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과연 집착하지 않고 행위를 할 수 있을까? 이게 진짜 질문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행위의 결과로서의 성공과 실패를 동일한 것으로 본다. 생애 전부를 걸어 한 행동이 순간적으로 한 줌의 재가 되더라도 가슴이 뒤틀리게 박동하지 않는다. 결과를 신경 쓰지 않고 언제나 행위를 그 자체로 하는 사람들이 바로 성인(聖人)이다. 게다가 그들은 삶과 죽음의 고통을 넘어서서 자유롭다. 성인들은 모든 집착이 망상임을 안다. 아트만(Atman, 참나)은 결코 집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 「1. 두 가지가 아니라는 불이」 중에서
* 신이 없는 곳이 없음을 알고서 현인(賢人)들은 칭찬과 비난을 여읜다.
--- 「2. 하나의 신이 모든 존재에 거한다.」 중에서
* 선과 악은 더 구현되고 덜 구현된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 삶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아이였을 때 선으로 생각된 것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러나 사실은 악이었다. 그리고 선을 악으로 얼마나 많이 여겼는가? 이렇게 생각은 얼마나 잘 변하는가! 생각들은 얼마나 잘 올라가는지! 한때 매우 좋다고 생각되었던 것이 지금은 얼마나 나빠졌는가! 그러므로 선과 악은 잘못된 믿음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 오직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이 세상의 전부가 아트만(Atman, 참나)의 구현이다. 모든 것에 아트만이 표현되어 있다. 자기애(ego)가 매우 두터우면 우리는 그것을 악이라고 부르고 매우 얇으면 우리는 그것을 선이라고 부른다.
--- 「3. 초연결의 아트만」 중에서
* 브라흐만(Brahman, 우주 원리)을 아는 자는 자신의 행복을 절대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 자가 타인의 안녕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무엇이 막을쏘냐? 모든 무착(無着)의 행동은 세상에 이익을, 많은 이들에게 행복과 이익을 가져다준다. 라마크리슈나 파라마한사 스승은 일찍이 말했었다. ‘그런 사람은 절대 잘못된 행보를 하지 않는다.’
--- 「4. 공 브라흐만」 중에서
* 절대 천국에 가려고 하지 말라. 그것은 최악의 망상이다.
--- 「5. 마야」 중에서
* 어떤 바보가 세상의 책 전부를 살 수도 있겠고, 그 책들은 그 바보의 도서관에 있게 되겠지. 그러나 그 사람은 얻을 수 있는 만큼만 읽어 취할 수 있다. 그 얻을 수 있는 만큼은 카르마(Karma, 업보)에 의해 나온 것이다.
--- 「6. 업과 인과율」 중에서
* 완벽한 박티 요가 수행자는 사원이나 교회에 있는 신을 더는 보러 가지 않는다. 신을 찾을 수 없는 어떠한 곳도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원 안이나 밖에서나 신을 만난다. 그는 성인의 신성함에서, 사악한 자의 사악성 속에서도 신을 발견한다. 왜냐면 신은 이미 영광스럽게도 사람의 심장 안에 이미 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능하고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빛으로서, 언제나 빛나고 영원히 함께하는 신으로서.
--- 「7. 힌두 수행의 길 - 하나 되는 요가」 중에서
* 누가 도움을 받을 것이며 무엇 때문인지 등을 개의치 않는, 무착(無着)으로 행위하는 방법을 카르마 요가 수행은 가르친다. 카르마 요가 수행자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본성이기에, 그렇게 하면 상대에게 좋다고 느끼기에, 더 이상의 목적을 가지지 않고 행위 한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포지션은 주는 사람이지 어떠한 것도 받을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주기만 할 뿐 되돌아오는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않는 자신을 알고 있기에 비극을 피한다.
--- 「8. 바가바드 기타」 중에서
* 우리의 목표는 행복도, 불행도 아니라고 우파니샤드는 지적한다. 그러나 행불행을 만들어내지 않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뿌리에서부터 그런 입장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 「9. 베다와 우파니샤드」 중에서
* 신은 순수하고 완벽하다며 선과 악을 넘어선 상태가 있는데, 그것이 본연의 모습이라고 베단타 철학은 말한다. 이는 좋은 것보다 더 상위의 것이다. 좋은 것은 안 좋은 것과 약간 밖에 차이가 안 난다. 베단타 철학은 악(惡)에 관한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단지 무지(無知)라 부를 따름이다.
--- 「10. 베단티즘」 중에서
* 사랑에 대한 가르침에는 기독교와 힌두 간에 차이가 있다. 기독교는 우리를 사랑해 주길 바라는 만큼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힌두교는 이웃을 우리 자신으로 여기고는 사랑하라고 한다. 실은 우리 자신을 이웃들 안에서 보는 것이다.
--- 「11. 힌두 사상의 특징」 중에서
* 힌두 종교는 특정 교조, 교리를 믿으려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믿음이 아닌 깨달음 때문이다. 믿음이 아닌 존재와 생성에 힌두 종교가 있다. 게다가 힌두 종교의 모든 목적은 끊임없는 분투를 통해 완벽히 되기, 신성화(神聖化) 되기, 신에 도달하기, 신을 보기이다. 신에 도달하면서 천국의 신처럼 완벽하게 되는 것이 힌두 종교의 내용이다.
--- 「12. 인도의 정신」 중에서
* 우리의 모토는 배척이 아닌 수용이 될 것이다. 소위 말해, 관용은 종종 모독이기에 나는 관용을 믿지 않는다. 나는 수용을 믿는다. 왜 내가 참아야 하는가? 관용은 ‘당신은 옳지 않고 나는 당신이 그렇게 사는 것을 그냥 허용할 뿐이다.’는 의미로 나는 생각한다. 타인을 그렇게 살도록 허락한다는 게 독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과거에 존재했었던 모든 종교를 수용하며 모든 종교를 숭배한다. 종교의 형태가 어떻든 그 종교들이 경배하는 신과 모든 종교를 나는 숭배한다. 나는 무슬림의 모스크로 갈 것이며 난 크리스천의 교회에 들어가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을 것이다. 나는 부처님의 말씀에 귀의, 불교 절에 들어갈 것이다. 나는 모든 이의 마음에 깨달음의 빛을 보려 하는 힌두인들과 숲에 들어가 명상을 할 것이다.
--- 「13. 불교, 그리스도교」 중에서
* 최고의 브라흐만에서부터 미약한 벌레까지
그리고 매우 작은 원자까지도
모든 것에 똑같은 신이 있다. 모든 것이 사랑인
친구여, 그들의 발아래에 마음, 영혼, 몸을 바쳐라
이런 것들은 신의 다양한 형태들이다
그들을 거부하고 어디서 신을 찾는가?
분별 말고 모든 존재를 사랑하라
그런 사람이 진정 자신의 신을 가장 잘 경배하고 있다
--- 「부록-비베카난다의 시 '친구에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