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아이에게 극적인 일이 일어난 것은 컴퓨터실에서 타자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아
이는 한 손이 없고 왼손도 손가락 하나만 조금 남았는데 손가락 여섯 개로 분당 350타
정도를 쳤습니다. 그 모습을 딱 보는 순간, 저는 마음속으로 만세삼창을 불렀습니다. 그 아이와 3월 3일부터 삐걱거렸으니 제가 얼마나 긴장하고 또 얼마나 애간장이 탔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반에 집중신호를 보내 전부 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우치가, 어, 무려 타자를 350타나 쳐요. 정말 놀랍지 않나요’
‘와~ 우와~.’
아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도 그 아이는 계속 타자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저
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휴전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계속 웅성거렸습니다.
‘우와~ 대단하다.’
분당 200타도 못 치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이 아이는 그렇게 잘 쳤으니 약간 으쓱했
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아이에게 안 좋을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칭찬을 받았는데 350타 정도 쳐야 칭찬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이 아이의 삶은 더 어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아이들을 집중시켰습니다.
‘잠깐만, 선생님을 봐주세요. 열 손가락으로 타자하기도 쉽지 않은데 여섯 손가락으로
350타를 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놀라워요. 그럼 한번 생각해보세요. 불편한 손으로 350타를 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실패와 좌절감을 느꼈을까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치기 위해 노력한 우리 우치를 생각하면 선생님 가슴이…….’
감동으로 목이 메었습니다. 잠시 후에 예전에는 징그럽다고 놀렸던 그 아이의 왼손을
보면서 아이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의 기를 나에게 전해줘.’
350타를 치는 게 그 불편한 왼손 덕분인 양 남자아이들은 환호했습니다.
‘야, 그러고 보니까 이 조금 남은 손가락 귀엽지 않니’
여자아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때부터 아이는 급격하게 변했습니다. 재능이 대단
히 많은 아이였는데, 줄곧 잘하고 싶었을 텐데, 항상 좌절감을 느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그 후로 아이는 학급잔치를 하거나 행사를 하면 항상 앞으로 나와서 멋진 춤과 노래
로 우리 반을 즐겁게 했습니다. 체육시간에 그물 술래잡기할 때는 아이가 제게 왼손을
내밀어서 저는 또 울컥하며 잡았습니다.
#2
한 여자아이가 계속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여러 친구가 의사소통기술 가운데 여러 방법을 다 썼는데도 안 되자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선생님, 그 문제로 우리 학급평화회의를 했으면 좋겠어요.’
‘좋다. 긴급한 사안이면 오늘 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면 내일 어떠니’
내일 여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하루 있다가 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러면 이 친구 때문에 속상하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속상한 친구들 이야기부터 들어볼게요.’
주로 거짓말이 문제였습니다. 친구가 일어나 그 아이가 거짓말한 이야기를 하니까 그 아이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혹시라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사람’
아이들 몇몇이 일어나 이야기할 때 그 아이가 너무 몰릴 가능성이 있어서 차단하고 그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그런 행동을 했니’
‘네.’
‘그럴 때 어떤 감정이었니’
그 아이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두려웠어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뭐가 두려웠는데’
‘친구들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해서 두려웠어요.’
그 아이는 에니어그램에서 4번 유형의 아이였어요. 부모가 큰딸인 이 아이를 너무 무시해왔습니다. 동생은 3번 유형인 성취자라서 무엇을 해도 잘하는데 반해 이 아이는 깊고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성격이라 뭐든지 시간이 오래 걸려서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잘 안 되었던 것입니다. 엄마한테 많이 혼나다 보니 감정이 불안정해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다른 친구랑 있으면 자신이 비난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면 친구들이 자기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이 아이처럼 친구들이 나를 싫어할까 봐 거짓말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있을 겁니다.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하고 싶은 감정을 얘기하는 겁니다’ 하고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준 뒤 친구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뜻밖에도 아이들은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이제 이해가 됐어요. 그 친구 마음이 이해가 됐어요. 앞으로는 더 잘해주고 싶어요.’
이렇게 해결된 것이지요. 그리고는 소감을 돌아가며 이야기했습니다.
‘실은 나도 그랬던 적이 있는데, 나도 그랬으면서 친구가 그랬다고 비난해서 너무 마음이 아파요. 정말 미안해요.’
한 여자아이는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펑펑 쏟았고, 다른 아이들도 따라서 엉엉 울었습니다. 마치 비가 내린 후에 맑아진 하늘처럼 깔끔하게 풀린 겁니다. 물론 멀뚱거리고 있는 아이도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저도 같이 풀어졌어요. 비슷한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 반은 참 좋은 것 같아요. 서로 미워하지 않고 이렇게 푼다는 게 기적 같아요.’
‘저렇게 사과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는 것 같아요.’
나는 가슴 뿌듯하게 지켜보다가 마무리했습니다.
#3
저희 반에서는 문제점으로 욕, 싸움, 왕따 같은 것들이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끼리 하는 회의에서 정리 같은 부분을 문제로 삼은 것 때문에 참관을 한 선생님들이 종종 놀라지요. 회의 진행은 제가 하지 않습니다. 1학기나 초반에는 제가 하지만 조금씩 임원에게 권리를 넘기고 저는 코칭만 살짝 합니다. 그리고 어떤 절차로 하는지를 프린트해서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저희 반 학급운영의 특징은 1학기 중에서도 3, 4월에는 신경 쓰일 일이 많지만 2학기가 되면 할 일이 별로 없어진다는 점입니다. 알아서 잘 돌아가기 때문에 저는 그냥 다니면서 구경하다가 한마디씩 툭 던집니다.
‘어떠니? 문제가 있으면 내가 도와줄까, 너희가 해볼래?’
‘저희가 해볼게요.’
‘여러분, 정말 자랑스러워요.’
스스로 해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정말 이런 마음이 듭니다. 할 일이 많이 줄어 도움도 되지요. 이렇게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게 바로 안전하고 따뜻하고 건강한 공동체입니다. 문제가 생겨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존재하고 또 아이들이 훈련되어 있어 스스로 잘 풀어나갑니다. 초기에는 좀 힘들지만 갈수록 편안해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1. 행복교실의 풍경」
항상 행복해하는 친구 한 명을 떠올려보세요. 잘 웃고, 의사소통을 얼마나 잘하는지 제 이야기를 다 들어줍니다. 그 친구는 내 삶의 모델이 되어주고, 내 장점을 찾아서 칭찬도 잘하고 내 마음을 잘 헤아려주지요. 잘 놀아주고 또 친절한 데다 일관성이 있고 능력도 아주 좋아요. 늘 사랑이 넘쳐서 같이 있으면 충만해지고 나에게 많은 기회와 용기와 꿈과 희망을 심어줍니다. 확고한 철학도 있고 다양한 경험도 하게끔 해주면서 잔소리도 안하고 유머도 있어요.
이런 친구, 너무 좋으신가요? 존경할 수는 있지만 좋아하기는 힘들 것 같지요? 이것이 우리가 빠져 있는 함정입니다.
토머스 고든은 흔히 훌륭한 교사 하면 고매한 인격과 흠잡을 데 없는 그런 존재를 생각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이런 생각의 가장 큰 오류는 교사에게 인간다움을 부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교실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주저하고 망설인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이야기를 했을 때 놀림을 당하면 어떡하지, 비난받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한 아이가 실수를 하거나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했을 때 교사가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고 반응하면 다음부터 그 아이는 말하기가 힘듭니다. 그 모습을 보는 다른 아이들도 ‘아, 나도 말을 할 때 정확하게하지 않으면 비난받겠구나’ 생각할 것입니다.
그 아이의 대답이 정답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이야기를 해줄 수 있습니다.
‘독특한 생각이네요’, ‘자신의 생각을 용기 있게 말했네요’, ‘지금은 맞고 틀리고가 중요
하지 않아요’.
이런 대답을 들었을 때 아이들은 ‘우리 선생님은 실수하고 실패해도 용납해주는구나’
생각할 것입니다
목공을 하는 사람에게 도구 하나가 있고 없고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전동톱, 사포 기
계, 드릴 같은 도구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만들 수 있는 물건과 노동시간이 달라집니
다. 드라이버만 가지고 만들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지요. 교사들도 이런 도구들을 많이 갖추어두면 자신뿐 아니라,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다음에 소개하는 GROW 셀프 코칭 모델이 교사
로서 내가 이루고 싶은 ‘나의 모습’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도구로서 유용할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야 된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것이 지켜지지
는 않습니다. ‘벌 좀 받고 말지’ 생각하는 아이들이 도덕성의 위 단계로 올라가려면 마중물처럼 아래 단계들이 필요합니다. 동기가 바닥에 있는데 펌프질은 소용이 없습니다. 바닥의 물과 펌프의 물이 연결되도록 마중물을 부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네가 자꾸 그러면 선생님이 화가 난다’, ‘그러면 벌 받는다’고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상도 잘 활용하면 동기가 없는 아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 머무르면 아이들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단계가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어느 한 단계에 사로잡혀 있지 않도록, 가능하면 더 놓은 수준의 도덕성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규칙이기 때문에 지켜가도록 콜버그의 도덕성을 활용하면 도움이 됩니다.
에니어그램은 자신의 성격이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기합리화의 도구로 쓰여서
는 안 되며 다른 사람을 에니어그램의 번호로 단정하여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인간은
에니어그램이 보여주는 것보다 큰 존재이며 에니어그램은 인간의 몇몇 모습을 보여주는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적절히 사용해야 합니다.
클립 하나를 보면서 중요한 정보가 담긴 종이를 묶으려면 클립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교사가 갖춰야 할 능력입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런 은유적인 이야기들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반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생각했다면 이런 은유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서 아이들과 만나는 첫날에 전달합니다.
칭찬보다 더 좋은 것이 격려입니다. 격려encouragement는 칭찬과 비슷한 듯해도 방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칭찬에는 좋아요, 잘했어요, 훌륭해요 등 판단이 들어가는데 이것을 납득하면 상관이 없지만 납득이 안 되면 불일치가 일어나서 문제가 생깁니다. 격려는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한 내 감정을 함께 표현하는 것입니다. ‘너 아까 발표 참 잘했어’가 칭찬이라면 ‘아까 발표해줘서 고마워. 그때 아무도 발표를 안 해서 걱정했거든. 네가 손을 들고 발표해줘서 한시름 놓았어’가 격려입니다. 내가 잘했나 못했나가 아니라 내 행동이 선생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럴 때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하나만 더 예로 들자면 체육 시간에 뜀틀을 잘 못 넘는 아이에게 ‘넘으려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찡했어’, ‘노력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라고 하는 것이 격려입니다.--- 「2. 행복교실을 만들기」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 책 속에는 길이 없습니다. 길은 세상에 있지요. 책 속의 길을 세상의 길과 연결시켜 뻗어나오게끔 하지 않는다면 그 독서는 무의미합니다. 제가 안내하는 길 역시 제가 현실에서 경험한 길을 축소하고 구조화해서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이 길을 교실로 연결시키는 일은 선생님들이 해야 할 일이지요.
교육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을 때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 환경에서
나만 잘하기는 정말 힘든 일입니다. 핀란드 교사들이 우리 대한민국 교사들보다 더 열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가서 교사로 지내면 그들보다 잘할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핀란드 교사들에게 한국에 와서 교사생활을 하라고 하면 못하겠다고 손을 내저을 수도 있습니다.
‘나의 교육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면 스스로 항상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이게 좋다고 하면 이쪽으로, 저게 좋다고 하면 저쪽으로 끌려다니지요. 물론 배타적으로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 경험들을 바탕으로 나름 뼈대를 세우면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선택하고 받아들이며 나를 키워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경험을 통해 체계화한 나의 교육학을 저는 ‘행복교육학’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 「3. 모든 교사가 ‘나의 교육학’을 말할 수 있기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