기뻐할 것입니다. 그 누가 이러한 덕망에 귀의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되면 변란은 반드시 다스려지고 도적은 반드시 평정되어, 천천히 여섯 마리 말이 끄는 어가(御駕)를 몰아 도읍으로 돌아가서 무너진 법령을 일으켜 시행하고 어지러운 강령을 정돈하실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옛 의례(儀禮)를 되찾고 각 고을은 일정하게 조세를 바칠 것이니 귀하신 신분의 천자께서 어찌 가난을 걱정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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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기강은 제도에서 나옵니다. 농민과 장인과 상인은 각각 생업이 있으니 나라의 녹을 먹는 가문은 그들과 이익을 다투면 안 됩니다. 이 때문에 군주가 재물과 인력을 절약하게 하고 청렴과 정직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시대가 잘 다스려지면 법도가 유지되지만 시대가 어지러우면 법제가 약해집니다. 법도가 유지되면 귀함과 천함에 규정이 있고, 많고 적음에도 정도가 있으므로 수레와 의복, 전답과 주택이 분수를 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물건이 지나치게 부족하지도 않고 지출이 지나치게 과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법제가 약해지면 법률을 지키지 않고 교화를 따르지 않으며, 오로지 재화만 숭상하고 힘만 믿습니다. 권세가는 전조(田租)를 받는 일과 무판(貿販)을 겸하여 아래로는 백성의 생업을 막고, 먹고 입는 것을 풍족하고 사치하게 하여 위로는 군주의 존엄을 위협합니다. 마음껏 탐욕을 부리는 것에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천하의 물품은 한정이 있으나 부자의 축재는 끝이 없습니다. 한 사람이 먹고 입으려고 백 사람 분의 재물을 소비한다면, 백 사람의 음식이 부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가문을 부유하게 하려고 천 가구의 재산을 모은다면, 천 가구의 생업이 궁핍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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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일들을 어찌 게을리했겠는가? 꼴 베고 나무하는 이의 말도 잘 듣지 않은 것이 없다. 생각은 언제나 태평시대를 이루는 데 있고, 마음은 항상 백성을 구휼하는 데 있다. 한밤중에도 여러 번 일어나고 한 끼 식사 중에도 여러 차례 탄식한다. 일 하나가 어그러져도 허전해하며 속을 썩이고, 사람 하나가 재앙을 당해도 내 몸을 다친 듯 안타까워한다. 온 나라 사람들과 함께 대화합에 이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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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는 신하를 임명할 때 현인을 우대하고 때에 맞게 휴가를 내리며, 신하가 주군을 섬길 때는 제 능력을 헤아리며 그만둘 때를 안다. 그래서 예법에 맞게 나아가고 물러날 수 있으며 시종일관 훌륭할 수 있다.
--- p.214
너무 서두르면 신통한 판단력도 어긋날 수 있고 지나치게 세밀하면 예리한 관찰도 틀릴 수 있습니다. 판단을 급히 하다 보면 용서가 부족해지고, 또 의심스러운 것들을 잘 분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밀히 관찰하다 보면 의심이 많아지고 또 예측한 것이 반드시 옳지만은 않습니다.
--- p.239
작은 일을 자세히 살피고 미미한 간계를 규찰하는 것, 이것은 담당 관리의 직분입니다. 만 가지 정무를 다스리고 여러 관장(官長)을 선발하며, 강령을 총괄하여 여러 조목이 모두 거행되도록 하고, 가까운 곳을 명확히 하여 여러 방면에서 자연히 통용되도록 하는 것, 이것은 재상의 직분입니다.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를 모두 용납하고, 큰일과 작은 일을 빠짐없이 하늘처럼 덮어주고 땅처럼 받아들이며, 면류관에 구슬과 솜을 드리워 눈과 귀를 어둡게 하고, 흠집이나 미움을 가려주고 힘써 포용하여 위엄을 보이지 않아도 사람들이 우레와 천둥처럼 두려워하고 자세히 살피지 않아도 사람들이 해와 달처럼 우러르는 것, 이것은 천자의 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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