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대륙에서 인간의 역사는 콜럼버스나 그 밖의 탐험가가 발견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 인류의 여명기에 북아시아로부터 이주해 온 몽골리안들은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서 씨족이나 부족 사회를 형성하여 집단생활을 했다. 그 과정에서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문명, 마야 문명, 아즈텍 문명 그리고 잉카 문명 등 이른바 아메리카 고대 문명이 형성되었다.
최초의 문명인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문명은 수렵·채취 생활에서 농경 생활로 완만한 발전을 이루었으며 문화적 색채 또한 온건했다. 반면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문명이나 아즈텍 문명은 이미 농경 단계에 있던 이웃 민족의 영향을 받아 호전적이면서도 화려한 문화를 형성했다. 그들의 문화는 급속한 번영을 이루며 도시를 형성하는 단계까지 발전함으로써 상당 기간 문화 부족으로서의 생활을 영위했다. 한편 남아메리카의 잉카 문명은 수준 높은 원주민을 정복하여 그 바탕 위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잉카 문명은 고대 문명 중 가장 강력한 군대 조직과 전쟁을 통하여 거대한 세력권을 형성함으로써 국가 운영과 문화 면에서 놀라운 수준까지 이르렀다. 이처럼 아메리카의 고대 문명들은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출발하여 각기 다른 양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분열된 상태와 신앙의 형태, 비교적 낮은 기술 수준 그리고 외부 세력의 침입에 문화적 독립성을 상실해 갔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었다.
---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개괄 중에서
독립 전쟁 후, 워싱턴 행정부의 출범은 연방헌법의 인준과 더불어 13개 주가 모두 가입한 미합중국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후 연방 정부는 국가적 기틀을 확립하기 위하여 기구 조직을 보완·개편하고 제도를 정비했으며 국무성, 국방성, 재무성, 법무성 등을 설치하여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국가 경영을 시도했다.
정치적 당파가 발생하고 당파 간의 대립으로 시련도 겪었지만 애덤스 시대까지 꾸준한 정치적 발전을 이룩했다. 이후 토머스 제퍼슨 행정부로부터 존 퀸시 애덤스 행정부로 이어지는 20여 년 동안 미국은 서부 개척과 병행한 대외 통상의 확대로 경제적 자립 기반을 다져 나가는 데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과의 통상 관계 악화로 국내 산업이 마비되고 해외 무역이 손상되어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미국의 국가적 단합과 애국심 강화의 계기로 전환시키는 저력도 보여 줬다.
시련 속에서도 성장을 이룩하며 잭슨 행정부가 출범했고 이때부터 미국은 정치 제도와 정당 구조상 평등주의적인 새로운 변화를 맞기 시작했다. 양당 제도가 뿌리를 내림으로써 어느 특정 지역 출신들이 대통령직을 독점하던 시대와는 다른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서 경제 공황과 영토 확장에 따른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예 문제를 둘러싸고 연방이 분열될 위기가 시작되었다.
--- 「대륙국가 형성」 개괄 중에서
노예 문제로 격화된 남북 간의 대립은 링컨의 등장과 남부 11개 주의 연방 탈퇴로 인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전쟁 초기에는 남부군이 우세했으나 앤티텀 전투를 계기로 북부군이 세력을 회복했고,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이 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 결과 연방이 유지되었고,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으며, 공업 발전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고, 서부 개척의 활력소가 제공되었다.
한편 남북전쟁 후 좀 더 활기를 띠기 시작한 서부 개척은 광부, 목축업자, 농민들의 대이주에 따른 인구 증가 및 국토 개발로 급격한 변화를 이루었고, 1890년대에 이르러 프런티어가 소멸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후에 추진된 정부의 친기업 정책 및 대륙횡단철도 건설 등의 영향으로 등장한 대기업가들의 활동으로 미국은 이제 유럽 열강들도 만만히 볼 수 없는 산업 국가로 변했다. 그러나 번영의 상징인 산업화·도시화는 미국의 이상을 가로막는 어두운 그림자로 둔갑했다. 수많은 노동단체의 활동, 농민 운동, 언론·문학작품 등을 통하여 제기된 항변에도 불구하고 부패는 더욱 만연했고, 빈부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 평등·정의·민주 사회를 건설한다는 미국의 꿈이 수포로 돌아가는 듯했다.
누가 미국의 꿈을 회복시켜 줄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이 ‘혁신주의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빈곤 및 부정부패 추방을 통한 사회정의 운동과 정치개혁 운동으로 확산되어,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미국을 변화시켰다.
--- 「민주화?산업화 시대」 개괄 중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평시 체제로의 전환을 통한 경제 부흥과 공산 세력의 팽창 억제라는 두 가지 중대한 과제에 직면했다. 이를 위해 트루먼 행정부는 ‘페어딜 정책’과 ‘마셜 플랜’을 추진했다. 이어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국제적 협조 체제의 강화와 반공 태세 강화를 위한 대내외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경제·사회 그리고 외교 부문에서 보다 발전된 변화가 일어났다. 그렇지만 발전 과정에서 야기된 문제점 또한 적지 않았다. 도시 문제, 경기 후퇴, 달러화의 불안정 그리고 자연자원의 낭비 등과 같은 문제들이 새롭게 또는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35대 대통령에 당선된 케네디는 ‘뉴프런티어 정책’을 실현해 대내적으로는 사회 정비, 경기 회복을 시도했고 대외적으로는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과의 경쟁에서 자존심을 지키려 했다. 또한 존슨은 위대한 사회 건설을 표방하면서 빈곤 추방과 교육 발전에 주력했다.
전후 20여 년간의 변화·발전을 통해 미국은 세계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다져 나갔다. 그러나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과의 계속된 대립과 경쟁 속에서 국제적 긴장 상태는 계속되었다. 이러한 긴장 상태는 닉슨 시대의 닉슨-브레즈네프 선언을 계기로 완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긴장 완화 무드의 토대 마련에 불과했고 포드·카터 시대에 이르는 1970년대 말까지도 냉전이 종식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레이건 시대에 이르러 핵 감축 시대가 열림으로써 보다 급격하게 긴장 완화 무드가 조성되었다. 부시 시대에 소련의 붕괴에 이은 미국·러시아 간의 전격적인 합의로 마침내 냉전의 시대가 청산되었다.
--- 「발전과 긴장의 시대」 개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