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온천을 아십니까
활화산
해저 온천
모래찜질 해안
해수욕장
여객기가 뜨고 내리는 비행장
1,200명이 살 수 있는 도시
출산
학생들이 뛰노는 학교
결혼식(혼인 성사) 올리는 성당
관광객이 붐비는 기념품 가게
마라톤 대회….
남극에 있거나 일어난 일들이다.
남극에 두꺼운 얼음과 빙산만 있는 줄 아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위에 나열한 게 남극이라면 놀란다. 우리는 남극을 과학자나 탐험대원, 언론인 같은 특별한 사람들만 갈 수 있다고 생각 한다. 가려고 해도 까다로운 절차와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다 틀렸다. 남극 여행은 아무나 갈 수 있다. 이웃 나라 가듯이 여행사를 통해 예약하면 된다. 인천공항에서 트렁크 끌고 10여 일이면 다녀올 수 있다. 인솔자가 전체 일정을 안내하는 패키지 상품도 있다. 주인 없는 땅이라서 비자도 필요 없다.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항, 칠레 푼타아레나스 공항까지 간 뒤 그곳에서 표를 구해도 갈 수 있다.
남극 관광은 12월∼이듬해 2월까지 이뤄진다. ‘남극 여름’인 이 시기의 남극 온도는 섭씨 0도를 중심으로 오르내린다. 한국의 서울 날씨와 비슷하다. 이 시즌에는 유람선과 민항기가 매일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그 3개월 동안 전 세계에서 4만∼5만여 명이 남극을 여행한다.
우리는? 북반구에 가까이 산다는 이유만으로 지구 반대편 남극을 멀게만 생각했다. 항상 영하 수십 도의 추운 날씨가 이어지는 줄 안다. 그래서 가기 힘들고 위험한 곳으로만 생각한다. 아문센과 스콧의 전기만 읽은 청소년들은 아직도 개 썰매로 남극을 탐험하는 줄 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로만 남극을 만난 사람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우리가 남극을 오해하고 있는 동안 깨어 있는 세계의 관광객들은 크루즈선과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눈 덮인 남극대륙에서 마라톤을 하고 해수욕을 즐긴다. 최고봉 빈슨 매시프 봉을 등반하는 산악인들이 줄을 잇는다.
이제 우리도 남극을 가까이 하자.
그곳에는 신비한 자연현상들이 널려 있다.
1년에 0.0038㎜밖에 자라지 못하는 지의류(地衣類), 영하 수십 도의 추위 속에서 일부일처제를 지키며 새끼를 길러내는 펭귄 가족들, 혈액 속에 헤모글로빈이 없어 투명한 피를 가진 아이스 피시, 남극과 북극을 오간다는 제비갈매기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 (중략) -
남극에는 상식을 초월하는 과학과 상상을 뛰어넘는 이야기들이 넘친다. 남극 여행은 매일 새로운 설렘이다. 대자연은 겸손을 가르친다.
우리가 남극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다가올 남극 개발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1959년 맺은 남극조약은 남극 개발을 2048년까지 금지하고 있다. 여러 나라는 과학기지를 운영하며 2048년 이후를 노리고 있다. 불과 28년 뒤면 영유권을 주장하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남극은 전쟁터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남극을 제대로 아는 국민이 많은 나라일수록 남극 개발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때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여기서 아픈 역사가 떠오른다.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된 지 3개월 뒤인 1910년 11월 29일. 일본 도쿄만에서는 남극 탐험선 카이난마루(開南丸) 호가 출항한다. 남극점을 정복한 노르웨이 아문센, 영국 스콧과 비슷한 시기에 일본이 남극 탐험에 나선 것이다.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지만, 일본 국민은 유럽 해양강국과 어깨를 같이 했다는 자긍심으로 들떴던 해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라 밖 변화를 모르면 또 당한다. 우리가 남극을 멀리하고 있는 동안 다른 나라들은 남극을 자기네 땅처럼 드나들고 있다. - (중략) -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은 2014년 11월 호주를 방문해 남극연구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후 두 나라는 남극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남극 개발에 앞선 미국·호주·뉴질랜드·칠레 등을 방문할 때 이런 소식이 들려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나라는 앞으로 1만2,000t급 제2 쇄빙선 건조, 암반 활주로 확보, 제3기지 건설 등 남극 연구 활동 지원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들은 남극개발시대를 대비하는 시작일 뿐이다. 더 많은 사업이 기다리고 있다. 새 사업들을 활발히 추진하려면 국민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남극에서 한 나라의 위상은 과학 수준과 외교력, 해양력 등 국력의 총체다. 남극을 일부 전문가들의 일로만 맡겨둬서는 안 되는 이유다.
내가 남극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14년 1월 1일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에서다.
새해 일출을 본 뒤 아침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동화 남경엔지니어링 토건 대표를
만났다. 그는 1985년 한국 남극 관측탐험대원으로 처음 남극을 다녀온 뒤 세종기지와
장보고 기지 건설에 참여한 남극 탐험 1세대다. 그는 회사 이름을 ‘남극의 수도’라는 의미로 남경(南京)이라 짓고, 남극에 관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선다. 그의 남극 사랑에 반한 나는 남극 관련 기사를 중앙일보에 몇 차례 썼다. 남극을 가보고 싶어 2016년 보통 여행자로 인천공항을 떠나 남극을 다녀왔다.
그러니 ‘남극 대학’ 신입생이다.
초보자 관점에서 남극을 배워갔다. 남극에 관한 전문가들의 책은 많지만 여행자의 입장에서 접근한 책이 없었다는 게 이 책을 쓴 동기다.
남극은 재미있었고 신비로웠다. 말 없는 얼음대륙은 깊은 울림을 줬다. 그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 「서문」 중에서
도시의 하늘은 우중충한 회색빛이다. 도시는 가파른 설산(雪山) 아래 바닷가에 해안을 따라 길게 자리잡았다. 드센 바람과 거름기 없는 땅에 바짝 붙어서 겨우 자라는 이름 모를 식물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남극 냉기를 머금은 찬바람이 쉬익∼ 하고 뺨을 때렸다. 비를 머금은 드센 바람은 온몸을 얼얼하게 했다. 낮인데도 잔뜩 찌푸린 회색 날씨다 보니 차들은 전조등을 켜고 있었다,
남극행 크루즈선을 타기 위해 남미 대륙 최남단 항구가 있는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Ushuaia)공항에 내린 첫인상은 이랬다.
--- p.12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 저자인 알프레드 랜싱은 인듀어런스 호 탐험대원들의 기록을 토대로 드레이크 해협의 두려움을 이렇게 적었다.
어떠한 육지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태초부터 지금까지 바람이 파도를 시계방향으로 무자비하게 몰며 지구를 한 바퀴 돈 다음,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 다른 바람과 합세하여 세력을 강화하는 곳이다. (중략)
파도 마루에서 마루까지 길이(파도를 정면에서 보았을 때 좌우 폭)가 거의 1.6㎞쯤으로 알려져 있으며, 몇몇 선원들은 파도의 높이가 무려 60m에 이른다고 보고했다.
드레이크 해협을 건너는 오션노바 호에 누워 정신없이 뱃멀미하면서도 『위대한 항해』를꺼냈다. 떠날 때 배낭에 넣어 온 책이었다. 한국에서 몇 번을 읽었지만 100여 년 전 노 젓는 작은 배로 동료를 구하기 위해 1,300㎞의 이 바다를 건넌 어니스트 섀클턴. 그 불굴의 정신을 현장에서 실감하고 싶었다.
드레이크 해협의 높은 파도를 선창으로 보면서 그 항해를 왜 ‘위대한 항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아, 저 바다를 노 젓는 작은 배로 건넜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 p.60
남극공부 - 남극 지하자원 얼마나 되나?
남극 대륙에 엄청난 지하자원이 매장돼 있다는 사실을 100여 년 전 남극 탐험 시대 때 알았다. 남극 대륙은 버려진 얼음 왕국이 아니라는 것을 가장 먼저 확인한 탐험가는 섀클턴이었다. 그가 이끄는 영국 남극탐험대(1907∼1909년)는 1909년 12월 비어드 모어 빙하 주변 언덕에 서 노출된 석탄 무더기를 발견했다.
‘햇살이 빙하 주변을 따스하게 비추어 얼음을 녹였는데, 언덕에서 석탄이 발견되어 시간과 연료를 절약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들은 모두 원기를 회복했으며 그 특별한 혜택에 고마워했다.’ 탐험대는 이 석탄을 캐내서 타고 갔던 증기선 남로드 호 연료로 사용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럽은 남극 탐험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 p.74
모든 동물의 새끼가 앙증맞지만 어미 사타구니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새끼 펭귄은 생명의 경이로움, 그 자체다. 참혹한 추위 속에서 잉태한 생명이라서 더 그렇다.
나는 펭귄 몸에 포란반이 만들어진 과정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상상해 봤다.
애초 펭귄의 포란반도 다른 조류처럼 털 없는 피부였을 것이다. 알과 새끼를 그 포란반으로 더 깊이 감싸려다 보니 피부 속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주머니로 바뀌어 갔다고 생각한다.
--- p.94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자갈밭 해변. 한 무리의 남녀가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푼다. 그리고 옷을 벗는다. 여행 옷차림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수영복으로 바뀐다. 아예 속옷을 수영복으로 미리 입고 왔으니 겉옷만 벗으니 순식간에 피서객이 됐다.
반나(半裸)의 사람들은 해안가에서 시동을 걸고 기다리던 고무보트에 오른다. 고무보트는 바다 가운데로 나아간다. 고무보트가 멈추자 사람들은 바닷물 속으로 뛰어든다. 사람들은 해안을 향해 수영을 시작했다.
해변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박수와 함께 “와∼” 하고 함성을 지른다.
--- p.119
한국도 상주기지 2곳을 갖고 있다. 1988년 2월 킹 조지 섬에 세종과학기지를 처음 세운 뒤 동남극 북 빅토리아랜드 테라노바(Terra Nova) 만에 장보고 과학기지를 2014년 2월 완공했다. 세종기지 위치는 남극의 섬이지만 장보고 기지는 남극 대륙에 자리잡아 본격적인 남극 연구를 할 수 있다.
--- p.129