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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연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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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8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131*210*20mm
ISBN13 9791196410056
ISBN10 119641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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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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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타이트한 흰 스커트 위에 얇은 모직으로 짠 가슴골이 드러나는 긴팔의 분홍색 셔츠를 입은 혜리는 하체를 가볍게 흔들며 비택의 테이블에 와서는 동전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 남자들의 시선을 많이 받아본 혜리의 가슴과 엉덩이는 자신감으로 충만했지만, 눈마저 자신감으로 차 있지는 않았다.
--- p.21

비택은 학과 사무실을 나와서 이 교수 연구실 앞에서 잠깐 멈추었다. 그는 사건의 내막을 알고 싶고 해명을 하고 싶었으나 그냥 발길을 돌렸다. 구차하고 치사했으며, 한없이 초라한 자신을 연민하다가 1초 정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돌아왔다.
--- p.86

대학시절 학생 운동에 끝까지 투신하지 못한 일과 복학 후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386 세대를 향한 세상의 질책, 그 무능함과 오만 혹은 오해와 시기에 의한 곤혹스런 비판. 비택은 386 세대가 누린 과실은 하나도 따먹지 못했으면서도, 그 세대를 향한 비판을 마치 자기 일처럼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부채감과 자책감을 가졌다.
--- p.93

그런데 어느 날 우리가 4박 5일의 훈련을 마치고 떠나는 날 그 원숭이가 절벽 위에서 들뜬 표정으로 팔을 휘젓더니 자기 무리와 숨어있는 우리를 쓱 돌아보더니 웃는 거야. 분명히 웃는 표정이었어. 그런 후 뛰어내린 거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원숭이 무리와 우리는 절벽 끝으로 달려갔는데 그 원숭이는 마치 독수리가 하강하듯 계곡으로 추락하더라고.
--- p.118

두 사람이 마주친 날은, 비택이 이 교수로부터 강의를 배정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학교를 찾아간 날이었다. 비택이 출석부와 성적표를 교양학부 사무실에 내고 빈 강의실에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복도를 걸어갈 때 영한 또한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비정년 전임 교수 재계약이 일방적으로 파기되어 연구실에 있던 짐을 옮기던 중이었다.
--- p.191

두 사람은 잠시 얼굴을 붉히며 그때를 생각하는 듯 앞만 쳐다보며 걸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둘은 서로의 얼굴을 친근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또 말없이 한적한 공원 같은 길을 따라 북문을 향해 걸었다. 걸으면서 비택은 자신이 이 건물에 오게 된 과정을 사실대로 얘기했다.
--- p.243

비택은 청수가 불덩어리라고 부른 것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지만, 둘의 관계를 마구잡이로 얘기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특히 영한과의 관계는 남에게 얘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 p.282

그 얘기 아세요? 자코메티의 모델이 세 사람이었는데, 동생인 디에코 자코메티, 자신보다 스물두 살이나 어린 아내 그리고 일본에 실존주의 철학을 들여온 야나이하라 이사쿠였어요. 자코메티는 야나이하라의 동양인 특유의 정적인 표정과 웅숭한 눈빛에 반했다고 해요. 그런데 야나이하라가 그 아내와 정분이 났어요.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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