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돈을 쓴다는 건 뭐랄까, 그보다는 조금 더 생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지역에서 파는 차 한 잔 값이 얼마인지, 싸구려 식당의 밥값이 얼마인지, 버스 요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채 여행했던 나는 지금도 이집트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른다.
--- 「커피 2.80NZD + 얌누아 8NZD」 중에서
일찍이 나는, 바쁜 어른 같은 건 절대 되지 말아야지, 하고 굳게 다짐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요즘처럼 잡무에 쫓겨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며 점심 먹을 시간도 없는 그런 상황은, 나에게 부끄러움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 부끄러운 어른이다.
--- 「서서 먹는 소바 390엔」 중에서
모든 것이 공백이었다. 공백투성이의 하루하루였지만, 불안하지도 초조하지도 않았다. 두유 아이스커피가 있다는 것도 모를 만큼, 햇살을 받으며 하얗게 빛나는 책장이 그리워질 만큼, 왜 이렇게 나는 바빠진 걸까.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때의 공백이 지금 내게 주어진다 해도 이제는 결코 예전처럼 즐거워하지도, 재미있어 하지도 않겠지.
--- 「공백 330엔」 중에서
그리고 우리는 한가함을 무엇보다 두려워한다. 한가하고 따분하고 할 일이 없다는 건 치명적이다. 내가 내 자리에 있어야 할 의미가 송두리째 사라져버린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걸 두려워한다. 그런데 그 두려움을 휴대폰이 잊게 해준다.
--- 「휴대폰 26000엔」 중에서
그래도 가고 싶다. 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 장소가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다. 그래서 나는 심장이 쪼그라드는 듯한 심정을 억누르며 매번 여행을 떠난다.
--- 「항공권 취소 수수료 3만 엔」 중에서
내내가 나에게 행복이었다고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역할을 교대할 수 있었던 것. 엄마가 내게 해주었던 것을 나도 엄마에게 해줄 수 있었고, 엄마가 내게 허용했던 것을 나도 엄마에게 허용할 수 있었던 것. 내 안에 실패의 낙인으로 찍힌 그 숙소, 일인당 9800엔짜리 일본식 서양식 절충형 호텔에 묵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 「기억 9800엔 × 2」 중에서
삼십 대 때 쓴 돈 역시 분명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내게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아직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마흔도 중반을 훌쩍 넘긴 어느 날 문득 알아차리겠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그때 아무 데도 돈을 쓰지 않아 통장에 잔고만 이상하게 쌓여 있는 것이다.
--- 「어느 하루 (예를 들면 1995년 11월 9일) 5964엔」 중에서
내 능력에 맞지 않는 돈을 충동적으로 쓰는 것으로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돈에는 그런 효력이 있다. 무계획적으로 쓰면 쓸수록, 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고 뭔가로부터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건 속임수라고 생각한다. 돈을 쓰는 그 순간에는 마음의 균형을 되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해방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돈의 효력을 (머리가 아니라) 감각으로 알아버리면 끝이 없게 된다. ‘아아, 이제 살 것 같아’라는 한순간의 착각을 원해 더, 더 쓰고 싶어지기만 할 뿐이다.
--- 「소파 테이블 30만 엔 남짓」 중에서
지난 1년 동안, 여러 가지 물건을 사기도 하고, 사는 걸 포기하기도 했다. 용돈 씀씀이를 기록한다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한 에세이지만, 가계부와 마찬가지로 돈에 대해 가르쳐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씀씀이가 헤픈지 아닌지, 올바른 곳에 쓰고 있는지 아닌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다. 우리가 돈을 쓸 때는 물건과 함께 다른 무언가도 분명 손에 넣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물건이 아니라 그 다른 무언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작가 후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